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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오이] 야행(夜行) 3

네임버스 / 느와르AU. 쿠니오이 요소 있음







쪽, 하는 입맞춤 소리는 한 번으로 충분했다. 겹쳐져 있던 몸을 먼저 떼어내는 것도 쿠니미 쪽이었다. 흰 베갯잇 위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한번 정리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 다정한 손길에,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푸스스 웃어버렸다. 머리카락에서 떨어져 나가려는 쿠니미의 오른손을 붙잡아 아직 상기된 제 뺨 위에 내려놓는다. 쿠니미는 그리 당황한 기색 없이, 오이카와가 하는 양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손바닥이 뜨겁고 미끈거렸다. 자신의 땀인지 오이카와의 땀인지, 자신의 열인지 오이카와의 열인지 구분할 수는 없다. 저쪽은 여운을 즐기려는 것이겠지만 이쪽은 곤란해진다. 오랜 시간 이러고 있는 건 불가능했다. 오이카와 씨, 정말 한 번 더 하고 싶으신 것 아니면 그만하시죠. 약간 잠긴 목소리로 내뱉어보았으나 보스는 그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어 보일 뿐이다. 이미 즐거워하는 보스에게 말이 통할 거라 생각한 제가 멍청했다. 쿠니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게으름 좀 피워볼까? 어떻게 생각해?”
“저녁 시간을 이용해 부하 밑에 깔려서 울고 있다고 아예 사내방송을 하지 그러세요.”
“그것도 나쁘지 않네.”

들은 척 만 척, 쿠니미는 오이카와의 입술 사이에 담배를 끼워주었다. 이어 불을 붙여주려 라이터를 드는데 담배는 그 자리에 없었다. 뭔가 하고 보니 오이카와가 담배를 도로 내밀고 있다.

“빨기 귀찮은데, 쿠니미쨩이 불 좀 붙여줘.”
“…….”

쏘아붙이고 싶은 말은 있었으나 차마 그 말까지 하기에는 아직 숙련도가 부족했다. 쿠니미는 잠자코 담배를 받아들어 제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빨갛게 타들어 간 담배의 반대쪽을 입에 물려주자 그때야 그 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직 붉게 번들거리는 입술이 담배를 물고 있는 광경은 아무리 그래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에는 조금 버거웠다. 조용히 시선을 돌리는 쿠니미를 본 오이카와가 픽 웃는다.

“왜, 아직 부족해?”
“제가 여쭤보고 싶은데요.”
“오이카와 씨는 이제 무리. 나이가 들어서 큰일이야-”
“서른 살은 넘고 말씀하세요.”
“쿠니미쨩이야 아직 파릇한 이십 대 초반이니까 그런 말이 나오지, 너도 꺾여봐, 허리부터 꺾인다구.”
“네, 네.”

그럼 처음부터 도발하지를 말든지요, 라는 말을 끝내 안 꺼낸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나하나 대꾸하고 있자면 끝이 없다. 뭔가 더 말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으나, 오이카와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 엎드렸다. 이불이 허리께부터 그 아래까지 덮여있다. 자잘한 상처 때문에 매끈하지는 않지만, 천성이 흰 피부라 그 등에 저절로 시선이 간다.

“오이카와 씨.”
“응.”
“왜 이와이즈미 씨나 마츠카와 씨가 아닌 거예요?”
“……응?”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오이카와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 말뜻을 파악하는 데는 조금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삼 초 정도 쿠니미를 바라보는 오이카와의 눈이 깜박이기만 하다가, 곧 배를 쥐고 아하하, 하고 웃기 시작한다. 나름 진지한 질문이었는데, 왜 웃기만 하세요. 쿠니미가 작게 항변했으나 이미 오이카와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이 관계가 지속된 지도 벌써 일 년이다. 오이카와가 담배 좀 달라고 했을 때 별생각 없이 저는 피우지도 않는 담배를 제 입에 물고 불을 붙여 건네려 했던 게 화근이었다. 담배를 입에 문 오이카와의 영문 모를 표정. 그는 겨우 한 모금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 껐다. 건방지다고 혼나려나, 마음에 안 드셨나. 저도 모르게 움츠러든 쿠니미의 멱살을 잡아당기는 손길에 눈을 꼭 감아버렸다. 그러나 와 닿은 건 주먹이나 손바닥이 아니라 입술이었다.

“물어봐 놓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쿠니미쨩.”
“아, 아뇨. 그냥.”

