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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오이] 끝나지 않는 1+2

*카게오이.

*대학교 설정(3년 후).

*잡덕임을 인정하면 광명을 찾습니다  여러분.

*갠적으로 스가와 오이카와가 친했으면 좋겠따....는 사심이  들어갔다. 언젠가 옷쇼핑도 같이 시켜줘야지...

*오이카와가 스가를 부르는 '상쾌군'이라는 호칭 좋아하지만,  나중에 친해졌을 때에도 그렇게 부르면 스가는 진지하게 화낼 것 같다...(무서워

*이것도 분명 결말까지 생각했떤 것 같은데,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설정(카오 대학교 동거)의 글이 나오는 바람에 의욕을 잃었다......... 앞으로도 완결지을 일은 없을 것 같...





 



“다녀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이란 걸 알면서도 습관으로  굳어진 인사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스포츠백을 먼저 턱, 내려놓고 신발을 벗은 후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침부터 환기하지 못한 공기가  침묵에 섞여 잔뜩 고여 있었다. 봄이 왔다지만 아직은 쌀쌀한 날씨. 넉넉지 못한 자취생이라 집이 빈 사이에 난방을 튼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사치였다. 자신의 옷에 묻어온 바깥 공기의 냄새를 맡으며 오이카와는 일단 불을 켠다. 깜빡, 깜빡하면서도 형광등은 제 몫을 다했다. 슬슬 여분을  사와야 하나. 텁텁한 공기를 얼른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창문부터 연 후, 침대에 걸터앉아 핸드폰을 켰다.


오이카와는 도쿄의 한 대학에 배구 특기생으로  스카우트되었다. 고등학교 마지막 대회까지 결국 전국 제패는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그를 눈여겨본 학교가 있었다. 배구팀이 특히 유명한 학교였고 이  학교라면 당분간은 끝나지 않을 자신의 배구를 지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안을 수락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함께 배구를 해온 이와이즈미와는  헤어지게 되었다. 이와이즈미는 배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생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다고 했다. 도쿄로 출발하기 전날, 인사를 하러 가서 눈물을  찔끔 흘리고만 오이카와에게 이와이즈미는 뭐라 대답했더라. 


‘어디 죽으러 가냐,  멍청아.’


지금 떠올려보면 가장 이와이즈미다운 한  마디였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도 오이카와가 충분히 읽어낼 만큼의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래서 오이카와는 더 서운한 티를 내지 않기로  했다. 같은 팀으로, 세터와 에이스로 함께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이와이즈미는 영원한 자신의 파트너라고 생각했다. 물론 부끄러워서 그 말을 솔직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이것도 벌써 삼 년 전의 일이다. 


-뭐 하냐. 밥은 먹었어?


그런 이와이즈미로부터 오랜만에 메일이 와  있었다.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한 달 정도 전일까. 둘 다 서로의 생활이 있고 각자의 일로 바쁘다 보니 예전처럼 심심하면 연락을 주고받지는  못하는 처지다. 솔직히 조금 감동이었다. 아직 코끝에 고여 있는 것만 같았던 텁텁한 공기가 한 번에 사라지는 듯한 상쾌함. 뭐라고 대답을 할까,  고민하다가 오이카와는 곧 통화 버튼을 눌렀다. 두 번의 신호음이 가고 이와이즈미가 전화를 받는다.


“얏호, 이와쨩. 잘 지냈어? 감기는 안  걸렸고?”
「……선수 치지 마, 바보카와. 넌  어때.」
“난  물론 건강하지. 너무 호조라 탈인걸.”
「알만하네.」


푸흐, 하고 웃어버렸다. 감기는 이와이즈미보다  오이카와 쪽이 훨씬 자주 걸리고 이와이즈미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보통 감기에 걸리지 않았느냐는 질문은 이와이즈미 쪽이 하는 인사였다. 전화  너머지만 역시 오랜만에 듣는 이와이즈미의 목소리는 기분이 좋다. 퉁명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그 목소리에는 나름 온도가 있었다. 


“그래서 말이야, 오늘  히라츠카가…….”


어느 새 이와이즈미의 귓가에 댄 핸드폰이  뜨거워져 있다. 핸드폰을 귀에서 슬쩍 떼고 액정을 보니 통화 시간은 이미 오십 분을 넘겼다. 오랜만에 떠는 수다라 그런지 살짝 흥분한 모양이다.  주로 오이카와가 학교생활과 배구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이와이즈미는 묵묵히 그 이야기를 도로 감아올리는 구도였다. 오이카와의  배구팀 이야기를 하루 이틀 듣는 게 아니기에 이와이즈미도 히라츠카가 누군지는 알고 있다. 얼굴 따위는 본 적이 없지만, 나름 기대받는 2학년  미들 블로커라는 사실과 꽤 죽이 맞아 함께 놀러 다니곤 한다는 것 정도가 그가 가진 정보였다.


