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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오이] 야행(夜行) 4

네임버스/느와르 AU. 쿠니오이 요소 있음





“오랜만이야, 이와쨩.”
- 오이카와냐.
“감기 걸렸어?”
- 아니,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벌써 해가 중천인데?”
- 난 괜찮아. 넌 안 되겠지만.
“으아, 부러워.”
- 그럼 너도 때려치우든가.

일어나자마자 전화를 받았는지 목소리에 잠기운이 잔뜩 묻어있었다. 진심으로 부러움을 담은 목소리에 이와이즈미의 대답이 천연덕스럽다. 창밖은 온통 잿빛이고, 창문에 기세 좋게 빗방울이 사선을 그리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오늘 아침 준비를 하면서 틀어놓았던 기상예보를 떠올린다. 사무실이 있는 지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져 있었다. 아마 이 비는 내일 아침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기상캐스터의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오이카와는 준비를 끝마쳤다. 비가 오는 날답게 머리카락은 잘 말을 듣지 않았다. 평소보다 세팅이 느슨해져 부스스하게 흘러내린 옆머리를 자유로운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오이카와는 핸드폰을 든 손에 조금 힘을 넣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순 없잖아, 이와쨩도 잘 아는 주제에. 이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무슨 말을 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오이카와가 부자연스러운 침묵을 지키자 이와이즈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화제를 돌렸다.

- 그래서, 무슨 일이야?
“안부 전화했어.”
- 호, 죽을 때가 됐나? 생전 안 하던 짓을 하시는군, 옛 보스.
“그렇게 말하면 오이카와 씨 엄청나게 서운한데.”
- 농담이다. 네가 내 안위를 지켜주고 있는데 안부 전화 같은 게 필요하냐?
“아하하.”

하릴없이 웃으며 오이카와는 데스크 위에 검지로 원을 그린다. 지문으로 만들어진, 뭉툭하고 흐릿한 원이 생겼다가 다른 원으로 덮이고, 또 다른 원으로 덮이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삼 년 전 이와이즈미가 조직을 떠난 후로는, 극력 사적인 연락을 자제하고 있었다. 오늘의 통화는 그야말로 충동적인 것이다. 비 때문에 통화 품질이 그리 좋지 않은 듯하다. 이와이즈미의 목소리는 마치 동굴 속에서 들리듯 멀게만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올해 초 연하장을 보낸 이후로 처음 하는 연락일까. 아무리 이와이즈미를 배려한 것이라 해도 거의 일 년의 연락 텀이라니, 싫은 소리를 듣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쓰게 웃었다.

- 진짜 용건이 있을 것 같은데.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 하아?
“얼굴 보면 더 좋겠지만, 힘들겠지.”
- 오늘 갈까?
“아니, 아니야. 여기까지 올 필요 없어. 일해야 할 것 아니야.”
- 그렇긴 하지. 사실 이 장사는 비 오는 날이 더 잘 되기도 해.
“이와쨩.”
- …….

이름을 불러놓고 오이카와는 멈칫한다. 아무리 친우라고는 해도 삼 년 동안 조직을 떠나있던 이와이즈미에게, 자신은 어디까지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가. 이와이즈미는 대답 없이 작게 숨을 몰아쉰다. 그것이 제 말을 재촉하는 것이라는 걸 오이카와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아마 자신의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으리라. 오이카와의 컨디션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가히 천재라 해도 믿을 이와이즈미였다. 교류가 소원해져도 그간의 경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와쨩은 내 옆에 있으면서 내 결정에 불만을 느낀 적은 없었어?”
- 갑자기 왜?
“그냥…….”
- 누가 네 결정이 마음에 안 든대?
“누가 오이카와 씨의 결정에 토를 달겠어.”
- 그렇지 않고서야 네가 나한테 그런 말을 물어볼 리가 있겠냐.
“하하.”