옷을 꿰입던 손길이 멈추어 있었던 모양이다. 쿠니미는 말을 얼버무린다.

“왜 이와쨩이나 맛층과는 섹스를 하지 않느냐는 거지?”
“몇 번이고 생각하는 건데, 보스는 정말 침대 위에서 단어 선택이 직설적이에요.”
“빙빙 돌려 말하는 건 성미에 안 맞으니까.”
“어쨌든, 대답해주실 거예요?”
“으음, 어려운 질문이네. 요즘 쿠니미쨩은 날 괴롭히는 질문 리스트 작성 중인가?”

싱긋 웃으며 오이카와는 손가락을 내민다. 뒤돌아 앉아있던 쿠니미의 등에 손가락 끝이 와 닿는다. 아, 정말……. 손가락이 천천히 살갗 위를 걸어 어깨에 올라왔을 때 쿠니미는 마른침을 모아 삼킨다. 건방진 질문에 대한 복수라면 아주 효과적인 방법을 골랐다.

“맛층하고는 전에 종종 했어. 이와쨩이랑은 안 해봤네.”
“……네?”
“뭘 그렇게 놀라, 물어봐 놓고.”
“아뇨, 근데 왜 과거형이에요?”
“맛층한테 애인이 생기는 바람에. 아무리 그래도 애인 있는 남자랑 살을 맞댈 수는 없잖아.”
“마츠카와 씨의 애인, 누군지 아세요?”
“조직 밖의 여자야. 평범한.”
“허어.”
“의외야?”
“네. 저희 앞에서는 한 번도 애인 얘기를 안 하셔서.”
“해서 좋을 게 뭐 있겠어. 결혼한 것도 아니고.”

오이카와는 협탁 옆에 놓여있던 재떨이 위에 담배를 지져 끄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재를 떨거나 끄는 것까지는 오이카와가 제 손으로, 보기 드물게 하고 있다. 쿠니미는 얼추 옷을 챙겨 입은 채 침대 위에 앉는다. 오이카와는 아직도 이불 한 장에 체온을 맡기고 있었다. 여운이 어느 정도 가셨는지, 지나치게 혈색이 올라와 있던 얼굴도 평소의 얼굴로 되돌아와 있다. 어쩌면 담배 덕도 있을 것이다. 엎드려있는 오이카와의 등을 바라보며, 쿠니미는 별생각 없이 다음 질문을 꺼냈다.

“그럼 저도 애인이 생기면 그만두시겠네요?”
“애인 생겼어?!”
“아뇨, 그건 아니고.”

몸을 벌떡 일으키며 놀라 반문하는 그 표정에 어쩐지 아쉬움보다는 즐거움과 기대가 더 큰 것 같아, 쿠니미는 내심 복잡해진다. 단칼에 부정하고 나니 조금 더 애태워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여기서 밀고 당겨본다고 애가 탈 사람도 아니지만. 오이카와는 김샜다는 표정으로 다시 매트리스 위에 털썩 몸을 맡기더니, 베개 위에 턱을 괴고 이쪽을 바라본다.

“쿠니미쨩도 쿠니미쨩이지만, 나한테 애인이 생겨도 그만둘 거야.”
“……제가 계속하고 싶다고 해도요?”
“쿠니미쨩, 그렇게 질척한 사람이었어? 난 네,”

말을 하다 만 오이카와가 쿠니미의 팔뚝을 잡아끌었다. 무게중심을 잃고 오이카와 옆으로 상체를 눕혀버린 쿠니미의 코끝에 담배냄새가 확 스쳤다. 조금 전까지 담배를 물고 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냄새지만, 담배냄새는 오이카와가 사용하는 향수 냄새, 원래의 체취와 섞여 위험한 향기를 만들어낸다. 섹스 후에는 종종 맡을 수 있는 냄새다. 대체로 모든 감각기관이 예민한 쿠니미에게 지금 그 특유의 냄새는 무언가의 경고처럼 느껴졌다. 옅은 갈색의 동공이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쿠니미는 가만히 그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이 만사에 무심한 눈빛이 마음에 들었던 건데.”

