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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오이] 달이 노랗게 웃었다

카게오이 전력 첫 참가 / 주제 '미소'

*첫 카게오이 전력 참가

*주제는 '미소'

*키타이치시절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에게 반한 계기를 쓰고 싶었어요

*사실 카구야히메(타케토리모노가타리) 소재를 써보고 싶었을 뿐이어따구한다

 

 

 

키타가와 제일 중학교의 체육관은 일곱 시가  되면 칼같이 문을 닫았다. 더 남아서 연습을 하고 싶으면 고문 선생님의 허가를 받고 삼 학년을 포함하여 두 사람 이상이 남아야 한다. 체육관  벽에 살짝 비뚤게 걸린 시계는 이미 저녁 여섯 시 오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자, 해산! 빨리 돌아가서 각자 축제 준비해~ 오이카와가 손뼉을  치며 말했고 부원들은 별 미련 없는 표정으로 각자 들고 있던 공을 바스켓에 넣는다. 간만에 공이 손바닥에 착착 감기는 날이라 조금 더 욕심을  내고 싶었던 카게야마만이 뚱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네트를 걷던 이와이즈미가 어이 카게야마, 하고 불렀다.


“네, 넷?!”
“오이카와 말 못 들었어? 빨리  정리해.”
“……넵.”


입으로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카게야마는 표정을  풀지 않는다. 댓 발 튀어나온 입술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손에 들려 있던 공을 정리했다. 오이카와는 이미 스포츠백을 들고 부실로 걸어가고  있다. 주장이 연습 종료를 제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한 신속함이다. 이와이즈미는 체육관 열쇠를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에 걸고 빙빙 돌리며  체육관 안을 바라본다. 일 학년들은 그새 제법 빠릿빠릿해진 동작으로 대걸레를 꺼내와 체육관 바닥을 닦고, 이 학년들은 비품을 정리하는 일사불란한  움직임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던 카게야마도 포기했는지 제 키만 한 대걸레를 들고 바닥을 문지르고 있었다. 주장이 모범을 보이지는  못할망정, 뒷정리도 안 하고 가버리다니. 쯧, 하고 혀를 차고 이와이즈미는 체육관 열쇠를 저지 주머니에 넣었다. 평소 같이 귀가하던 오이카와는  오늘 볼일이 있다며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 벌써 이렇게 어두워지고 있는데 또 어딜 들르겠다는 건지. 물어봐도 제대로 된 대답은 안 나올 거라는  걸,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아는 이와이즈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빨빨거리며 넓은 체육관을 다 닦은 일 학년들이  먼저 체육관을 나가고, 비품을 전부 정리하고 장부까지 작성한 이 학년들의 뒤를 이어 이와이즈미는 불을 끄고 문단속을 했다. 부실로 돌아갔을 때  이미 오이카와는 그곳에 없었다. 보나 마나 별 시답잖은 일이리라. 여학생과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든지, 집 앞 제과점에서 한정 판매하는 슈크림을  사러 간다든지. 


“빨리 옷 갈아입고  귀가해라-”


주장이 없는 곳에서는 부주장이 곧 주장이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일 학년들은 넵, 대답하고 더 빠른 속도로 옷을 갈아입는다. 집에 빨리 가라는 거였지, 옷을 빨리 갈아입으란 소리는  아니었는데. 뭐 어찌 되었든, 의미만 통하면 됐지. 이와이즈미는 뒷머리를 벅벅 긁고는 자신도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



아무래도 성에 차지 않았다. 조금만 더 하면,  오이카와의 서브를 완벽히 복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되지 않는다. 이런 때 사람은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그만해야겠다, 적어도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하고 포기하는 타입과, 그래도 한 번만, 한 시간만 더 해보자, 하고 이를 악무는 타입. 카게야마는 후자였다. 체육관은  닫지만 집 근처 공원은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어 공만 있으면 혼자라도 연습을 할 수 있다. 공이야 항상 들고 다니니 연습에 문제는 없다. 저녁은  조금 늦게 먹어도 되겠지. 이런 날이 드문 것도 아니니 부모님도 별걱정은 하지 않으리라. 자박자박, 하는 발걸음과 함께 카게야마는 코너를  돌았다. 어린이 공원보다도 먼저 들어온 건 매우 크고 환한 달이었다. 놀이터의 모래결을 따라 달빛이 완만한 곡선으로 흐르고 있었다. 가로등이  없어도 충분히 밝은 달밤. 그리고 누군지 모를 사람 그림자가 있다. 카게야마는 저도 모르게 발소리를 죽인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달이 아름다운 밤에는 아무쪼록 저와 함께  지냈던 일을 생각해주세요.”


