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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오이] 야행(夜行) 2

느와르AU / 쿠니오이 요소 있음

- 카게야마 생일 축하해!





‘제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요?’

‘응.’

‘어째서요?’

‘어째서냐니…….’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짙푸른 눈동자 두 개가 자신만을 쳐다볼 때의 그 중압감이란. 채 스물도 되지 않은 꼬맹이가 자신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는 기분은 꽤 색달랐다. 딱히 카게야마를 계속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닌데, 멍하니 있다 보면 꼭 떠오르는 장면 두 개가 있다. 쓰레기통 옆에서 널브러져 있던 열일곱의 카게야마와, 갑작스레 다른 조직으로 가라는 자신의 말을 들은 열아홉의 카게야마. 사실 여기에는 양해도 허락도, 심지어는 이유도 필요 없었다. 오이카와가 정하면 그것이 곧 규칙인 이 세상에서 카게야마는 당돌하게도 우뚝 서 있었다. 대충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아마 이와이즈미가 옆에 서 있었다면 카게야마의 뒤통수가 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이카와가 굳이 모든 사람을 물린 채 카게야마와 독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제가 잘못한 게 있나요?’
‘아니. 토비오가 잘못한 건 없어.’
‘그럼 이해시켜주세요. 제가 왜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지.’


이해시켜달라니,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눈동자를 빤히 응시했다. 설마 이런 말이 나올 것이라고는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고양이 새끼인 줄 알고 집어왔더니 호랑이 새끼였다. 저 나름대로는 응석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자신을 떼어놓지 말아 달라고, 계속 곁에 있게 해 달라고. 그러나 오이카와에게 그 말투와 그 눈빛은 더 이상 응석이 아니었다. 등 언저리가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오이카와는 속으로만 쓰게 웃는다.


‘토비오쨩, 내가 아무리 널 거둬서 길렀다 해도 너무 건방진 것 아니야?’
‘이런 일방적인 결정은 오이카와 씨답지 않아요.’
‘…….’


썩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 분명 그 표정 변화를 보았을 텐데도 카게야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둘만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나. 같은 방을 쓰는 쿠니미더러 카게야마의 짐을 전부 싸 오라고 해서, 차 한 대에 실은 후 그것을 보여줬어야 했다. 더 이상 이곳에 너의 자리는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켜준 후에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해야 했다. 이 시건방진 꼬맹이가 자신에게 서늘한 안광을 향하기 전에 모든 것을 정리했어야만 했다. 이미 늦은 후회였지만. ‘답지 않다’는 말의 뜻, 거기에 담을 수 있는 수많은 뜻은 알고 지껄이는 건가. 그것이 조금 궁금해졌으나, 그렇다고 그 의문을 솔직하게 입에 담을 수는 없었다. 이 년 사이에 꽤 다부지게 자란 손가락이 찻잔을 있는 힘껏 감싸고 있다. 눈빛은 흔들림 없지만, 찻잔 안의 수면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노유키(野行)가 여기보다 작은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
‘그런 게 아니라는 거 잘 아시잖아요.’
‘걱정하지 마, 거기 히라츠카가 나랑 친해. 책임지고 거둬주기로 했어.’
‘오이카와 씨, 정말…….’
‘카게야마.’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똑바로 바라본다. 더 이상의 의문도, 항의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싸늘한 눈빛에 카게야마의 등줄기가 꼿꼿이 섰다. 목울대가 울린다. 먹이를 달라고 조르다가 실수로 아비 사자의 목덜미를 할퀴어버린 새끼 사자의 기분이 이럴까. 하다못해 점심 메뉴조차 한 번도 혼자 정한 적이 없는 오이카와가, 자신을 다른 곳으로 날려버린다는 통보를 하고 있다. 이 년 전 병원에서 통성명한 뒤로 카게야마는 이제껏 오이카와가 자신을 성으로 부르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호칭이 카게야마의 모든 사고를 멈췄다. 우습게도, 그 작은 것 하나가 오이카와가 얼마나 큰 결심을 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 언저리에 잔뜩 머물러 있는데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너는 꽤 우수하니까, 어디서든 잘할 거야.’
‘…….’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라는 말, 들어봤겠지.’
‘저는.’
‘아직 더 할 말이 남았어? 나는 없는데.’


마지막 문장은 대화의 끝을 알리는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어느새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수도 없이 보아온 그 모습이 평소에 비할 바 없이 차가웠다. 만난 뒤로 이 년 동안 제대로 들어본 적 없던 칭찬이, 그렇게도 학수고대하던 칭찬이 드디어 오이카와의 입에서 나왔는데도 카게야마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기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입술을 잔뜩 깨문 카게야마가 고개를 숙였다 든다. 오이카와가 이렇게까지 매몰차게 자신을 내치는 데에는 분명 무언가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설령 자신이 수긍하지 못할 것이라 해도. 