오이카와는 웃음 두어 조각을 간신히 뱉어냈다. 그래도 목 안에 뭔가가 걸린 것 같은 부자연스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데스크 위에 메모 한 장이 올려져 있다. 아마 오늘 하루에 대해 쿠니미가 남긴 것이리라. 왼손으로 종이 한 장을 집어 대강 훑어보고, 오이카와는 그것을 도로 데스크 위에 올려두었다.

- 정말 뭔데? 걱정되니까 빨리 말해.
“토비오 말이야. 카게야마 토비오.”
- ……응.
“내가 막무가내로 노유키에 보내버렸을 때.”
- 응.
“이와쨩은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찬성하지도 않았잖아.”
- 그랬지.
“내가 그 애를 노유키로 보낸 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 …….

이와이즈미가 작게 숨을 몰아쉬는 기척이 느껴졌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니, 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이카와는 왼손으로 담뱃갑을 꺼내고, 한 개비를 문 후 불을 붙였다. 핸드폰을 쥔 손을 바꾸고 오른손으로 하는 게 더 효율적인 과정이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가 곧 사라진다.

- 카게야마를 만났구나.
“응. 심부름을 왔더라.”
- 히라츠카가 보냈단 말이야?
“응. 너무하지? 결국, 왜 보내야 했는지 히라츠카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말았어.”
- …….
“뭔가 약장사에 놀아난 것 같은 기분이긴 한데, 그때 본 토비오쨩 표정이 잊히지가 않네.”
- 왜.
“……글쎄 잘 모르겠어. 동정이나 연민일까.”

담배연기를 후우, 내뱉고는, 순간 전화 건너편의 이와이즈미에게는 한숨처럼 들리지 않았을까 걱정한다. 그렇다고 한숨이 아니라 담배 피우는 소리였다고 해명하기에도 우스꽝스러워서, 오이카와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동정이나 연민이라니. 살면서 절대 입에 올릴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단어 두 개가 한꺼번에 나와 그만 황망해져 버렸다. 담배 연기가 입속에 갇힌 듯 입맛이 쓰다. 오이카와는 혀로 입천장을 두어 번 쓸었다. 아마 이 쓴맛은 저 단어 두 개를 만들어낸 주인에 대한 감각의 항의일지도 모른다.

“동정이나 연민이라니, 오이카와 씨답지 않지?”

통화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는 건 노땡큐다. 오이카와는 허겁지겁 말을 주워담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와이즈미가 변함없이 침착한 어조로 대답한다.

- 그날 쿠니미와 카게야마를 거둔 것부터가 동정 혹은 연민이겠지.
“그럴까.”
- 너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때 난 그랬어. 우릴 보는 것 같아서.
“하여간 이와쨩, 말은 퉁명스러워도 마음은 따뜻한 남자라니까.”
- 쓸데없긴. 아무튼, 그러니까. 네가 카게야마에게 동정이나 연민을 가지면 안 될 이유가 있나.
“그건 아니지만.”
- 그럼 됐지, 뭐. 일말의 미안함이라고 생각하든가. 이 년 동안 길들여놓고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 강아지에 대한 주인의 미안함.
“쿠니미쨩은 몰라도, 토비오는 나한테 길들지 않을걸. 아마 평생이 가도.”
- 평생이라고 할 만큼 그 녀석을 볼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

오이카와는 말문이 막혔다. 무심코 내뱉은 말에 꼬리가 잡혀버렸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와이즈미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면 오이카와는 당황하고 만다. 무심한 한마디에 정곡이 찔려버린 기분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한 조각의 설명을 붙일 때마다 두 덩어리의 자괴감이 몰려든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얼굴을 떠올린다. 보낼 때보다 조금 더 치켜 올라간 선명한 눈꼬리와, 다듬기라도 한 것처럼 날렵한 눈썹. 고집스럽게 다물린 입술이 자신을 보고 어떤 모양을 만들었는지. 자신은 이 얼굴을 ‘평생’ 보려고 생각했나? 소회의실에서 의도치 않게 카게야마를 만났을 때 자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나? 애써 떠올리려 해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한 가지 기억나는 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보스’라는 단어가 유독 선명했다는 것이다. 이와이즈미는 침묵을 지킨다.