처음에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가 했다. 그런데  그 말이 평어와는 다른 리듬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대사 한 줄만으로 그 원전을 알 수 있었다. 카구야히메. 타케토리모노가타리다.  얼마 전 일본 고전문학 시간에 들은 기억이 난다. 누군지 모를 사람 그림자는 왼손은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달을 향해 치켜든 채 마치 노래하듯  대사를 읊었다. 훔쳐보는 처지에서도 그 대사와 배경이 어찌나 잘 어울렸는지, 대사가 끝나면 바로 달빛에 이끌려 하늘로 올라가 버릴 것만 같았다.  저도 모르게 꼭 조여드는 마음에 카게야마는 자신의 가슴을 짚었다. 왼쪽 어깨에 걸치고 있던 스포츠백이 주륵, 흘러 콘크리트 바닥에 툭 떨어졌다.  그 자세 그대로 굳어있던 그림자는 순간 빙글 돌았다. 당황과 부끄러움, 짜증이 한데 섞인 얼굴이 달빛을 받아 쓸데없이 선명하다. 


“뭐야, 멍청이 토비오! 깜짝  놀랐잖아!”
“……오이카와 씨, 여기서 뭐  하세요?”

“으, 짜증 나. 왜 하필 토비오쨩이야.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를 헤집으며 오이카와는  발을 동동 구른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는데, 거기에 더불어 선배의 짜증까지 받아버린 카게야마는 배구공을 두 손으로 잡은 채 붙박인 듯  서 있었을 뿐이다. 


“축제 연습. 나, 반 연극에서 주인공을  맡았어.”
“타케토리모노가타리요?”
“뭐야, 토비오쨩 주제에 잘 아네. 어떻게  알았어?”
“그저께 문학 시간에 배웠으니까요. 근데…….  오이카와 씨가 카구야히메예요?”
“비, 비웃지 마. 제비뽑기로 당첨된 배역이라  어쩔 수 없었단 말이야.”


으, 쪽팔려! 오이카와는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나는지 오른발을 쾅, 굴렀다. 지레 놀란 카게야마는 반 발짝 물러서다가 자신의 스포츠백에 발이 꼬여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뭐 해, 몸개그? 내 쪽팔림을 봤으니 너도  한번 보여주겠다는 거야?”
“그, 그런 건  아닌데요…….”
“일어나, 꼴사납잖아.”


오이카와는 손을 내민다. 카게야마는 바닥에  짚었던 손을 자기 옷에 문질러 툭툭 털고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구름에 가려 있던 달이 갑자기 고개를 내민다. 오이카와의 머리카락 위에  달빛이 하얗게 부서져 내렸다. 손을 잡은 채 오이카와의 얼굴만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그의 눈썹이 천천히 기운다. 토-비-오-쨩, 팔 아프잖아.  지금 선배 괴롭히는 거야? 손 확 놔 버린다? 그 말을 듣고서야 카게야마는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긴 왜 왔어? 설마, 또  연습?”
“네.”
“하여간, 노력하는 천재만큼 꼴 보기 싫은 건  없다니까.”
“저, 천재  아닌데요.”
“그런 것까지 열 받아!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면 좀 알아들어라.”


오이카와는 보란 듯 제 손을 탁탁 털더니  뒤돌아 두 발짝 정도 걸어가다가, 멈춰 서서는 다시 카게야마를 돌아보았다. 


“네 연습 좀 방해해야겠다. 이렇게 된 이상,  내 대사 연습 좀 도와줘야겠어.”
“넷?!”
“괜찮아, 나 대사는 거의 외웠거든. 네가  잘하면 서브 연습을 봐줄 수도 있고.”


쉬는 시간 동안 짬짬이 무언가 책 같은 걸  읽던 오이카와를 떠올리고, 카게야마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책을 그리 열심히 읽나 했더니 연극 대본이었구나. 오이카와는 시소 위에  놓여있던 제 가방을 열고, 스테플러로 세 번 찍힌 종이뭉치를 꺼내어 카게야마의 코앞에 내민다. 얼떨결에 대본을 받아든 카게야마는 종잇장을 몇 장  넘겨보았다. 카구야히메는 주인공이지만 대사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파란색 형광펜으로 표시된 것이 카구야히메의 대사였고, 한 장에 두어 줄  정도였다. 대나무에서 태어난 절세 미녀. 언젠가는 달로 돌아가야 할 운명의 그녀를 오이카와가 연기한다는 게 왠지 모르게 궁금하기도 했다. 잘하면  서브 연습을 봐줄 수도 있다는 그 말도 카게야마를 움직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물론, ‘잘하면’ 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고, 도와준다는 게  아니라 ‘봐준’, 그러니까 ‘구경해준’다고 했으며, 확정형이 아니라 ‘수도 있고’ 라는 어미의 상당히 모호한 말이었지만 카게야마의 국어 성적은  그것을 한 번에 파악할 정도로 좋지는 않았다.