활짝 웃는 그 얼굴에 쿠니미의 미간이 조금 더 찌푸려졌다. 침대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의미로 위험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방금은 정말 위태로웠다. 오이카와는 그 미소 그대로 쿠니미의 이마에 쪽 소리 나는 입맞춤을 돌려주고는 다시 베개를 끌어안고 누워버렸다. 언제 일어날 작정인 걸까, 이 사람은. 일과가 대충 마무리된 후라 망정이지. 조직 내에 비서 같은 직책은 따로 없지만, 오이카와의 옆에는 항상 쿠니미가 있었다. 일종의 비서 겸 참모의 역할이었다. 이것은 조직원 모두가 암암리에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오이카와가 없으면 쿠니미를 찾으면 된다. 그런데 비상시에 둘 다 없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협탁 위에 놓아둔 핸드폰 두 개는 아직 아무런 소식을 전하고 있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별일 없다는 뜻이다.  

“쿠니미쨩,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명령하셔도 돼요.”
“푸하.”

오이카와의 화법을 잘 알면서도, 쿠니미는 굳이 정정한다. 어쩌면 아까 ‘네 무심한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는 그 말에 복수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왜 그 말에 심사가 꼬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안마 좀 해 줘.”
“안마기 가져올게요.”
“아니, 그거 말고. 그거면 누구한테 부탁해도 되는 일이잖아. 손으로 해 줘. 아, 물도 한 병만.”

어쩐지 목소리가 갈라지고 있다 했더니, 협탁 위에 내려놓은 생수병이 비어있었다. 쿠니미는 한 모금도 마신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오이카와가 전부 마신 듯했다. 쿠니미는 잠자코 몸을 일으킨다. 출렁, 하고 매트리스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방 한구석의 냉장고 문을 열어 오백 밀리리터 짜리 생수병 하나를 꺼내온다. 오이카와는 생수병을 받아들고 단숨에 반 정도를 마시고는 병을 쿠니미에게 건넸다. 딱히 목이 마른 건 아니었지만, 쿠니미는 남은 양의 반 정도를 마시고 생수병의 뚜껑을 닫아 협탁 위에 올려두었다. 침대 옆에 걸터앉아 오이카와의 어깨 위에 두 손을 올린다. 안마해달라고 한 건 꾀병이 아니었던 듯, 어깨가 꽤 뭉쳐있었다. 심하게 뭉친 곳 위를 만질 때마다 오이카와가 기분 좋은 숨소리를 냈다.

“담배 한 개비 더 드려요?”
“으음, 아니. 오늘은 한 갑 다 피웠어.”
“그 한 갑 규칙 잘 지키시네요.”
“응……. 이와쨩하고 한 약속, 이니까…….”
“자꾸 콧소리 섞어서 말씀하지 마세요. 엄청나게 티 나니까.”

등을 찰싹, 하고 아프지 않게 치니 보기 좋게 잡힌 근육이 움찔 경련한다. 으, 아파! 하는 목소리야말로 꾀병이지. 쿠니미는 묵묵히 손을 다시 움직인다. 다시 근육이 이완하는 게 보였다. 그래서 목덜미 부근의 작은 변화도 제가 근육의 움직임을 잘못 본 줄 알았다. 목덜미 뒤에서 날개뼈로 이어지는 부위에 얼룩이 지고 있었다. 그 부분을 가볍게 쓸어내려던 쿠니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쿠니미의 손가락 아래에서 얼룩은 더욱 진해진다. 제 손가락 밑에서 누군가의 심장이 뛰고 있는 것과도 같은 두근거림. 쿠니미는 오이카와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침을 삼켰다. 점차 선명해지는 얼룩은 흰 피부 위에 떠오르듯, 누군가가 서서히 도장을 찍는 것처럼 몇 개의 복잡한 선을 그려낸다.

影山飛雄.

그래, 그렇다는 거지. 이름을 덮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쿠니미는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있었다. 아, 쿠니미쨩! 아파! 오이카와가 새된 목소리로 외쳤지만, 힘은 완벽히 빠지지 않는다. 천천히 들어낸 손가락과 손톱은 이름 위에 붉은 자국을 만들어냈다. 꼭 그것만큼 깊은 자국이 쿠니미 마음 위에도 남았다. 결국, 못 견디겠다는 듯 오이카와가 상체를 반쯤 들어 쿠니미의 손을 피했다. 허공에 어정쩡하게 들린 자신의 손을 보고 쿠니미는 속으로만 쓰게 웃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나 뭐 잘못했어?”