아, 알고 있어. 오이카와는 무심코 앗, 소리를 내려다가 입술을 깨문다. 어느새 필터까지 타들어 간 담뱃불이 손가락에 닿아 뜨거웠다. 이와이즈미와 통화 중이라 차마 아프다는 티는 못 내고, 오이카와는 담배를 황급히 재떨이에 던진 후 손을 털어냈다. 손가락 위에 불그스름한 자국이 남았다. 그것을 뚫어지게 바라봄과 동시에 오이카와는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자기 자신의 감정을 다시 꺼내어 찬찬히 뜯어본다.

사실 그러지 않아도 이 감정의 정체는 알고 있다. 이것은 유통기한이 지난, 진작 지났어야 하는, 자신의 것이 아닌 줄만 알았던 소유욕이다. 옆에 두면 그의 손에 죽을 거라는 밑도끝도없는 예감을 끌어안으면서도, 그 눈빛을 다시 마주할 때 폐 아랫부분에 진득하게 눌어붙은 소유욕의 존재를 깨달았다. 사람은 이렇게나 이중적인 존재라 위험하다는 것을 알수록 옆에 두려 한다. 자신이 멀리 쫓아 보낸 주제에 그의 존재를 아쉬워하고 있다니 정말 웃기지도 않은 일이다. 정말, 어쩌자는 건지. 일부러 검지와 중지를 겹쳐 세게 비벼본다. 두 손가락 사이에 아릿한 통증이 번졌다. 이와이즈미가 먼저 침묵을 깼다.

- 오이카와, 나 출근 준비.
“아, 응. 시간 많이 뺏었네. 미안해.”
- 별말을. 또 한가하면 연락해라.

이와이즈미가 희미하게 웃는 기척이 났다. 오이카와는 형식상 안부인사 몇 마디를 달아두고, 누군가에게 쫓기듯 종료 버튼을 누른다. 아직도 비가 오고 있는지 확인하려 고개를 드는데 문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헉!”
“뭘 그렇게 놀라세요.”
“쿠니미쨩, 노크 안 해?!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노크 두 번이나 했는데 대답 안 해 주신 건 오이카와 씨잖아요.”
“……개인적인 통화하고 있었어. 언제부터 들어와 있었어?”
“일 초 전이요.”
“아, 그래. 무슨 일인데?”
“메모 올려둔 거 보셨어요? 오늘 한 시에 회의인데요.”

쿠니미는 고갯짓으로 데스크를 가리킨다. 아, 이거? 하고 종이쪽지를 들어 보이는 오이카와의 옆으로 쿠니미가 와서 섰다. 아까 분명 한 번 훑어본 것인데도 무슨 내용인지 기억나지 않아, 오이카와는 다시 쪽지 위로 시선을 둔다. 한 시에 노유키 건으로 회의 있음, 간단명료한 한 문장을 아까는 통화한다고 전혀 머릿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시계는 열두 시 오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노유키 건으로 회의를 한다고?”
“네……. 근데 오이카와 씨. 이건 뭐예요?”
“응?”

뭘 말하는 건지 반문할 틈도 없이 오이카와의 왼쪽 손목은 쿠니미에게 들려있었다. 아직 앳된 미간에 주름을 잔뜩 만들고 오이카와의 손가락 사이를 노려보는 눈빛.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뺀다. 이 정도의 접촉은 접촉도 아닌 사이에 괜히 가슴이 덜컹했다. 어쩌면 그 표정 탓인지도 모른다. 대답해줄 때까지 안 놔주겠다는 듯, 쿠니미는 한 조각의 동요도 없이 그 시선을 유지한다. 오이카와는 약간 힘을 써서 결국 그 손을 떨쳐내고야 말았다.

“담뱃불에 뎄어. 통화하다가.”
“얼마나 중요한 통화였기에 담배가 다 타들어 간지도 모르고요.”
“그러게 말이야.”
“있어보세요.”