‘……이제껏 신세 졌습니다, 오이카와 씨.’


오이카와는 대꾸 없이, 느긋하게 손을 흔들었다. 나가 보라는 의미다. 방문을 나서기 전,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뒤돌았다. 오이카와는 그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 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적어도 이렇게 쫓아내기 전엔 한마디라도 더 해 줄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오이카와의 시선 끝에는 카게야마가 없었다. 이런 때의 그는 꽤 차가운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카게야마는 대충 안다. 그래서 그 침묵 위에 아무런 말도 올려놓지 못했다. 카게야마가 문을 열었을 때 오이카와는 비스듬히 시선을 올려 허공을 바라본 채 담배를 입가로 가져가고 있었다. 소파의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담배 연기를 내뿜는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카게야마는 방을 나와야 했다.



*



“꼭 제가 확인하고 와야 합니까?”
“왜, 그쪽은 불편해서 그래?”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다녀오라고 하신다면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너 말고 누구한테 맡기겠냐. 잘 부탁한다.”


카게야마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소파에서 일어섰다. 자신의 책상에 두 발을 다 올려놓은 히라츠카가, 들고 있는 서류철 너머로 카게야마를 빤히 바라본다. 영 내켜 하지 않는 카게야마의 얼굴이 재미있었다. 평소엔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뚝뚝한 얼굴이 꼭 이쪽과 얽히면 곤란한 빛을 잔뜩 띤다. 그곳을 뜬지 오 년이 됐는데도 여전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놈을 보내도 되는 것이었지만, 이 표정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아 표정관리가 필요하다. 마지막 말은 완전한 거짓말도 아니었다. 여기에 카게야마를 곤란하게 만드는 키워드는 하나 더 있다.


“오이카와한테 안부 전해주고.”
“절 안 만나 주실 걸요.”


카게야마가 쓰게 웃었고, 히라츠카는 그 웃음을 예사로 받아넘겼다. 카게야마의 가장 재미있는 표정은 이것이었다. 대체 이곳에 오기 전에 오이카와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으나, 아무리 그래도 자신은 카게야마의 보스이기 때문에 건드릴 수 없는 구석이 있다. 심지어 상대가 오이카와라서 더 그랬다. 오 년 전, 오이카와가 연락도 없이 대뜸 사무실로 찾아왔을 때를 히라츠카는 아직 선명하게 기억한다. 오이카와는 자신보다 두어 살 어렸지만 둘 다 나이 차이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친한 사이다. 오이카와를 위해서도, 카게야마를 위해서도 더 깊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 더 말을 잇지 않고 히라츠카는 담배에 불을 붙인다. 


“다녀오겠습니다.”
“갔다 와서 저녁 같이 하자.”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옆에 놓여있던 꾸러미를 든 채 방을 나섰다.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방문이 닫혔다. 히라츠카는 테이블 위, 그가 남기고 간 찻잔을 지그시 바라본다. 카게야마를 보낸다고 오이카와에게 연락 한 통이라도 해 줘야 할까. 쓸데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건만 그의 머리는 저절로 오 년 전을 떠올리고 있었다.


오 년 전 어느 날, 카게야마가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바로 그 자리에 오이카와가 앉았다. 식후의 믹스커피 타임을 방해받은 것이 썩 기분 좋지만은 않아 한마디 하려다가, 오이카와의 표정을 보고 히라츠카는 말을 삼켰다. 조직원 한 명도 대동하지 않고 찾아온 그 모습에서 어지간히도 다급함이 묻어났다. 굳이 부탁받지는 않았지만, 히라츠카는 주변 사람들을 모두 물렸다.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삼 년 만에 보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자리에 앉자마자 오이카와는 안부인사도 없이 대뜸 본론을 꺼냈다.


‘히랏치, 강아지 한 마리 맡아 기를 생각 없어?’
‘하?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오이카와. 삼 년 만에 찾아와서는 강아지라니.’
‘아직 송곳니도, 눈빛도 덜 자란 강아지야. 길을 잘 들이면 충직한 늑대가 될지도 모르지.’
‘그런 강아지라면 네가 기르면 될 것 아니야?’
‘…….’