얼마나 세게 누르고 있었는지 오이카와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허벅지에 칼이 꽂혀도 안 우는 사람이 이까짓 손톱자국에 눈물이 맺혀? 쿠니미는 문득 실소할 뻔했다. 내가 방금 당신 인생의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았는데, 그게 뭔지 궁금하지 않아요? 아마 쿠니미가 조금 덜 이성적인 사람이었다면 이 말은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입 밖으로 튀어나왔으리라. 그러나 애석하게도 쿠니미는 충분히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오이카와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대신 고개를 저으며, 그냥 잠깐 졸았어요, 라고 대답한다. 그의 눈썹 각도가 조금 가팔라진다. 그 말을 백 퍼센트 신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얼굴.  

“피곤하면 들어가서 자.”
“……딱히, 졸리진 않는데요. 그것보다 오이카와 씨.”
“응.”
“한 번 더 할까요.”

딱히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슬쩍 올라가는 오이카와의 입꼬리를 머금으며 쿠니미는 침대 헤드를 짚고 고개를 숙인다. 조금 거칠어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 역시 말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보스는 그편을 더 좋아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머릿속 한구석은 점점 차가워진다. 그것은 확실히 누구와 침대 위에서 몸을 겹칠 때 가지기에 어울리는 감정은 아니었다. 밀려드는 복잡한 생각들은 한편으로 밀어두고, 쿠니미는 일단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


- 오이카와냐. 하도 연락 없어서 그동안 뒈진 줄 알았잖아.
“여전히 말 섭섭하게 하는 덴 뭐 있어, 히랏치.”
- 그럼, 강아지 한 마리 불쑥 맡겨놓고 오 년 동안 연락 안 하는 게 정상이냐?
“아하하, 강아지 말이지. 잘 컸더라. 얼마 전에 여기 놀러 왔던데.”
- 만났나 보네. 답례품은 잘 받았지?

오이카와는 책상 위에 놓인 양주병을 손가락으로 슬쩍 밀며 웃었다. 술을 그리 즐기지 않지만, 장식장에 진열해두는 취미가 있는 오이카와에게 제격의 선물이다. 오이카와의 등 뒤 장식장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은 고급술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선물 받은 것도 있고, 직접 산 것도 있고, 어딘가를 접수한 후 전리품처럼 가져온 것들도 있다. 그 수많은 병 중에 이 녀석은 없었다. 레미 마르뗑 루이13세, 안 그래도 눈독 들이고 있던 녀석이었는데 잘도 골랐다. 마음 같아서는 히라츠카의 안목을 칭찬하는 말을 더 많이 늘어놓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가벼워 보이면 안 되지. 이쯤에서 참기로 했다.

“물론, 잘 받았어. 심부름도 잘하더라.”
- 내가 잘 교육했지.
“그 답례에 대한 감사 인사로 전화한 거야.”
- 엎드려 절 받기로군. 30만 엔짜리 통화라니, 이번엔 내 쪽에서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전화해 줘도 난리네, 정말.”

짐짓 화난 목소리를 내보이자, 이번엔 핸드폰 너머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나저나 이런 고가의 선물이라니, 노유키 재정 쪽은 괜찮은 거야?”
- 이번에 네가 처리해 준 일로 들어온 게 자그마치 6천만 엔이다.
“와, 잭팟 터뜨렸네!”
- 그러니 30만 엔짜리 선물을 비싸다고 할 수는 없지.
“듣고 보니 너무 싼 것 같기도 해.”
- 그럼 돌려보내.
“그럴 순 없지, 이미 오이카와 씨의 장식장 안으로 들어간 건 다신 못 나온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장식장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이라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는다. 모든 술은 관상용이다. 담배에는 취미가 있지만, 술에는 딱히 관심이 없는 게 오이카와의 특성-이라기에는 조금 거창하더라도-이다. 마츠카와가 몇 번 마시자며 은근히 쏘삭였지만, 자기가 죽을 때까지 이 장식장을 열 생각은 없다고 확실히 말해두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이카와는 웃고 있었다. 히라츠카의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 카게야마는 예외인가?
“…….”

또 무슨 바람이 든 거야? 나한테 무슨 바람을 넣으려고 전화한 거야? 핸드폰을 쥔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간다. 웃고 있던 입꼬리가 그대로 굳었다. 되도록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려 했건만 어조는 저절로 뾰족해진다.