*



“누, 눈부시도록 아름답구나. 내 여인이 되는  것이 그대의 행복이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저는 아직 그런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부, 부끄러워. 서브 연습은 필요 없으니,  그냥 이대로 집에 가 버릴까. 카게야마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부모님의 대사를 읽을 때는 괜찮았지만, 특히 구혼자나 천황의 대사를 읊을 때에는  더욱 부끄러웠다. 저절로 달아오르는 얼굴을 그네의 쇠줄로 식혀가며 더듬더듬 대사를 읽었지만, 오이카와는 천연덕스럽게 카구야히메를 연기하고 있다.  심지어 달빛을 휘젓듯 슬쩍슬쩍 움직이는 손가락 끝은 당장 지금이라도 카게야마에게 다섯 가지 보물을 찾아오라 명령할 것만 같아 어쩐지 마음 한편이  불규칙하게 뜨거워졌다. 어쩌면 제비뽑기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서 하겠다고 한 걸지도 몰라, 이 사람은. 모래 속으로 파묻히는 제 운동화 끝을  바라보며, 귀로는 건성건성 오이카와의 대사를 듣는 사이 어찌어찌 대본의 마지막 장까지 도달했다. 카구야히메의 마지막 대사. 처음 오이카와의  뒷모습이 노래하던 대사 차례다. 


“달이 아름다운 밤에는 아무쪼록 저와 함께  지냈던 일을 생각해주세요.”


그 대사를 듣는 순간 카게야마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홱 쳐들었다. 오이카와는 이미 그네에서 일어서,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감정이입을 했는지 슬픔과 여운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달빛 틈새로 부서져 내렸다. 그런데도 옆얼굴로 보이는 그 입술은 옅게 미소를 짓고 있다. 그걸 본 순간 카게야마는,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카구야히메는 분명 달로 돌아가기 전 이 세상에 이런 미소를 뿌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불규칙하게 뜨거워지고 있다고 생각한 마음이  제멋대로 날뛴다. 왠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깨닫고 보니 카게야마의 입은 머리를 거치지 않은 채 제멋대로 대답을 뱉어내고 있었다. 


“네, 네!”
“……네에? 그런 말은 대본에  없잖아?”
“아,  그……. 그러게요.”
“뭐야, 토비오쨩. 멍청하긴. 내가 정말  카구야히메고, 네가 천황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입으로는 심술이 그득한 폭언을 쏟아내면서도,  오이카와는 싱긋 웃고 있었다. 사심 없이, 눈동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다. 휘영청 밝은 달과도 똑 닮은 미소다.  교과서에서 보았던 카구야히메의 얼굴과 왠지 닮았다는 생각이 든 순간, 그의 얼굴을 더 볼 자신이 없어진 카게야마는 스포츠백을 옆구리에 낀 채  벌떡 일어섰다. 


“저, 저 저녁먹으러. 먼저 가 볼게요.  엄마가 카레 해 놔서. 내일 봬요! 실례했습니다!”
“잠깐만, 토비오쨩?!”


뒷덜미를 잡아채는 오이카와의 목소리에도 발을  멈추지 않는다. 다행히 더 불러오는 일은 없었다. 헐레벌떡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달해있었다.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심장은 잔뜩 고동치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집까지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니, 걸어온 탓은 아니다. 그러면……. 


달이 아름다운 밤에는 아무쪼록 저와 함께  지냈던 일을 생각해달라니, 그런 얼굴로, 그렇게 아름다운 달을 배경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 반칙이잖아. 왜 제 얼굴이 벌게지는지 이유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카게야마는 집 앞에 쪼그려 앉는다. 오늘 일로 달이 아름다운 날 밤에는 오이카와밖에 떠오르지 않게 됐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깨닫고  있었다. 예쁜 여자아이도 아니고, 자기에게 친절한 선배도 아니고 하필이면 자기를 제일 미워하는 오이카와라니. 놀이터에서 집까지 전력으로 달려와도  이 정도로 숨이 차고 힘들진 않을 텐데. 이건 다 오이카와 씨 때문이야. 제멋대로 그 미소를 다시 떠올리는 머리를 괜히 몇 번 쥐어박으며  카게야마는 심호흡을 한다. 머리는 어떻게 돼 먹은 건지, 그래도 그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지기만 한다. 오히려 잊지 말란  건 잘만 잊더니 왜 이런 것만 쓸데없이 생생한 거냐고.


악, 내일부터 오이카와 씨 얼굴은 또 어떻게 보라는 거야! 억울한 외침은  목소리로 나오지 못한 채 안에서 폭발했다. 죄 없는 달을 잔뜩 노려보며 카게야마는 애꿎은 입술을 씹었다. 달은 그런 카게야마를 바라보고는,  천연덕스럽게 미소 지었다. 


카게오이 + 쿠니오이 + 기타 오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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