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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오이] 흘러넘치는 말

카게오이 전력 주제 '당신이 불러주는 내 이름'

-오이카와가 '토비오(쨩)'라고 부를 때마다 정작 불리는  본인은 멀쩡하고 내가 녹아내리는데 이유를 좀 설명해주실 분...

-카게오이 전력 주제 '당신이 불러주는 내 이름' (맞나?)  입니다. 쫌 많이 지각입니다...제성해요...ㅠㅠㅠㅠ

-근데 사실 카게야마가 이렇게 생각이 많은 건 안  어울리는데... 그렇지만...씁니다.

-맨날 이런 글만 가져와서 죄송해요... ㅠㅠ ㅠ 아 얘네  배구바보들이라 넘 연애시키기 힘든 것... (징징

 

 

 

 

 

이제 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을 꽤 좋아했다.

 

그의 입에서 누군가의 풀네임이 제대로 나오는 걸 들어본  기억이 없다. 대부분 성이나 이름을 제멋대로 뚝 떼거나, 그 사람의 특징 같은 것을 애칭으로 만들어 불렀기 때문이다. 이와이즈미 씨는 이와쨩,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우시와카쨩. 상대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것은 그에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 애칭은 때로는 친밀감의 표시로, 때로는 도발로  작용했다. 키타이치 중학교 선후배 간의 예의범절은 매우 엄격하다는 말은 진학이 결정된 후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다. 그게 무섭다거나  걱정되는 건 아니었지만, 역시 주장의 특기가 ‘애칭 선사’라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기억이 난다. 2, 3학년 선배들을 하나하나  자신만의 애칭으로 부르는 그를 보면서, 내게는 어떤 애칭을 주려나- 나는 내심 기대했다.

 

그는 나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배구부 전체가  알았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다 한들, 그가 이와이즈미 씨를 대할 때와 나를 대할 때의 온도 차이를 보면 그것은 확연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안다’기보다는 ‘느껴졌다’고 표현하는 게 올바를지도 모르겠다. 그가 나를 달가워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른다. 스트레칭을   느슨하게 하고 있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등 뒤에 서서 어깨에 손을 올리며 ‘스트레칭 제대로 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라고 말해주고, 연습할 때  공이 멀리 튕겨 나가면 주워서 던져주는 정도의 아량은 있었다. 그는 종종 그 모든 것들이 주장으로서 부원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주장으로서의 배려는 대체 어디까지인지. 점프 서브를 가르쳐주는 건, 주장으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닌  걸까? 아무리 귀찮게 쫓아다녀도 그는 절대 서브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른 1학년의 스파이크 연습 상대는 해 주면서도 내 서브 연습 상대는 해  주지 않았다. 결국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는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직접 가르쳐주었다면 조금 더 나은 서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은 그 후로  꽤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리 예쁜 후배가 아니었음에도 그는 나에게마저 애칭을  붙여주었다. 어느새 그는 나를 ‘토비오’라고 부르고 있었다. 대개 성이나 이름을 뚝 잘라 그 뒤에 ‘쨩’을 붙이는 그의 애칭 패턴과는 달랐다.  그는 온전한 내 이름만을 입에 담았다. 흘리거나 놓치는 음절 하나 없이. 내 이름은 그의 입에서 나오면서 조금 더 모양새를 갖추고는 했다.  평소에는 성으로도 충분하므로 내 이름을 까먹을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그 덕분에 나는 항상 내 이름을 자각했다. 내 언행 중 무언가가 그의 심기를  건드릴 때 비로소 그 뒤에 ‘쨩’이 붙었다. 보통 그 반대 아니야? 라고 생각했다. 그 말을 직접 그에게 할 용기는 없었다. 생각해 보니 집  밖에서 누군가가 나를 이름으로 부르는 건 처음이었다. 비록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고 딱딱할 때가 있을지언정, 이름을 불러주는 그의  목소리는 항상 다정했다. 아마 그가 부르는 내 이름이 품은 온기는 그의 체온과 똑 닮았을 것이다. 왜 저만 이름으로 부르세요? 속으로는 몇백  번, 몇천 번 되풀이한 질문이 그의 앞에서는 죽어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만족할 만한 대답이 나올 리도 없고, 어떤 대답이 나와야 내가 만족할지  자신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게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는 내 이름을 한 음절 한 음절, 정성스럽게 발음했다. 아마 모든 사람의 이름을 그렇게  불렀겠지만. ‘토’를 발음할 때는 동그란 입술 모양을 따라 눈도 살짝 동그래지고, 이어 ‘비’를 발음할 때는 입술이 양옆으로 가늘어지면서 마치  싱긋 웃는 것처럼 보였다. ‘오’로 마무리 지을 때는 이미 여느 때의 새침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세 음절밖에 되지 않는 내 이름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그는 말을 결코 빠르게 하는 타입이 아니었으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은 유독 짧게 느껴졌다. 중학교 1학년과 3학년,  사내아이들끼리 이름을 부르면 놀림감이 되기 딱 좋은 나이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나를 성으로 부르지 않았다. 적응하기는 어려웠지만 싫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가 유일하게 ‘이름’으로 불러주는 사람이 이와이즈미 씨도 아닌, 바로 나라는 사실에 묘한 자부심을 느꼈을지도. 