“히랏치, 토비오에게서 무슨 말을 들은 거야?”
- 아무 말도 못 들었으니 너한테 묻는 거잖아.
“그럼 토비오에게 물어보면 되겠네.”
- 걔가 뭘 알겠냐, 변덕스러운 건 네 잘못인데.
“와, 자기 부하라고 역성드는 것 좀 봐! 서러워서 친구 못 살겠다!”
- 오이카와.
“…….”
- 솔직하게 말해봐라. 내가 오 년 동안 겪어온 카게야마는 보스의 등에 칼을 꽂을 놈은 아니야. 내가 잔정이 많다는 소리는 듣지만, 사람 보는 눈은 틀리지 않는다고 자신해.
“……상성 문제라고 얘기했잖아.”

중간에 쿠니미가 노크를 하고 들어왔지만, 오이카와는 손을 내저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밖에서 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이 통화 내용은 들려줄 수 없었다. 길고 긴 통화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그럼 그냥 그때 죽이거나, 아예 이쪽 세계에서 발을 빼게 하면 됐잖아. 손목 하나를 친다든지, 발목을 부러뜨린다든지. 너한테 걔 하나 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을 텐데. 아님 작정하고 네 개로 키우든지.
“히랏치였어도 그렇게 못 했을걸.”
- 뭐?
“온 거리가 구정물로 가득하던 이월 중순의 어느 한 골목에서, 그 구정물로 잔뜩 털을 더럽힌 채 쓰러져있던 강아지를 데려왔어. 이 년을 키워왔지. 그런데 그 강아지에게 어느 날 손을 물린다면, 히랏치는 어떻게 했을 것 같아?”
- 손을 물렸다고?

오이카와는 한숨을 쉰다. 조금 흥분했는지 어조가 빨라져 있었다. 쿠니미가 없으니 무엇이든 직접 할 수밖에 없다. 핸드폰을 쥔 채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에 설치된 정수기로 다가간다. 일어나니 문득 핸드폰을 든 팔이 아파져 왔다. 핸드폰을 왼손으로 바꿔 쥐고, 오른손에는 종이컵을 든 채 차가운 물을 받았다. 손바닥에 가득 들어차는 찬 느낌이 싫지 않다.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받고, 다시 자리에 앉는 데 이 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지만 히라츠카는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오이카와의 다음 말을 얌전히 기다리는 것처럼.

“……그때 얘기야. 보통은 이와쨩이 데리고 무술을 가르쳤거든. 쿠니미쨩은 합기도, 아, 쿠니미쨩은 그때 데려온 다른 강아지 이름.”
- 안다. 얼핏 들은 적이 있지. 꽤 영리하고 유능하다던데.
“사실이야. 아무튼, 쿠니미쨩은 합기도, 토비오는 가라테를 한창 배우고 있었어. 물론 우리가 싸울 때 그런 걸 다 지키면서 싸우지는 않지만. 둘 다 수금원으로 묵히기에는 아까운 포텐셜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이와쨩은 일찌감치 알아차렸던 거지.”
- …….
“그런데 어느 날 이와쨩이 당시 보스의 급한 지시로 자리를 비우게 됐어. 연습을 빼먹어도 됐겠지만, 어차피 비 오는 날이고 할 일도 없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내가 봐주겠다고 했지. 맨손 무술은, 이와쨩 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꽤 자신이 있거든.”
- 네 특기잖나. 특히 하체를 사용하는 건 이와이즈미보다 네 쪽이 뛰어났던 것 같은데.
“제대로 기억하고 있네. 다른 조직원들도 몇 명 정도 모여 있었을 거야. 쿠니미쨩은 얼추 봐줬고 토비오 차례가 돌아왔어.”
- 카게야마 녀석, 처음 볼 때부터 몸놀림이 제법 날래다고 생각했더니, 이와이즈미 작품이었구만.
“나도 일조했거든! ……흥, 아무튼. 정식 대련은 아니지만 일단은 대련이라는 걸 했어. 솔직히 말하자. 그리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토비오를 대한 건 아니야. 그래 봐야 열아홉,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애송이라고만 생각했지. 이 년 동안 현장 같은 데 같이 나간 적은 없었거든.”
- 넌 꽤 일찍부터 안쪽으로 돌았으니까.

날 너무 잘 아는 거 아냐, 하는 듯한 침묵이 잠깐 흘렀다. 오이카와는 쓴웃음을 지으며 앞머리를 쓸어 올린다. 역시 다시 떠올려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장면이다.