“……이와쨩, 듣고  있어?”


오이카와가 살짝 볼멘소리로 말했다. 평소와는  달리 대답 속도가 조금 늦다는 걸 기가 막히게도 간파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오이카와 앞에서 대강 속여 넘기는 건 전혀 안 통한다.  이와이즈미는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너희 학교 배구팀에 내 후배가  들어가거든.」
“에?”
「그러니까 잘 부탁한다는 말 하려고 메일  보냈어. 어, 나 조별모임. 끊는다!」
“잠, 이와쨩……!”


채 문장에 마침표를 제대로 찍기도 전에  이와이즈미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여전히 거짓말은 못 하는 성격이다. 이 시간에 조별모임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벌써 시계는 열 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공허 상태로 돌아가 버린 핸드폰을 멍하니 쥔 채 오이카와는 침대 위에 눕혔던 몸을 천천히 일으킨다. 전화를 끊고 일 분도 되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계속해서 걸리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만, 이와쨩의 후배라면 내 후배기도  한데?’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는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유치원은 논외로 치고- 다른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그러니 이와이즈미가 아는 후배라면 곧 자신의 후배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왜 굳이 ‘내’ 후배라고 표현한 걸까?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통틀어 몇몇 후배의 얼굴을 빠르게 훑고는 오이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감이 딱  오질 않는다. 


‘설마…….’


맨 마지막에 떠오른 밉살맞은 얼굴에,  오이카와는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마치 머릿속의 영상을 떨쳐내기라도 하듯. 


그 머릿속 영상의 주인공, 카게야마와 히나타  콤비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을 거듭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이카와도 졸업 후 몇 번 그들의 경기를 보러 갔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는 코트는 조금  쓸쓸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수확은 컸다. 첫째로 카게야마의 서브. 원형은 역시 자신의 것을 닮았지만 볼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그저  보고 베끼기만 하는 게 아니라 꾸준한 노력을 통해 정말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게 오이카와의 눈에도 보였다. 역시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없는 후배라니까. 감탄하고 싶은 건지, 비꼬고 싶은 건지도 확실하게 알지 못한 채 오이카와는 애꿎은 입술을 물어뜯곤 했다.


수확 두 번째는 꼬맹이의 정확도다. 분명  초기에는 카게야마의 정확도에 백 퍼센트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뒤로 갈수록 자기주장을 확실하게 하고 있었다. 카게야마도 그것을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적어도 오이카와가 보기에는 그랬다. 함께 한 시간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짧지만, 그리고 정말 인정하기 싫었지만 카게야마와 히나타  콤비는 이미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를 넘어 서 있었다. 바로 작년, 그러니까 그 둘의 마지막 봄고 결승전을 보고 난 후에 관중석에서 일어나는 그  순간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옆얼굴에서 쏟아져 나오는 후련함을 보았다. 그리고 분명 자신의 얼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강의 콤비, 앞으로의 행방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냐, 바보.”


누구를 향한 것이라고 할 수도 없는 투덜거림이  말끝에 저절로 따라나왔다. 구석으로 제쳐 두었던 배구 잡지 이월호. 불안한 형광등 빛의 역광을 받아 글씨조차 잘 보이지 않지만 이제 닳도록 읽어  제목 정도는 외우고 있다. 카라스노가 연속 세 번 전국 대회를 제패하면서 카게야마와 히나타 콤비는 유명해졌다. 동시에 고등학교 졸업 후 그들의  행방에 대해 각종 추측성 기사가 쏟아져 나왔는데, 이 기사도 그것 중 하나였다. 나랑 이와쨩이 졸업할 땐 이런 기사 하나도 없었으면서- 괜히  속으로 툴툴거리며 오이카와는 다시 잡지를 밀쳤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종이 꾸러미 떨어지는 소리가 고요한 방 안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내용은 이미 알고 있다. 외울 정도로 읽었다.  간략히 정리하자면 ‘꼬맹이’와 ‘더럽게 귀여운 후배’가 유명한 도쿄의 대학교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며, 어느 정도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이다. 누구도 그 두 사람을 떼어놓고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이미 카게야마와 히나타는 서로의 옆이 가장 자연스러운  파트너가 되어버렸으니. 덧붙여 그 둘을 스카우트했다는 학교는 오이카와도 알고 있었다. 우시지마가 스카우트된 학교며, 자신에게도 손을 내민  곳이다. 우시지마가 한때 말했던 그 ‘하찮은 자존심’ 문제는 아니다. 그와는 플레이스타일이 평생을 가도 맞지 않을 거란 사실을, 오이카와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세터로서 그 팀의 능력치를 전부 이끌어내는 덴 자신이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우시지마는 꺾어내고 싶었다.  명성으로 보면 그 학교가 분명 위였지만 오이카와는 망설임 없이 지금의 학교를 택했다. 삼 학년이 되었고 그 학교와 맞붙어 이긴 적은 손에 꼽는  지금도 그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런 거물 학교로부터 제안을 받았는데, 그  둘이 아무리 멍청이라고 해도 그런 기회를 놓칠 리는 없다. 그러니 이와이즈미가 말한 후배는 적어도 카게야마는 아니다. 그럼 대체 누구란 말인가?  킨다이치? 아니면, 쿠니미? 그것도 아니면, 키타이치 녀석인가? 석연치 않은 머리를 끌어안은 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오이카와는 결국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안 그래도 오늘 새로운 포메이션 문제로 주장과 대토론을 벌이다 온 터라 머리는 과부하 일보 직전이다. 아는 놈이라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마는 거겠지. 벌떡 일어나 창문을 닫고, 속옷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배구팀 신입생과의 첫 대면식이  있는 날이었다.