오이카와는 잠시 말이 없었다. 할 말을 고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할 말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평소에 하지도 않는 짓이지만, 히라츠카는 응접세트의 컵에 녹차 티백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오이카와 앞에 놓았다.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오이카와는 두 손으로 컵을 감싼다. 정수기에서 바로 받은 물이라 꽤 뜨거울 텐데도. 마치 통각 같은 것은 없는 사람처럼.


‘이 년 동안 길러본 결과, 나는 안 될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어.’
‘호, 천하의 오이카와가 포기하는 놈도 있다는 건가.’
‘포기 같은 게 아니야. 좀 더…….’
‘좀 더?’
‘아, 정말 어렵게 하네! 어쨌든, 기를 거야, 안 기를 거야?’
‘어떤 놈인지는 알아야 결정을 할 것 아니냐.’


오이카와는 신경질적으로 품 안을 뒤져 담뱃갑을 꺼내고, 하나를 툭 띄워낸 후 입에 물었다. 히라츠카가 테이블 위의 라이터를 들어 그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그 김에 자신도 담배를 꺼낸다. 녹차를 건네줄 때에는 못 들었던 감사 인사가 오이카와의 입에서 작게 흘러나왔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고민하는 것이 뻔한, 복잡한 표정. 히라츠카는 가만히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큰 결심을 한 표정으로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웃지 말고 들어.’
‘응.’
‘내가 걜 키우면, 난 걔 손에 죽을 거야.’
‘……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놈이라고.’
‘그러니까, 보스의 등에 칼 꽂을 놈을 나더러 데려가서 키우라는 거냐?’
‘표현 심하네!’
‘즉슨 그런 것 아니야. 폭탄 떠넘기기 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 다른 조직에 있으면 걔가 네 등에 칼 꽂을 일이 더 많지 않겠어? 후환이 두려운 거면 지금 처리해야지, 일을 이상하게 처리하고 있잖아 네가.’
‘내가 키운 놈한테 죽는 것보단, 버린 놈한테 죽는 게 낫겠지.’
‘…….’


오이카와의 마지막 말에 히라츠카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이제껏 십 년 가까이 보아 온 오이카와의 얼굴에 이런 표정이 떠오른 적은 없었다. 확실한 건 지금의 오이카와는 이상하다. 본인이 알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누가 봐도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해결방식을 두고 일부러 빙 돌아가고 있었다. 잔정이 많다는 평을 듣는 히라츠카 본인이 할 말은 아니지만. ‘키운 놈한테 죽는 것보다는 버린 놈한테 죽는 게 낫다’니, 이게 천하의 오이카와 입에서 나올 말인가. 눈앞의 오이카와가 정말 십 년 동안 알아온 그 오이카와가 맞는지, 이제 근본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히라츠카는 이유 없는 현기증을 느껴 관자놀이를 짚었다.


‘너.’
‘아마 여기선 괜찮을 거야. 히랏치에게는 이빨 드러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그 밑도 끝도 없는 추측의 근거를 듣고 싶네.’
‘미안, 이건 근거는 없어. 그냥 내 감이야. 사실 그 녀석에게 죽을 거라는 것도 감일 뿐이지.’


어느새 그의 담배가 필터까지 타들어 가 있었다. 한 모금 더 빨아들이려다가 그 사실을 알았는지, 오이카와는 재떨이에 담배를 지져 끄며 흐릿하게 웃는다.


‘하지만 히랏치, 우리 같은 족속들에겐 육감이라는 것도 꽤 중요한 거잖아. 설령 그게 나중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나랑 그놈은 상성 자체가 글러 먹었어.’
‘…….’
‘친구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부탁 좀 하자.’
‘이와이즈미는 알고 있어?’
‘대충은.’
‘그 녀석은 뭐래?’
‘이와쨩이 내가 하는 일에 반대할 리 없잖아.’
‘……확실히 그건 그렇지. 너 이렇게 많이 피우는 것도 이와이즈미가 알고 있냐?’
‘앗.’


두 개비째를 띄워 올리던 오이카와가 그대로 동작을 멈춘다. 입술이 살짝 우스꽝스러운 모양으로 벌어져 있었다.


‘하루에 한 갑 이상은 혼나는데, 벌써 다섯 개비 째네.’
‘대충 얘기 끝난 것 같은데, 나머지는 너희 사무실 돌아가서 피우지그래.’
‘그래서, 맡아 줄 거야?’
‘……오늘 중으로 인적사항 보내고, 이번 주 내로 데려와.’
‘고마워.’
‘나중에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할 거야.’
‘그날이 기다려지네.’
‘이름이나 들어보자. 그 강아지 이름이 뭔데?’