“그런데 정말 재밌는 일이 일어난 거야. 세상에, 그 스물도 안 된 애송이가 날 봐주다니.”
- 뭐?
“정확하게 말하자면, 멈칫했어. 마지막 일격으로 끝낼 수 있는 0.1초의 상황에서.”
- …….
“내가 그걸 눈치채고 역으로 달려들 때, 세상에, 그때 토비오쨩의 눈빛을 네가 봤어야 해. 정말이지, 어디서 그런 호랑이 새끼를 주워왔나 싶더라. 이 한 번의 실수로 나는 죽는다, 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한 눈빛이었지. 본인은 잠깐 멈췄다는 자각도 없었을지 몰라.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없었을 거야. 멈춘 게 아니라 동작이 끊겼다는 인식 정도는 했을지도 모르지만.”
- …….
“믿어져? 결국 내가 이기긴 했는데, 내가 거기서 실수를 해 버렸어.”
- 뭔데?
“아직도 조직원들 사이에선 꽤 흥미롭게 돌고 있는 이야기인 것 같긴 한데, 대련이 끝나고 토비오의 뺨을 한 대 올려붙이고 만 거야. 모두가 보고 있는 앞에서, 그것도 풀 파워로.”
- 그게 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히라츠카의 이야기. 오이카와의 쓴웃음이 조금 더 커졌다. 그래, 조직 외부의 사람은 잘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지. 그러나 오 년 전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고, 바닥에 쓰러진 카게야마조차 잠시 일어나지 못했으며, 카게야마에게 순서를 양보하고 방 한쪽에서 땀을 닦아내던 쿠니미는 그 손을 멈추고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아마 그 당시 그 공간에서 움직이는 건 오이카와 혼자였던 것 같다. 크게 틀린 말도 아닐 테고.

“……그게…….”

오이카와는 오른손 검지로 제 뺨을 긁적인다. 제 입으로 이야기하기에 그리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히라츠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솔직히 자신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더 할 일도 없을 것 같긴 하다. 그래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자신의 강아지를 맡아 길러준, 적이자 동료인 히라츠카에게. 최소한의 경의를 담아.

“난 그때까지 조직원들을 맨손으로 때린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 그때 이후로도 쭉.”


*


“오, 굴러들어온 돌이네. 원래 자리로 돌아간 줄 알았더니.”
“…….”
“오랜만에 본가에 다녀왔다며? 어때, 집밥 먹으니까 좋냐?”
“…….”
“옛 주인 보고 싶어서 어떻게 견뎠대, 카게야마 군.”
“…….”
“아이고 시발, 귓구멍에 콘크리트를 쳐 부으셨나. 사람이 물으면 대꾸를 좀 하세요.”
“온종일 재잘재잘, 시끄럽지도 않냐. 좀 닥치는 게 어때?”

카게야마는 결국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여지없이 이놈이다. 자신을 당당하게 앞에서 ‘굴러들어온 돌’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은, 야마다 에이키치 하나뿐이었다. 그러고는 곧 후회했다. 쓸데없는 소리에는 애초에 대꾸를 하는 게 아닌데. 카게야마보다 키는 살짝 작지만 두 배 정도 되는 덩치의 소유자 야마다는, 육탄전 외에 대체 무슨 능력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카게야마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히라츠카의 직속 부하로 일하고 있었다. 지금은 조직의 2인자 정도 되는 위치일까. 그런 그가 자신을 ‘굴러들어온 돌’이라고 표현하는 것쯤은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옛 주인 운운하며 지금 자신과 조직 간의 신뢰를 무너뜨리려는 것은 제아무리 카게야마라도 신경에 거슬릴 수밖에 없다. 하필 요유키(夜行) 쪽에 다녀온 날 정통으로 마주칠 줄은. 비켜 가려 했지만 복도의 사 분의 삼을 가로막고 서 있는 바람에 그럴 수도 없었다.

“오, 무서워. 지릴 뻔했네. 그런 눈빛은 같은 편한테 좀 너무하지 않아?”
“네가…….”

네가 날 같은 편이라고 생각한 적은 있고? 또 울컥 치밀어 오르려던 말을 카게야마는 조용히 더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지금 여기서 도발을 건다고 걸리는 쪽이 더 멍청이가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 년 전의 카게야마는 걸면 걸리는, 그야말로 단순의 결정체 상태였다. 오이카와나 이와이즈미는 인내심을 길러주기에는 그리 적당한 스승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카게야마는 역시 히라츠카에게 감사했다.  