쿠니미는 몸을 숙여 오이카와의 데스크에 딸린 서랍을 이리저리 뒤진다. 잠깐, 이거 내 책상인데! 하는 반론은 꺼낼 틈도 없었다. 다시 일어선 쿠니미의 손에는 구급상자가 들려있다. 손 줘 보세요, 하는 말에 오이카와는 머뭇머뭇 다시 손을 내밀었다. 낚아채듯 손가락을 들고, 좀  벌려봐요, 라고 말한다. 쿠니미쨩 그거 침대 위에서만 하는 말 아니야? 하고 농담을 던져봐도 쿠니미의 구겨진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 두 사람만 있을 때 던질 수 있는 말인데도 끝내 대답은 따라오지 않는다. 능숙한 손길로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감는 손끝을 가만 바라보다, 오이카와는 문득 담배를 한 대 더 태우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오이카와를 아는지 모르는지, 쿠니미는 담담한 어조로 무서운 말을 꺼낸다.

“누가 보면 요유키의 보스가 어디 끌려가서 고문으로 담배빵이라도 당한 줄 알거든요.”
“담배빵이라니, 쿠니미쨩 단어 선택이…….”
“하긴, 이런 곳에 담배빵을 놓는 멍청한 녀석들도 없겠지만요.”
“그건 다행이네.”

꼼꼼하게 매인 밴드를 보며, 오이카와는 옅게 웃는다. 누구의 취미인지 분홍색 밴드 위에 요즘 유행하는 동물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이 밴드, 누가 사온 거더라? 글쎄, 잘 모르겠는데요. 쿠니미는 그 웃음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미간에 주름을 두어 개 더 만들었으나, 끝내 아무 말도 없이 구급상자를 정리하고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놓는다. 오이카와로 말하자면 그곳에 구급상자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나마 쿠니미가 들어와 줘서 다행인가. 회의 시간도 모르고 이 손가락 그대로 지각할 뻔했으니.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는 오이카와의 반 발짝 뒤를 쿠니미가 따랐다. 회의실까지 부지런하게 걸어가면 지각은 면할 시각이었다.



*


“안건이 뭐야?”
“웬일로 지각을 안 하셨네요, 보스.”
“쿠니미쨩이 데리러 와 줘서. 노유키?”

하나마키의 놀림 반 빈정거림 반 말투를 자연스럽게 받아넘기며 오이카와는 자리에 놓여있던 A4 용지를 손에 들었다. 마츠카와는 자못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종이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 이 용지를 작성했음이 분명한 쿠니미는 오이카와의 왼쪽에 착석한다. 오이카와는 내용을 대충 훑어보고, 종이에 인쇄된 흑백사진을 검지로 톡톡 두드리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질문을 던졌다.

“노유키의 ‘덩치’, 이름이 뭐랬지?”
“야마다 에이키치입니다.”

그 말에 대답해주는 상대는 안 봐도 뻔했다. 쿠니미는 생수를 가까이 끌어당기며 대답한다. 마츠카와와 오이카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담배를 빼 물었다. 하나마키가 회의실에선 좀 피우지 말라니까, 하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지만 두 사람은 모르는 척한다. 언제나 회의 때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결국, 하나마키는 직접 일어서서 창문을 열고 벽에 기대선다. 조직 내에서 흔치 않은 비흡연자가 심지어 간부라는 건 회의 때마다 너구리 소굴로 기어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회의가 끝나면 내 폐가 너덜너덜해진 기분이야, 라고 투덜거리면서도 하나마키가 회의를 빼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빼먹으면 오이카와가 용서할 리도 없지만.

“세력이 확장되어가고 있다는 건 이미 유명한 얘기였지.”

오이카와는 등받이에 조금 더 기댔다. 끼익, 하고 의자가 무기질적인 비명을 지른다.

“그 낌새가 더 심해진 모양이야. 히라츠카가 이걸 알면서 내버려두는 건가?”
“설마요. 내부에서도 뭔가 대응을 좀 하고 있지 않을까요?”
“이 ‘덩치’, 그쪽 사무실에서 본 적 있어. 그런데……. 꽤 충직한 개로 보였는데.”
“그거 오 년 전 일이잖아. 그 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 새에…….”