오이카와는 기어코 두 개비 째 담배를 입에 물었다. 히라츠카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이번엔 제 손으로 직접 라이터를 들고 불을 붙인다. 깊게 빨아들이고, 천천히 내뱉는 담배 연기에 섞여 한숨처럼 누군가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토비오. 카게야마 토비오.’



*



“이런 건 어디서 입수한 거야?”
“다 루트가 있지.”


바로 그저께 오이카와의 협상을 도와준 자료가 카게야마의 손에 들려있었다. 팔락팔락 넘겨보더니,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쿠니미를 응시해온다. 쿠니미의 자료 수집 능력이야 이쪽 세계에선 이미 유명했지만, 이런 비밀장부까지 찾아내어 사용할 정도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바로 어제 오이카와 쪽에게 이자상환을 마친 이케하타 사장은 카게야마가 속한 노유키와도 거래를 하고 있었다. 사채에 마약까지 손을 대다니, 번듯한 사장 직함 달고 어지간히도 인생 막산다며 노유키 쪽의 조직원들이 웃고 떠드는 이야기를 스치듯 들은 기억이 난다. 소문으로는 공금 횡령도 적지 않다고 했다. 조만간 TV 뉴스와 일간지에서 그 얼굴을 보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쪽에 공급하던 마약 대금이 적지 않게 밀려 노유키도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는데, 오이카와가 한 방에 해결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 정확히 어제 오후 다섯 시 오십 분이다. 자연스럽게 노유키 쪽의 고민거리도 해결됐다. 카게야마는 그 일의 경과를 확인하는 역할로 오게 된 것이다. 작은 감사 인사를 겸하여.


“히라츠카 씨가 감사 인사로 전해 달래. 이거.”
“오이카와 씨에게 드리면 되는 거야?”
“그렇겠지.”
“네가 직접 전달하는 건 어때? 궁금해하실 텐데.”
“…….”


오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담담한 얼굴에 얼핏 스치는 솔직한 표정은 숨길 수 없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이름을 들었을 때와도 비슷한 딜레이. 어쩌면 그것보다 조금 더 길지도 모른다. 카게야마 앞에서 오이카와 이름을 꺼내는 건 일종의 도발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쿠니미는 감행해봤다. 선물을 직접 전달하라는 말은 물론 진심이 아니다. 오이카와는 본가에 잠깐 갈 일이 있다며 자리를 비웠다. 카게야마는 방금 전 자신이 테이블에 올려 둔 꾸러미의 포장지를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들었다. 꾸러미로부터 천천히 손가락을 떼는 카게야마의 표정이 복잡했다. 스위치가 제대로 들어간 모양이다. 


“미안, 그럴 시간은 안 될 것 같다. 보스랑 저녁 먹기로 해서.”
“옛 보스한테 내 줄 시간 같은 건 없다는 건가.”
“…….”


애써 평정을 가장한 그 목소리는 쿠니미의 신경에 적잖이 거슬렸다. 들을 테면 들으라는 듯 내뱉은 쿠니미의 혼잣말에 카게야마의 눈꼬리가 조금 치켜 올라간다. 쿠니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무릎을 짚고 일어나려던 카게야마가 다시 소파에 자리 잡는다. 


“쿠니미.”
“어.”
“너는…….”
“…….”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쳤으나, 먼저 고개를 돌린 건 역시 카게야마 쪽이었다. 뭔가 할 말이 잔뜩 있는 표정. 생각 끝에 결국 할 말을 꺼내지 않는 건 오 년 동안 성장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옛날의 카게야마는 적어도 이보다는 조금 더 경솔했고, 조금 더 눈치가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노유키의 히라츠카 역시 꽤 아랫사람 키우는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카게야마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오이카와 밑의 자신이 덜 컸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역시 아니야. 그만 가 볼게.”
“어, 잠깐…….”


카게야마가 다시 몸을 일으킴과 거의 동시에 쿠니미의 핸드폰 램프가 깜박였다. 평소답지 않게 얼빠진 소리가 나온 건, 방금 온 메일이 오이카와의 사무실 도착을 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이카와는 큰일이 없다면 바로 개인 사무실로 가겠지만, 무슨 일이 있다면 이쪽을 먼저 들를지도 모른다. 재수가 없으면 복도에서 마주칠 수도 있다. 쿠니미는 두 사람 다 무방비상태로 마주쳤을 때의 그 분위기를 바로 곁에서 겪고 싶지 않았다. 카게야마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으나, 이미 그 순간 야속하게도 사무실 문은 큰 소리를 내며 열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불길한 징조와도 같은 활기찬 목소리가 야속하게도 날아든다.


“나 왔어. 별일 없……있네.”
“…….”
“…….”