“오랜만에 가니까, 옛 주인이 예뻐해 주던? 꼬리 좀 쳐 주고 왔어?”
“…….”

카게야마는 이를 악물었다. 저절로 그때 오이카와와 쿠니미의 얼굴이 떠오른다. 마치,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들어왔느냐고 오이카와를 질책하는 듯한 쿠니미의 시선과, 말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굴면서도 자신을 보고 얼굴이 굳었던 오이카와까지. 차라리 꼬리를 칠 시간이라도 줬으면 이렇게 억울하지도 않았으리라. 화가 나는 원인이 눈앞에서 뻔한 도발을 시전하는 이 녀석 때문인지, 그때 마주했던 두 사람 때문인지 알지도 못한 채 카게야마는 입술을 짓씹었다. 그 모양새를 가만히 지켜보던 야마다는 비웃음을 섞어 마지막 한 마디를 떨어뜨렸다.

“하긴, 그럴 리 없겠지. 옛 주인한테 쫓겨난 신세니까.”
“……일깨워줘서 고맙다. 늦었으니 좀 자자. 피곤하거든.”

방금까지 들끓었던 카게야마의 마음이 순식간에 차게 식는다. 야마다는 약간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분명히 이 대목에서야말로 화를 내고 덤벼들어야 하는데, 카게야마는 오히려 이 일방적인 대화 중에서 가장 침착했다. 꼿꼿이 치켜든 고개와 새파랗게 빛나는 눈동자에 야마다는 그만 뒤로 한 발짝 물러나고 만다. 그러고 나서야 곧 모양 빠지는 짓을 했다며 불끈 화가 났지만 이제 와서 다시 덤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대화의 주도권은 아무에게도 없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두어 번 저었다. 명백하게 대화의 끝을 알리는 몸짓이다.

“비켜.”
“…….”

야마다는 저도 모르게 길을 비켰다. 카게야마는 시선 한 번 마주치지 않은 채 복도를 걸어나간다. 아, 젠장 할. 그 뒷모습이 코너를 돌고 나서야 야마다는 욕을 씹어뱉었다. 이미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화풀이를 해야 했다.

카게야마가 원래 요유키 소속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조직의 보스 오이카와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고, 그다음에 카게야마가 이쪽으로 넘어온 것이 사실이다. 히라츠카와 오이카와는 원래 친했다. 따라서 누구도 히라츠카 앞에서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모종의 이유로 카게야마가 이쪽으로 ‘넘겨졌다’고 판단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시기상으로는 그것이 가장 타당한 추론이었다. 요유키 쪽에 닿은 줄에도 물어보았으나, 대답은 ‘모르쇠’였다. 왜 카게야마가 갑자기 노유키 쪽으로 오게 되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히라츠카에게 물어보자니 쪽팔렸다.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하라고 대답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일단은 무시하고, 제 할 일만 제대로 하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그런 히라츠카가 묘하게 카게야마를 중용하는 듯한 분위기는, 약 이 년 전부터였다. 오이카와가 무언가 기름을 쳐 놓았음이 분명했다. 어쩌면 오이카와가 심어놓은 스파이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 의심은 히라츠카가 카게야마를 불러 둘이서만 무언가를 의논할 때 가장 심해졌고, 현장에서 처절하게 굴러대며 온갖 부상을 달고 온 카게야마를 보며 히라츠카가 고개를 끄덕일 때 가장 깊어졌다. 야마다가 보기에도 카게야마는 확실히 인재였다. 머리도 좋은 것 같고, 피지컬은 더 말할 것이 없으며, 현장 실력도 출중했다. 저도 모르게 카게야마의 장점을 발견할 때마다 야마다는 고개를 저었다. 저 새끼는 스파이잖아. 제 아래의 조직원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노유키를 다시 집어삼키기 위해 심어놓은 초석이라고. 십여 년 전 요유키(夜行)에서 떨어져 나온 노유키(野行)를 이만큼 키우기 위해 저희들이 얼마나 큰 희생을 했는데, 이대로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보스가 하지 않는다면 저희끼리라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씨발.’

야마다는 카게야마가 사라진 쪽을 힘껏 노려보았다. 이미 인기척 따위는 없다. 복도는 쥐죽은 듯 고요하고, 수명이 다 되어 깜박거리는 싸구려 형광등만이 적막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카게오이 + 쿠니오이 + 기타 오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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