오이카와는 마츠카와의 말을 따라 하며 생각에 잠긴다. 그 조직의 현황 같은 것은 잘 모르지만, ‘그 사이’라고 표현할 만한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건 안다. 그 얼굴을 떠올리자마자 등에 소름이 끼쳤다. 설마.

“쿠니미쨩.”
“네.”
“혹시 지금 노유키 쪽에서 토비오의 입지를 알고 있어?”
“…….”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제 등 언저리가 뜨거운 건 방금 떠올린 무서운 상상 때문이라고 치부하며, 오이카와는 쿠니미의 대답을 기다린다. 쿠니미가 혀로 제 입술을 축였다.

“세력 면으로는 보잘것없습니다. 오 년 전에 ‘굴러들어온 돌’일 테니까요.”
“‘면으로는?’”

오이카와는 시선을 떼지 않는다. 쿠니미는 어깨를 으쓱했다.

“다만, 히라츠카의 절대적인 신망을 얻은 모양이에요.”
“…….”
“정보통에 의하면, 아마 우리 쪽에서 심은 스파이라는 의심을 사는 모양입니다.”
“허어.”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는 마츠카와의 것이다. 하나마키는 묵묵히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 채다. 오이카와는 쿠니미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천정을 노려보았다. 요유키의 내부 소식통은 카게야마가 아니라 따로 있었다. 생수병의 뚜껑을 따며 쿠니미가 마지막 한 문장을 더했다.

“아마 야마다가 세력을 확장하고 있고, 그 배후에 히라츠카에 대한 불만이 있다면, 카게야마라는 원인도 분명 있을 겁니다.”
“……세력 확장의 정도는?”
“미친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리한 확장입니다. 우리 쪽과는 겹치는 분야가 없어서 체감은 잘 안 되지만.”
“우리에서 마약 사업을 떼어낸 조직이니, 겹치는 분야는 분명 없겠지.”
“네. 이미 주변의 다른 조직과 갈등이 있는 듯합니다.”

쿠니미는 생수병을 들어 한 모금 꿀꺽 마셨다. 역시 두 사람분의 담배 연기를 그대로 쐬고 있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마츠카와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다. 곧이어 오이카와의 담배도 마지막 연기를 뿜어내고는 재떨이 위에서 짓이겨졌다. 이게 가장 최근의 정보지? 언제 거야? 오이카와의 질문에 쿠니미가 입을 열었다.

“노유키의 내부 사정을 전해주는 소식통 쪽에서 온 소식은 그저께가 마지막입니다. 다시 연락해보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부탁해. 우리 쪽에 피해가 없어야 하는데. 눈 돌아간 미친개는 때가 늦으면 아무도 통제할 수 없어.”
“네.”
“맛키.”
“엉?”

창가에 서 있던 하나마키는 자리로 돌아오다가 오이카와에게 이름이 불려 멈칫했다.

“맛키는 다른 조직 쪽으로 좀 알아봐.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라져. 오늘 중으로 해결할게.”