 


*

 


「오이카와 선배, 지금 어디예요? 주장의  술주정이 너무 심해요. 빨리 와서 좀 말려 봐요.」
“내가 그래서 그 사람 술 세 병 이상 못  마시게 하랬잖아, 히랏치!”
「저 이 학년이라구요?! 너무 큰 걸  기대하시는 거 아니에요?」


체육관에 혼자 남아 토스 연습을 하다 보니  모임 시간을 훌쩍 넘겼다. 느슨하게 흘러내리는 스포츠백 끈을 다시 추어올리며 오이카와는 속도를 조금 높였다. 주장은 사람이 좋지만 술을 과도하게  좋아하는 면이 있어, 누군가 옆에서 제동을 걸지 않으면 그야말로 뻗을 때까지 마셔버리는 타입이다. 신입생들을 처음 만나는 곳인데 주장이  엉망진창으로 취했다니, 이보다 꼴사나운 일은 없다. 나름 이미지를 중시하는 오이카와에게 그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기도 했다. 바로 앞이야, 끊어.  라고 말하고 대답은 기다리지 않은 채 오이카와는 전화를 끊었다. 안주 냄새와 튀김 기름 냄새, 그리고 왁자지껄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따끈하게  데워진 채 문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저어, 세이와(淸和) 대학교  배구팀인데요.”
“아, 어서 오세요. 안쪽 방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오이카와가 사근사근 웃는 얼굴로 말을 붙이면  누구도 싫은 얼굴을 보이는 법이 없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 하는 속담과는 살짝 의미가 다를지도 모른다. 하물며 가게 종업원은 더욱  그러하다. 살짝 얼굴을 붉히며 손짓으로 안내하는 여종업원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오이카와는 곧장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어, 오이카와 선배. 일찍  왔네요.”
“바로  앞이라고 했잖아. 모인지 몇 시간이나 됐어?”
“한 시간 정도  됐나?”
“이  사람들이 신입생?”


이만큼 분위기가 풀어 헤쳐져 있는데도 여전히  정좌를 고수한 몇 명은 한눈에 봐도 신입생의 티가 난다. 안녕하심까, 하고 체육계 특유의 투박한 인사가 제대로 박자에 맞추어 튀어나왔다. 싱긋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대학교 일 학년이라기보다는 고등학교 사 학년의 느낌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딘가 기합이 들어간 사복은, 바로  몇 달 전까지는 교복을 걸쳤을 몸을 어색하게나마 덮고 있었다. 아마 삼 년 전의 자신도 저랬겠지. 쓴웃음을 베어 물며 오이카와는 겉옷을 벗고  히라츠카 옆에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 술잔과 젓가락, 앞접시가 놓인다. 오이카와는 술은 잘 못했지만, 그 분위기 자체는 싫어하지 않았다.  신입생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을 정도로만 슬쩍 그들을 훑어보아도 낯익은 얼굴은 없었다.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근데 오이카와 선배, 이번 신입생 중에 진짜  대단한 놈 있는 거 알아요?”
“왜, 누가 고등학교 때 이름 좀  날렸대?”


키득키득 웃으며 오이카와는 풋콩을 집어  들었다. 알맞게 간이 되어 삶아진, 선명한 연둣빛의 풋콩이 식욕을 자극한다. 바로 전까지 체육관에서 땀을 빼다 왔으니 허기가 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선배만큼 대단한 놈이라니까요.  무려…….”
“그래그래, 엄청난 강스파이크를 날리는  왼손잡이 세터에 점프플로터 서브까지 쓰는 녀석이겠지.”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누군데, 얼굴이나 좀  보자.”