코트를 벗으며 들어오던 오이카와의 동작이 멈추었다. 카게야마는 마치 석상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굳어있다. 하필이면 가장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을 만나게 해 버렸다. 이 자리에서 서로의 만남을 기꺼워할 사람은 한 명도 없겠지만. 속으로만 혀를 차며 쿠니미는 일단 오이카와의 코트를 건네받았다. 잠깐 문 앞에 멈추어 있던 오이카와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척척 걸어 들어온다. 쿠니미는 약간의 원망스러움을 담아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왜 오이카와 씨 사무실로 바로 안 가고 여길 들르셨어요.”
“쿠니미쨩이 여기 있을 것 같아서? 그나저나 토비오, 오랜만이야.”


아무렇지 않게 활짝 웃는 그 얼굴 이전의 침묵이 훨씬 신경 쓰였으나,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카게야마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든다. 


“여긴 어쩐 일이야?”
“…….”
“카게야마, 너 말씀하시는 거잖아.”
“아, 네?! 이케하타 사장 건으로.”
“그거 말인가. 확실히 노유키 쪽도 거래가 있었지? 장부에서 봤어.”


오이카와는 어정쩡하게 서 있는 카게야마의 맞은편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카게야마는 앉지 않는다. 어쩌면 앉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쿠니미는 그런 생각을 했다. 테이블 위로 시선을 둔 오이카와가 문득 미소 지었다. 선물 꾸러미를 본 것이다. 포장을 끄르지도 않았는데 대충 어떤 선물인지 눈치 챈 것 같았다.


“잔챙이 하나 처리하고 이런 선물이라니, 과분하네. 히랏치에게 고맙다고 전해줘.”
“아닙니다, 보스가 감사 인사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보스, 말이지…….”
“네. 다음에 천천히 인사드리러 오겠습니다. 저는 이만.”


어딘가 복잡한 표정의 오이카와가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드는 모습을, 쿠니미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올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문을 나선다. 닫힌 문을 잠깐 바라보던 오이카와는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스스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쿠니미가 라이터를 꺼내 들 사이도 없었다. 담배 연기를 내뿜는 옆모습이 조금 심란해 보인 건 쿠니미의 기분 탓인지도 모르지만. 오이카와의 코트를 정리하여 옷걸이에 걸던 쿠니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 씨.”
“응?”
“뭐 하나 여쭤 봐도 돼요?”
“어려운 건 싫어.”
“그럼 안 여쭤 볼게요.”
“정말 쿠니미쨩은 이길 수가 없네. 물어봐, 뭔데.”
“왜 카게야마를 저쪽으로 보내신 거예요?”
“……역시 물어보지 말라고 할 걸 그랬어.”
“대답하기 싫으시면, 안 하셔도 돼요.”
“그럼 지금은 패스할래. 언젠간 얘기해줄 수 있을 때가 올지도 모르지.”


사실 지금 오이카와 씨의 그 망설임이 어느 정도 대답이 됐어요, 라는 말은 역시 할 수 없었다. 쿠니미조차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목 안쪽을 간질인다. 왜 두 사람을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는지. 방금 자신은 자신에게마저 ‘그 분위기를 겪고 싶지 않다’는 변명을 했다. 두 사람이 마주쳤을 때의 예상할 수 없는 분위기를 직접 겪고 싶지는 않다고. 그러나 아마 그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직 말로 표현할 수는 없으나,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가. 사실 쿠니미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오이카와 씨는 왜 '카게야마만' 노유키로 보내신 거예요. 역시 그 말만은 쉽사리 꺼낼 수 없었지만.


“저녁은 어떻게 하실래요.”
“아, 저녁. 먹어야지. 초밥이라도 시켜 먹을까.”
“그럼 항상 드시는 데에서 시켜둘게요.”
“고마워, 쿠니미쨩. 다 같이 먹게, 넉넉하게 시켜.”


역시 카게야마와 오이카와를 다시 만나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카게야마를 본 순간 오이카와의 표정을 보는 게 아니었다. 의식적으로라도 다른 쪽을 보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 순간의 자신은 의식적으로 오이카와의 표정을 확인하고 있었다. 자신은, 오이카와가 어떤 표정을 짓길 기대했을까. 멍청한 짓을 하고 말았다. 이제 와서 후회는 둘 곳이 없다. 애써 기억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불안한 예감이 뾰족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넥타이를 끌러 내린 오이카와가 소파에 조금 더 깊숙이 몸을 묻는다. 어지간히도 무방비한 자세의 보스를 바라보며, 쿠니미는 저도 모르게 어렴풋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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