하나마키의 착실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오이카와는 몸을 일으키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 옆얼굴을 눈에 담은 쿠니미는 문득 손끝이 차가워지는 감각에 사로잡힌다. 바로 얼마 전 노유키에서 선물을 들고 온 카게야마를 보던 것과 비슷한 표정이다. 오이카와는 쿠니미에게 시선 한 조각 주지 않은 채 먼저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평소 같았다면 바로 그 뒤를 따르며 보스의 심기를 살폈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마치 그 등이, 자신을 따라오지 말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쿠니미는 잠깐 출입구를 바라보고는, 묵묵히 책상 위에 놓여있던 종이와 생수병 등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슴 한쪽을 적시는 이 불안감은 예상외의 빠른 세력 확장 탓인지, 혹은 아까 얼핏 보고만 오이카와의 표정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를 악물면 잇몸에서 심장이 뛰는 것만 같은 착각에 온몸이 화끈거린다. 계속해서 차가운 겨울비를 맞은 탓에 이는 쉴 새 없이 딱딱 소리를 내며 맞부딪힌다. 어깨, 옆구리, 허벅지 할 것 없이 감각이 없었다. 차라리 이 추위는 그나마 통증을 잊기에 고마운 존재인지 모른다고 생각하다가도 칼자국 사이로 칼바람이 새어들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주저앉고 나면 정말 죽음뿐이다. 각목이나 야구 배트로 맞은 곳은 이미 보랏빛으로 멍이 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확실한 죽음은 등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그나마 모두 치명상은 피해 갔지만 이대로 출혈이 계속되면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정확한 의료 지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나, 이 정도 부상을 일 년에 한 번씩은 입어온 카게야마는 확신하고 있었다. 옆구리를 강하게 틀어쥐고 있던 손을 떼자마자 옷에 따뜻한 것이 퍼졌다. 가로등 불에 비쳐 확실한 붉은색은 아니지만 어쨌든 손에 잔뜩 묻은 그것은 피였다. 카게야마는 담벼락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골랐다. 선뜩한 벽돌이 차갑게 젖은 와이셔츠 너머로 느껴진다.

“……윽.”

저도 모르게 허리가 꺾였다. 이미 비에 푹 젖은 몸은 방향감각을 상실한 지 오래다. 그저, 본능에 의해 걷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급한 발걸음이 골목 바깥쪽을 훑듯이 지나간다.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의 발걸음 소리. 백 퍼센트 추격자의 것이다. 이 정도 거리를 따라 잡히다니, 중간에 비틀비틀하면서 까먹은 거리가 꽤 되는 모양이다. 허벅지의 자상만 없었다면 진작 이 골목을 빠져나갔을 텐데, 하는 생각은 지금 상황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 상태로 세 명을 전부 처리할 수는 없다. 아마 나누어 들어올 테니, 한 명쯤이라면. 가로등 그림자에 제 몸을 조금 더 바짝 붙이며 카게야마는 숨을 죽인다.

“-그쪽에 있어?”
“씨팔, 핏자국이 다 비에 쓸려가는 바람에. 재수도 좋다, 쥐새끼가.”
“넌 저쪽으로 가, 스기하라 너는 그 오른쪽 골목. 나는 이쪽으로 간다.”

익숙한 목소리가 낮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가장 까다로운 상대지만, 등 뒤에서 덮치면 승산이 있다. 다행히 소리나 기척에는 둔감한 놈이었다. 두어 번 거래 현장에 같이 나가본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다는 건 카게야마에게 매우 큰 운이었다. 다만 그때까지 완벽하게 기척을 죽이고 있어야 한다. 온몸을 때려대는 장대비가 이렇게 고마운 적은 없었다. 단말마의 비명도 허용할 수 없다. 번쩍 눈을 뜬 카게야마의 시야에, 누군가의 구둣발이 잡혔다. 한 발짝, 두 발짝.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을 때 카게야마의 눈이 빛났다.

“끄……윽.”

뒤에서 덮쳐 목을 조이고, 다른 손으로는 고개를 꺾어낸다. 아직 그 정도 힘은 남아있었다. 힘없이 자리에 쓰러지는 옛 동료-아마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를 잠깐 바라보다, 카게야마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곧 낌새를 알아챈 놈들이 이쪽으로 올 것이다. 그 전에 이 골목을 벗어나야 했다. 길거리에 점점이 떨어진 핏자국은, 빗물이 만들어낸 작은 개울에 휩쓸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사냥개들이 냄새를 맡을 틈을 줄 수는 없었다. 자꾸 땅바닥으로 가라앉으려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면서, 카게야마는 방향 없는 목적지로 가는 발을 재촉했다.

- 빨리, 오이카와에게로 돌아가. 이쪽으로는 오지 마라.