픽 웃으며 콩깍지를 여는데 헛손질을 하는  바람에 콩 한 알이 통, 튀어나와 바닥에 굴렀다. 주워서 먹을 생각은 없지만 누가 밟으면 미안한 일이다. 오이카와는 살짝 몸을 뒤로 젖혀 콩을  찾는다. 콩은 데굴데굴 굴러 누군가의 발 앞에서 멈추어 섰다. 희고 긴 손가락으로 콩을 집어 들어 아무렇지 않게 상 위에 올려놓으려던  오이카와는, 돌연 엄습한 쎄한 느낌에 동작을 멈추었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전해져오는 불안감. 이런 육감은 빗나간 적이 없다. 분명 시선을 올리면  굉장히 싫은 얼굴과 마주하게 될 거라는 느낌에 등줄기가 찌릿했다. 하지만 그대로 멈춰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화장실을 만들어서 갔다  오냐?!”


잔뜩 술에 취한 주장의 걸걸한 목소리. 그러나  그것보다도 그 전의 깍듯한 목소리가 더 신경쓰였다. 오이카와는 문득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역겨움을 느낀다. 왜 저 놈은 인생에  도움이라는 걸 주지 않는 걸까. 도움 따위는 필요 없으니 훼방이라도 그만 놨으면 했다. 미야기에서 도쿄로 옮겨오면서 앞으로는 다시 마주칠 일  없는 면상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보기 좋게 그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말았다. 천천히 시선을 올린 곳에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카게야마  토비오가 서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오이카와  선배.”


아, 정말…… 싫다.



*



“오랜만이네, 토비오쨩. 잘  지냈어?”
“네.”


오이카와는 먼저 일어서서 카게야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예상한 건지 못한 건지, 카게야마는 머쓱한 표정으로 바지에 문질러 닦은 손을 내어 오이카와의 손을 잡아온다. 나란히 서는 건 몇 년  만이더라. 영영 꼬맹이일 것 같던 카게야마도 키가 훌쩍 컸다. 이제는 오이카와와 비슷한 정도일까.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후배의 얼굴에 어제  왜 이와이즈미가 황급히 전화를 끊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이와쨩이 내 얼굴 본지가 너무 오래됐지, 응. 조만간 미야기로 내려가 한 대  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어금니를 악문 채 카게야마의 손을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고 오이카와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원래 아는  사이였어요?”
“응, '귀여운' 중학교  시절 후배.”
“아하, 선배도 미야기  출신이었지…….”


예삿일처럼 중얼거리는 히라츠카의 목소리를  넘겨들으며 오이카와는 자신의 잔에 술을 따랐다. 이와이즈미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신에게 카게야마를 부탁한 건지도 알 수 없었고, 아무리  이와이즈미의 부탁이라 해도 카게야마를 잘 봐 주고 싶은 마음도 없다. 가만히 있다가는 레귤러 자리까지 내주어야 할 판인데, 뭐가 예쁘다고 이런  시건방진 꼬맹이를 봐 준단 말인가. 오이카와는 일부러 더 크게 웃으며 분위기를 띄웠다. 중간 중간 카게야마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일부러 무시했다. 쓸데없이 날카로운 눈초리는 자꾸만 신경을 툭, 툭 건드려온다. 뭔가 말하고 싶은 눈치가 역력하다. 내가 네게  관심을 일 그램이라도 줄 줄 알아? 잔뜩 비틀린 신경으로 오이카와는 혼자 중얼거렸다. 눈치 없는 팀원들은 하하 호호 즐겁기만  하다.


그런 템포로 마시다 보니 평소 주량을 살짝  넘겼다. 여러 사람이 만들어낸 이산화탄소를 계속 들이마시던 머리는 급기야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술기운보다도 이 탁한 공기가 더 거슬렸다.  히라츠카에게 잠깐 나갔다 오겠다는 눈짓을 해 보이고 오이카와는 방을 나왔다. 아직 자신의 신발을 구분할 수 있는 걸 보면 오늘은 술이 잘 받는  날인 듯하다. 신발 뒤쪽이 구겨지지 않게 손가락을 밀어 넣으며 신을 신고 가게를 나왔다. 선선한 밤 공기가 얼굴부터 훅 끼쳐온다. 가게 앞에  만들어진 벤치 위에 걸터앉은 채 심호흡, 심호흡. 숨을 고르다가 누군가 옆에 와서 서는 기척을 느끼고 오이카와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근데, 넌 왜  따라나와?”
“네? 따라나오라고 눈짓하신 거  아니었어요?”
“너한테 한 거 아니거든, 멍청이  토비오…….”
“저한테 하실 말씀 있는 줄  알았는데요.”


입 안에서 맴도는 술맛이 영 거슬려 오이카와는  제 얼굴을 감싸고 말았다. 하여간 눈치 없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생각을 하며.


“‘초고교급 천재 세터 카게야마  토비오.’”
“……?”