 

-그리고 토비오쨩! 네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붙을 땐 꼭 꺾어줄 테니 각오해!

 

중학교 3학년, 마지막 대회의 수상식 자리에서 그는 나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잔뜩 벌게진, 눈물 콧물로 범벅된 얼굴. 나를 가리키는 손가락과 그 얼굴을 번갈아 보다, 나는 주머니에서 티슈를 꺼내 건넸다.  솔직히 안 받아도 상처받지 않을 준비를 하며 내밀었지만 그는 시끄럽다면서도 내 손에서 티슈를 채어가 냉큼 콧물을 닦았다. 그가 우시지마 다음으로  꺾고 싶어하는 게 나라는 사실은 두 번째 자부심의 재료로 충분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그와 맞붙었을 때 지지 않으려면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부른 내 이름에는 눈물이 잔뜩 묻어 있었다. 

 

-얏호, 토비오쨩. 왕 놀이는 잘하고 있어?

 

그리고 이 년 만의 재회.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가  여전히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그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은 이전과 다름없이 상냥하여, 나는 긴장하는 한편 무너지는 듯한  안도감을 느꼈다. 도발의 의도가 명확한 문장임에도 악의는 없었다. 그는 옛날부터 이랬다. 좋은 성격은 아니더라도-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사람을  덮어놓고 미워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도발은 일종의 여흥이라는 것을 안다. 그 이후는 페이스 싸움이다. 그 도발에 흥분하는 건 그의 페이스에  휘말려 자멸하는 꼴이고, 냉정하게 받아치거나 무시하면 그는 그다음 수를 준비할 뿐이다. 혼자 있을 때는 또 모르지만 지금은 카라스노 부원들과  함께 있는 자리다. 나는 그 말에 대한 대답을 삼키고 그를 무시하려 애썼다.

 

하지만, 내가 그를 무시하지 못한다는 건 다름 아닌 그가  가장 잘 아는 사실이었다.

 

*

 

“여기서 뭐 해?”
“오이카와 씨?”
“아이스크림  고르는 거야? 난 이 우유 맛이 좋더라. 그리고 그 촌스러운 티셔츠는 정말 별로네. 알고 있어?”
“…….”

 

내 양손에 들린 딸기 맛과 우유맛 아이스크림 중 우유맛  아이스크림을 홱 채 간다. 내 손에는 딸기 맛밖에 남지 않았고, 냉동고 안에는 똑같은 분홍색만 가득했다. 골라달라고 한 적도 없거니와 가져가도  된다고 한 적은 더더욱 없는데……. 그의 앞에서 이런 말을 해봤자 안 통한다는 걸 알기에 나는 얌전히 딸기 맛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아이스크림을 계산하고 나와 바깥의 쓰레기통 앞에서 껍질을 벗기고 있으려니 오래지 않아 그가 나왔다. 손에는 아까 그 우유맛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다. 이마 위에 손 그늘을 만들어 하늘을 올려보던 그는 아이스크림 포장을 뜯어 버리고는 앞서 걷기 시작했다. 갈림길이 나오기까지는 같은  방향이라, 자연스럽게 내가 그를 한 발자국 정도 뒤에서 따라가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배구 잡지를 사러 서점에 나왔다가 뜻밖에 그를 만나고,  우유맛 아이스크림을 빼앗기고, 티셔츠를 지적당하고……. 일상 같지 않은 일상이 한꺼번에 펼쳐져 약간 적응하기 어렵다. 중학교 1학년 때 한번,  귀갓길이 겹쳐 이렇게 나란히 걸은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때는 각자 뭘 들고 있었더라. 거기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도 나를  토비오쨩이라고 불렀을까.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여름방학은 어때. 잘 지내?”
“……네, 뭐  그럭저럭.”
“이다음에도 돌아가서 연습할 거지?”
“네.”
“가끔은 쉴 줄도 알아야 하는데, 토비오쨩은 그게  탈이라니까.”
“쉬고 있잖아요, 지금.”
“내 말은……. 아니, 됐어.”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바람에 내 시야 끄트머리에서  다갈색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여름 햇빛의 끄트머리. 딸기 맛의 인공적인 달콤함이 혀 위에 차갑다. 

 

“오이카와 씨.”
“응?”
“아니…….  아니에요.”
“뭐야, 실없긴.”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고 그는 다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하마터면, 옛날부터 마음속으로만 간직했던 질문이 튀어나올 뻔했다. 왜 저만 이름이에요? -라니, 바보 같기는. 

 

“그나저나 토비오도 키가 많이 컸네. 백 팔십 정도  되나?”
“네. 오이카와 씨보다는 좀 작지만.”
“아마 오이카와 씨만큼은 못 클걸.”
“저, 더 클 건데요.”
“나는  멈춰있는 줄 아나 본데, 턱도 없어.”