히라츠카 몫의 담배심부름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미 사무실 현관에 들어섰을 때 히라츠카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쩐지 입구부터 개미 한 마리 안 보인다 했더니, 무슨 깜짝 파티라도 하는 건가. 심지어 오이카와에게 돌아가라니, 살면서 두 번이나 쫓겨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카게야마는 이것이 어떤 종류의 거짓말인 줄 알았다. 오늘 만우절 아닌데요, 하고 태평스럽게 건넨 자신의 말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을 때 등 뒤로 누군가 와서 서는 기척을 느꼈다. 그리 호의적인 기척은 아니라는 걸 느꼈을 때는 이미 날붙이와의 거리가 일 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불에 덴 것처럼 뜨거운 느낌에 간신히 몸을 피했으나 이미 칼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뒷문까지의 거리는 약 오 분. 그것도, 도중에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대치하고 있는 놈은 발이 느리다. 카게야마는 곁눈질로 이동 경로를 설정해두고, 칼을 고쳐쥐는 놈의 손목을 향해 발을 내질렀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칼이 떨어졌으나 이미 로비에서 카게야마를 기다리는 사람은 그 한 명이 아니었다. 뒷문으로 나오는 데까지는 약 두 시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나마도 온몸의 수많은 상처를 대가로 하여.

“허억, 헉…….”

자꾸 가물거리는 시야 틈새로 차가운 빗물이 억지로 비집고 들어온다. 빗줄기는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입김도 지운다. 카게야마는 결국 옆구리를 쥔 채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머리가 대리석 바닥에 부딪혀, 지잉 하고 둔통이 고였다.

어쩌다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

대답할 수도 없으면서 자꾸만 질문을 던진다. 깜박거리는 정신을 어떻게든 잡으려는 노력임과 동시에, 정말로 자기 자신을 향한 질책이자 순수한 의문이기도 했다. 꽤 따뜻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던 히라츠카의 얼굴이 떠오름과 동시에, 며칠 전 자신을 바라보던 오이카와의 뜻 모를 표정이 떠올랐다. 오이카와 씨, 많이 멋있어졌지. 나도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 성장한 모습으로 마주했다면 좋았을 텐데. 태평한 감상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자신에게서 나올 만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의식의 끈을 놓지 않으려면 무슨 생각이든 떠올려야 했다. 자신을 바라보던 무심한 쿠니미의 시선까지. 그 두 사람 사이에는 뭔지 모를 미묘한 분위기가…….

“뭐야, 이거?!”

마츠카와 씨? 아니면, 하나마키 씨? 하나마키 씨는 담배를 안 피우니까, 이 시간에 바깥으로 나오는 건 마츠카와 씨겠지, 역시. 오이카와 씨 목소리는 확실히 아니다. 이제 쓸데없는 곳으로 의식을 당겨야 할 필요가 사라져서 다행이다. 그렇게 비틀대면서도 원래 있던 곳으로, 와야 할 곳으로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다. 안도감인지 죄책감인지 모를 감정에 천천히 카게야마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야, 누구 좀 나와봐!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문이 벌컥 열리고 몇 사람의 구둣발소리가 들렸다. 아까도 들었던 소린데 느껴지는 감정은 천양지차다.

“……토비오?”

아, 오이카와 씨 목소리. 완전히 닫혀있던 시야가 열렸다. 아니, 카게야마가 억지로 시야를 열었다. 빗물이 흘러들어오고 눈꺼풀을 밀어 올릴 기력조차 없었지만 왠지 오이카와의 얼굴은 봐둬야 할 것 같았다. 얼굴도, 표정도 볼 수 없이 흐릿한 윤곽만이 움직이고 있다. 그래도 오이카와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손을 들어 괜찮다고 얘기하고 싶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 오이카와를 인식하자마자 온몸에서 힘이 주르륵 빠져나갔다. 어쩌면, 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안심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버린 사람인데, 어쩌자고 이곳으로 돌아오고 만 걸까. 오이카와 씨가 나를 다시 받아줄 리도 없는데…….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카게야마는 다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몸이 붕 떠오르는 감각을 마지막으로 의식의 문이 완전히 닫혔다.




카게오이 + 쿠니오이 + 기타 오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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