비틀거리는 시선을 향한 곳에는 의아한 표정의  토비오. 아, 정말 싫다. 이런 점이 싫다는 거야. 이 말마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오이카와는 제 머리를 싸안는다. 잡지에서 자주 보던  수식어.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의 이름 앞에 붙었던 수식어다. 오이카와가 어떤 노력을 거쳐 이 정도 실력을 쌓았는지 잘 모르는 언론들은, 천재와  꽃미남이라는 단어로 그를 수식하기 일쑤였다. 물론 매우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래도 공통된 수식어가 붙는다는 건 가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의도한 건 아니더라도 마치 호칭을 물려주고 떠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드니까. 옅은 술 냄새가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떠돌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안주는 거의 먹지 않았다. 


“……우시와카가 있는 곳으로 간 거  아니었어?”
“아.”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카게야마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한 음절만을 내뱉는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히나타는,  갔어요.”
“그렇구나-”


상당히 영혼 없는 감탄사가 한숨처럼  흘러나온다. 둘 중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근데 너는 왜 여기야? 정말 궁금했지만 그 말만은 쉽사리 형태를 갖추지 못한다. 오이카와는 쓰게  웃으며 계속해서 뻗쳐오려는 짜증을 깨문다. 술에 취한 탓인지 머리가 날카롭게 돌아가지 않았다. 옛날부터 이 망할 꼬맹이는 자신의 화를 돋우고는  했다. 차라리 정말 나쁜 놈이거나, 자신의 실력만 믿고 나대는 놈이었다면 마음껏 미워했을 텐데 본심이 그게 아니라는 걸 아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무런 사심(邪心)없는 까만 눈동자. 


“안  물어보세요?”
“……뭘.”
“저는 왜 여기로  왔는지요.”
“…….”


이런 점도 짜증 난다. 언제나 솔직하고 올곧은  눈빛에, 마치 머릿속을 읽는 것 같은 질문까지. 순순히 물어봐 주고 싶지 않다는 심술이 드는 건, 단순히 자신이 꼬일 대로 꼬인 탓만은 아니다.  여러 의미로 이 녀석도 꼬였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쪽 눈썹을 살짝 올렸다. 


“별로 안  궁금하니까.”
“…….”


눈썹의 각도가 조금 더 가파르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조금 좋아진 오이카와는 먼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카게야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래 앉아 있으면  감기 걸린다, 토비오쨩? 얼어 죽지 않게 조심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상냥한 목소리로 비아냥거린 후 오이카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게로  돌아간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 카게야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척은 나지 않았다. 살짝 더 좋아지는 기분에 오이카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음, 어쩌면 역시 내 성격이 꼬인  탓일지도.

 


*

 


“어떻게 된  거야?”
“으음-”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을 빨대로 누르면서  오이카와가 물었다. 맞은편에는 살짝 난처한 표정의 스가와라. 스가와라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레모네이드를 앞에 둔 채 그 와중에도 전공서적을  펼쳐두었다. 잠깐 할 말이 있다며, 자신이 그쪽으로 가겠다는 오이카와를 거절하지 못한 탓이다. 바로 한 시간 후에 전공 쪽지시험이 있는데. 구내  카페인 탓에 스가와라와 오이카와를 번갈아 흘끔거리는 여학생들의 시선이 옆얼굴로 따갑게 다가온다. 오이카와는 그녀들에게 향하는 서비스용 미소조차  잊은 채 진지한 얼굴로 스가와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배구를 그만두었지만, 원래 우수하던  성적 덕분에 도쿄의 공립대에 진학했다. 오이카와가 자취를 시작한 날 홈 센터에서 쇼핑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걸 계기로 뜬금없는 교류가 시작되었다.  고등학생 때에는 서로 경계하기 바쁘던 사이가, 상황이 바뀌면서 친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조금 아이러닉하다. 둘은 뜻밖에 여러 면에서 성격이  맞았다. 이와이즈미와 스가와라는 꽤 비슷한 타입일지도 모르겠다고,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와 친해지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혹은 자신은  곁에 이런 사람이 없으면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그런 자신이 본능적으로 ‘보모’를 제 곁에 부르는 건 아닐까, 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물론 스가와라는 이와이즈미와 완벽히 같은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카게야마가 너희 학교로 진학한다는 건 나도  몰랐어.”
“스가쨩, 거짓말하면 오이카와씨 화낼  거야.”
“진짜야. 몇 번 카라스노에 놀러 갔을 때  카게야마가 묘하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말을 히나타에게 전해 듣긴 했어도…….”
“잠깐만, 그러면 토비오가 일반 수험으로 우리  학교에 왔다는 뜻?”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등줄기를 쫙 폈다.  이건 그냥 들어 넘길 수 없는 말이다. 스가와라의 표정이 묘한 난처함으로 슬쩍 일그러졌다. 확실히 오이카와가 있는 세이와 대학은 일반 수험으로  들어오기에는 살짝 허들이 높은 곳이다. 하물며 배구밖에 모르는, 다른 분야에서는 멍청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는 카게야마가 들어오려면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공부가 필요했을 터다. 보통 인재가 스카우트되어 들어오게 되면 방학 말부터 소문이 퍼지기 시작해서 학기가 시작되기 조금 전에는  누구나 알게 된다. 부주장인 오이카와가 모를 수는 없다. 스카우트 소식도 없었는데 카게야마가 이곳에 들어왔다는 건, 일반 수험을 쳤다는 뜻이다.  오이카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도 잊고 있었다. 유리컵 표면에 몽글몽글 솟아난 물방울이 그의 손가락 끝에 스몄다. 왜 이걸 지금 눈치챈  걸까.