 

그는 씩 웃으며 검지를 양옆으로 흔들어 보인다. 살짝  울컥했지만 더 반론할 말도 떠오르지 않아 묵묵히 걷기로 했다. 내 침묵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뭔지 모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기 시작한다.  낯익은 상점가가 늘어서 있고, 옆으로는 실개울이 흐르는 평범한 동네의 풍경. 갑자기 그가 멈춰 서서 손을 턱 내밀고 나를 바라보기에, 뭔가 싶어  보니 막대기, 하는 한 단어가 돌아왔다. 어느새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채 빈 막대기만을 입에 물고 있는 나를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쓰레기통 옆에  멈춰 선 것이다. 아, 감사합니다. 황망한 한 마디와 함께 나는 그에게 막대기를 건넸다. 막대기 두 개가 한꺼번에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가고,  사람 두 명은 가던 길을 계속 걷기 시작한다. 간간이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가 아스팔트 포장 도로 위에 열기를 더했다. 그때마다 그는 얼굴을  조금씩 찌푸렸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꼬맹이는 어쩌고 혼자 나왔어?”
“네?”
“주황  머리 꼬맹이 말이야. 카라스노 10번, 네 파트너.”

 

파트너, 라는 단어에 유독 힘을 준 것처럼 느껴졌지만 기분  탓일 것이다.

 

“아……. 히나타요? 그렇게 친하진  않은데.”
“뭐?”
“그러니까, 휴일에 굳이 같이 쇼핑을 나올 정도로 친하지는 않다는 뜻이에요.”
“하아. 토비오쨩은 옛날부터  붙임성이 좀 부족하기는 했으니까.”
“……관계없는 것 같은데요. 애초에 그 녀석 집은 반대 방향이기도 하고.”

 

딱 원하던 반응이 나왔는지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다. 그  미소를 보고서야 도발에 보기 좋게 넘어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으려나. 

 

“그러고 보니 중학생 때도 이렇게 둘이 걸은 적이  있었던가?”
“아…….”

 

그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반가움과도 닮은  미묘한 감정이 목덜미를 스쳤다. 고개를 갸웃하는 걸 보니 그도 선명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고, 대강 흐릿한 윤곽만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네,  맞아요. 얼른 동감을 표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그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아, 난 이쪽. 토비오는 그쪽이지?”
“네.”

 

걷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마트에서 갈림길까지 십 분 남짓  걸리는 시간은, 마치 그가 내 이름을 말할 때의 이 초처럼 짧아서. 물 위로 부서지는 빛 무리가 눈앞에 어지러웠다. 오른손이 끈적했다. 아마  아까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흘린 모양이다. 이제서야 느끼다니 대체 어떻게 돼 먹은 신경계인가 싶으면서도, 여기까지 누구와 함께 걸어왔는지를  떠올려보니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련없이 손을 흔들어 보이며 갈 길을 가는 그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입을  열고야 만다. 두 발자국 정도 떨어졌기에 굳이 목소리를 높일 필요는 없었다.

 

“저, 오이카와 씨.”

 

그는 멈춰 섰지만 이쪽을 돌아보지는 않았다. 그 등은 말없이  내 대답을 재촉한다. 눈을 감고 심호흡하자 순간 암전하는 시야에 뜨거운 공기가 훅 끼쳐왔다.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그를 불러 세운 걸까.  시답잖은 거면 없어, 라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착각. 눈을 뜬 그곳에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 그 자리에 선 그의 뒷모습이 있었다.  숨을 몰아쉬는 내 기척을 느꼈는지 그가 뒤돌아서 나를 마주 보았다. 직사광선처럼 내리쬐는 눈빛에 문득 숨이 막혀온다.

 

“그러니까, 저……. 당신 입에서 나오는 제 이름, 꽤  좋아해요. 옛날부터. 아마도.”

 

꼴사납게 말을 더듬으면서도, 나는 삼 년 동안 그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결국 하고야 말았다. 천천히 커지는 그의 눈동자 안에서, 내가 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줄곧 전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닿을지 알 수 없어 하지 못했던 말이 뜨거운 공기 안에 차올랐다. 잠깐 묘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던 그가 입을 연다.

 

“……나도, 내가 부르는 토비오의 이름, 마음에 들어.  처음부터 그랬으니까.”
“네……. 네?”
“곧 봄고 예선이지? 그때 보자. 이번에도 안 봐줄 거야.”

 

안녕, 로드워크 힘내. 그런 말을 덧붙이며 그는 가던 길을  마저 걷기 시작했다. 나는 멍청히 그 자리에 멈춰선 채 점점 작아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또 불러세울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뒤돌아 걸을 마음도 들지 않았다. 수많은 대답이 머릿속에 뒤죽박죽 오가는 와중에도 이런 종류의 대답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분명 나를 놀리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다. 놀리는 거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심장이 엇박자로 뛰기 시작했다. 그곳으로부터 시작한 미열이 온몸 곳곳에 퍼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름 햇빛 탓이다. 여름 햇빛 탓이니까, 이대로 뒤돌아서 집으로 가자. 손에 들린 배구 잡지는 책상 위에 올려두고  오늘 트레이닝 목표를 채워야 한다. 머리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여름 햇빛에 녹아, 내 안으로  흘러넘치다 못해 아스팔트 위로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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