“그 자식 멍청이  아니야?!”


너무 놀란 나머지 거친 말투가 나와 버렸다.  스가와라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흥분을 감출 생각도 없이 오이카와는 컵을 들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셨다. 탕, 하고 큰 소리를 내며  컵을 내려놓고 보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반이 넘게 줄었다. 그런데도 갈증은 가시지 않는다. 조금 더 근원적인 갈증이었다. 알 수 없는 분노와  짜증, 그리고 초조함이 갈 곳을 잃은 채 목구멍 안쪽에서 뭉치고 있다. 


“나야 우시와카가 싫어서 이쪽으로 왔다 해도,  토비오는 그럴 필요가 없잖아! 꼬맹이만 그쪽으로 보내고, 하물며 일반 수험으로 세이와에 온다니 그게 말이나 돼?”
“오이카와, 너무  흥분했어.”


스가와라가 차분한 말투로 지적했다. 오이카와는  입을 다문다. 확실히 카페 안의 모든 이목이 이쪽에 집중되었다. 자기야 이 학교 학생이 아니니 상관없다 해도, 스가와라는 조금 곤란할지도  모른다.


“대체 왜 그런  거래?”
“그건  본인한테 물어봐야지.”
“싫어. 얼굴 보기도  싫어.”
“나한테  물어봐도…….”


별 도리 없잖아, 라는 말은 입속으로 삼킨 채  스가와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잘 세팅된 머리를 벅벅 긁던 오이카와는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느새 아메리카노 잔은 깨끗이  비웠다.


“가게?”
“응, 오후 연습 있어. 정말 괴롭다. 3년  동안 해방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만나다니.”
“가 봐, 나도 쪽지시험 준비 좀 하게.  카게야마에게 안부 전해줘.”
“싫-어. 스가쨩은 공부하다가 가. 계산은  내가 할게.”


혀를 날름 내밀어 보이고 오이카와는 카운터에서  계산을 한 후 카페 유리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스가와라는 전공 책과 노트를 편다. 이미 어젯밤 공부는  웬만큼 해 두었지만, 그래도 남은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봐두는 게 좋을 테니까. 볼펜을 쥐고 자신의 글씨를 본 순간, 갑자기 사 년 전의  카게야마가 떠올랐다. 확실히 인터하이 예선에서 세이죠에게 석패한 날이다. 투어택을 성공하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뒤돌던 오이카와와, 분하다는  표정으로 이를 악문 카게야마. 그 후에 카게야마는 똑같이 투어택을 시도했지만 빤히 읽히고 말았다. 그런 독심술은 코트에서만 통하는  건가.


“오이카와는, 정말 몰라서 물어본  걸까.”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혼잣말. 고개를 두어 번  저어 두 사람의 영상을 머릿속에서 떨쳐내고, 스가와라는 다시 전공 책에 파고든다. 쪽지 시험까지는 약 삼십 분이 남아  있었다.

 


*

 


“이-와-쨩-!”
「아,  오이카와냐.」
“너무해! 어쩌면 이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  있어?! 나보다 토비오쨩인거지? 그렇지?!”
「오버하지 마. 그런 말 아무도 안  했으니까.」
“오이카와씨 서운해! ‘내 후배’라니, 그런  말이 어디 있어!”
「틀린 말도 아닌데 뭐. 카게야마라고 말했으면  너 인사도 제대로 안 했을 거잖아.」
“그건……아, 아니야! 나 그렇게 매몰찬  선배는 아니라고.”
「나한테 거짓말하려면 연습을 십 년은 더 해야  할 거라고 했지.」
“으, 이와쨩 진짜  싫다~”


넋두리처럼 마지막 칭얼거림을 내뱉는다. 설마  이와이즈미에게 이런 식으로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갈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카게야마도 카게야마지만, 이와이즈미에게 속은 게 더  분했다.


「근데, 너 카게야마랑 무슨 일  있었어?」
“응?  딱히,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인사는 했냐.」
“어제 대면식에서 딱 마주쳐서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지.”
「그렇군.」
“아니, 토비오는 왜 세이와로 온  거야?”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꽃집에 말이야.」
“응.”


이와이즈미는 미야기의 한 대학에 진학한 후  벌써 삼 년 내내 학교 앞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오이카와도 한 번 놀러 가서 꽃을 산 기억이 있다. 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선물할 사람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흰 백합은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자취방에 놀러올 때마다 꽃을 사 들고  와서, 농도가 옅은 소금물을 채운 꽃병에 꽃을 꽂아두고는 했다. 이러면 꽃이 더 오래 산다나. 이와쨩, 이걸로 몇 명 꼬였어? 죽는다,  진짜.


「이 년 전인가, 아마 카게야마가 이 학년일  때 같은데. 카게야마가 왔어.」
“엑? 우연히?”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잘  몰라.」
“그런데?”
「입구에서 주뼛주뼛하길래, 우연히 근처를  지나다 꽃을 사러왔나 싶어서 내가 나갔지.」
“…….”
「날 보더니 대뜸 네가 어느 학교로 갔는지  묻더라.」
“뭐…….”
「오이카와 토오루, 네가 어느 학교로 갔는지  물었다고.」
“…….”
「딱히 일급비밀도 아니니까 그냥 가르쳐줬어.  세이와라고. 고맙다고 말하더니 안개꽃 한 다발을 사더라. 그러고는 그냥 갔어. 최근에는 한 달 전인가? 와서 그 학교에 합격했다고  하더라.」
“…….”


깨닫고 보니 오이카와 자신은 말없이 엄지손톱을  잔뜩 물어뜯고 있었다. 


「어릴 때야 쓰러뜨리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다지만, 이제 둘 다 어른이잖냐. 좀 친하게 지내봐. 나쁜 녀석이 아닌 건 네가 제일 잘 알잖아?」
“…….”
「이제 오후 연습할  시간이지?」
“응.”
「쓸데없이 시비 걸지 말고, 도발하지도 말고.  같은 팀이니까.」
“걱정하지 마,  ‘어른’.”
「알면 됐다. 끼니 잘 챙겨  먹어.」
“이와쨩도.”


여느 때처럼 평온하게 통화가 끝났다. 쯧,  혀를 차며 오이카와는 제 핸드폰을 저지 주머니에 넣었다. 통화하면서 걷다 보니 이미 체육관 앞에 도착해 있었다. 바로 오후 연습이 시작된다.  심지어 오늘은 신입생이 처음 참가하는 연습이다. 선배들이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며, 주장은 전원 참여를 요구했다. 사실 카게야마가 있다고  해서 오이카와가 빠질 이유는 없다.  


배구팀이 전용으로 쓰다시피 하는 제5체육관은  이미 팀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이카와가 들어오자마자 여기저기서 안녕하심까, 하는 인사가 들려온다. 적당히 손짓으로 받아주며 오이카와는 배구  전용화로 갈아 신은 후 코트 안쪽에 섰다. 신고식 비슷하게 신입생들은 전부 서브와 스파이크를 한 번씩 보여줘야 했다. 어제 회식 자리에서 정좌해  있던 면면들이 똑같이 잔뜩 굳은 자세로 네트 앞에 정렬해 있었다. 여전히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는 녀석도 물론 있지만. 망할 꼬맹이. 오이카와는  마음 속으로 씹어 뱉었다.


“신입생들 서브를 보기 전에, 우리 배구팀  최강의 서브를 한 번 볼까? 아니, 학교가 아니라 전국 최강일지도 모른다고?”
“……왜 선배가 더 자랑스러워하는  건데요.”
“됐잖아, 그런 사소한 건. 자자 오이카와.  서브 한 번 보여줘.”
“안 될 건 없지만.”


주장의 말대로 엔드라인에서 살짝 멀리 떨어져  선 오이카와는, 히라츠카가 던져주는 공을 받았다. 서브하기 전에 항상 공을 쥔 채 심호흡을 하는 의식은 오늘도 생략하지 않는다. 강당 안은  고요해졌다. 도움닫기를 하며 최대한 높이 날아서, 강하게 때려 넣는 스파이크 서브. 손바닥 안에 꽉 들어차는 차가운 공에 곧 그의 체온이  옮아간다. 공을 두어 번 회전시킨 후 그대로 공중으로 던져 올리고, 오이카와는 선명한 공의 궤적을 따라 뛰어  올랐다.


타앙,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배구공은 곧장  네트 건너편으로 ‘날았다’. 애초에 그 서브를 받아낼 선수는 그곳에 없다. 누가 거기에 서 있어 봤자 의미가 없다는 건 팀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엔드라인 바로 안쪽에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공은 제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튕겨나 체육관 벽에 부딪힌 후 굴러 도로 엔드라인 안쪽으로  들어왔다. 강당엔 잠깐 침묵이 돌았다. 드문드문 박수 소리가 들려 왔지만, 이 역시 익숙한 일이다. 오이카와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렸다.  끝까지 따라붙는, 집요한 시선. 아마 중학교 3학년 때와 같은 인물의 것이리라. 더 배울 것도 없는 녀석이 쳐다보기는 하여간 징그럽게 쳐다본다.  쓸데없이 진지했나 싶어 오이카와는 속으로 혀를 찼다.


“오십 음도 순으로 할까? 어, 그러니까-  카게야마 토비오.”


왜 하필! 오이카와는 그 순간 주장을 노려볼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안 그래도 비슷한데 바로 다음에 시키면 더 티가 나잖아. 기다렸다는 듯 넵, 하고 대답하며 카게야마는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이미 카게야마의 실력에 관한 소문은 팀 내에 짠하게 돌았다. ‘초고교급 세터’라는 별명 역시 모두가 알고 있다. 모두가 기대하며  보고 있었다. 카게야마가 서비스에어리어에 선다. 그러고는 공을 이마에 가져다 댔다.


“어…….”


히라츠카가 얼빠진 소리를 흘린다. 아, 정말.  오이카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는다. 왜 저런 것까지 보고 배운 걸까. 굳이 필요 없는 건데도.


몇 번을 봐 왔지만 카게야마의 서브는 자신과  닮았다. 굳이 수치로 따지자면 약, 구십구 퍼센트 정도. 첫날이라 긴장을 한 건지, 아니면 오이카와 본인 앞에서 치느라 일부러 조절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카게야마의 공은 엔드라인을 나가 버렸다. 카게야마는 덤덤한 표정으로 공을 줍더니 다음 신입생에게 넘기고 다시 신입생 줄에 가담한다.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탄식이 들려왔지만 오이카와는 꿋꿋이 입을 열지 않았다. 옆의 히라츠카가 말을 시키기 전까지는.


“아웃이지만 기세는 좋네.  그쵸?”
“뭐,  저 녀석 파워도 장난 아니니까.”
“근데 선배, 쟤한테 서브 가르쳐준 적  있어요? 아, 중학교 때 같은 코치한테 배운 건가?”
“…….”
“사소한 버릇까지 똑같네. 공 이마에 대고  나서 돌리는 건 선배한테만 있는 버릇인 줄 알았는데요. 자세도 그렇고. 선배 쪽이 조금 더 세련됐지만, 뭐랄까-”
“난 가르쳐준 적 없어.”


쟤가 멋대로 보고 배운 것뿐이야.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코트에서는 이미 세 번째 신입생이 서브 준비를 하고 있었다.

 


*

 


“너, 무슨  속셈이야?”
“……깜짝이야. 저 기다리신  거예요?”


신입생들이 코트를 정리하고 체육관 문단속을  배운 후 조금 늦게 해산할 때까지 오이카와는 기다렸다. 밖의 벤치에 앉아 카게야마를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이 조금 처량하기는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아무리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다닌다 해도 이 녀석의 속은 이 녀석만이 아는 노릇이니까, 두 사람이 남을 때를 기다려 물어볼  수밖에. 그렇다고 따로 약속을 잡고 싶지는 않고. 카게야마는 정말로 깜짝 놀랐다는 듯 눈을 둥그렇게 뜨고 오이카와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시선  부담스러워, 라고 말하며 오이카와는 그의 이마를 검지로 밀어냈다. 아, 죄송합니다. 멋쩍은 사과가 돌아온다. 그런 사과를 바란 건 아닌데, 이  녀석은 그런 녀석이었지. 오이카와는 팔짱을 끼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왜 우시와카의 학교로 가지 않고 일반  수험까지 치면서 세이와로 온 건데?”
“이제  궁금해지셨어요?”
“……묻는 말에나 대답해, 더럽게 귀여운  후배님.”
“그  호칭 오랜만이네요.”
“토비오쨩, 상당히 뻔뻔해졌구나. 눈치만 없는  줄 알았더니.”
“…….”
“난 너한테 더 가르칠 것도 없어. 애초에 뭘  가르쳐준 적도 없었지만. 어릴 때처럼 졸졸 따라다니면서 눈대중으로 배울만한 기술도, 지식도 이미 전부 토비오쨩에게 있는  거라고.”
“그래서  왔어요.”
“뭐라고?”
“제가 가르쳐 드릴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아서요.”
“……뭐?”


오이카와는 한순간 말을 잃었다. 그 와중에도,  이 녀석 눈빛은 변함없이 지나치게 진지하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카게오이 + 쿠니오이 + 기타 오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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