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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오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上

리퀘박스 / FHQ 바탕.

리퀘 : 원작 배경으로 아직 사귀진 않는 선후배 카게오이가 꿈속에서 주기적으로 만나게 되는 이야기


제멋대로 마이붐 FHQ를 끼얹었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걸 원하셨... .....을까...(아니셨어도 이미 어쩔 수 없다)

뒤편이 中일지 下일지는 모르겠지만 곧 마저 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6천자밖에 안 썼는데 제 인내심 바닥남 ㅠㅠㅠㅠ






“으, 피곤해애.”
“비디오 적당히 보고 자랬지.”
“그게 아니란 말이야-”

이와이즈미가 뒤통수라도 한 대 때릴 것처럼 정색하고 쳐다보는 통에, 오이카와는 지레 겁을 먹고 한 발짝 물러선다. 물론 이와이즈미에게 정말 때릴 생각은 없었지만.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확실히 오이카와는 어제 헤어질 때보다 지쳐 보였다. 어디 아픈 곳이 있다든가, 컨디션이 안 좋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이카와의 피곤함은 다크서클이나 충혈된 눈처럼 외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정말로 기운이 없는지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와의 거리를 조금 유지한 채 그대로 걷는다. 평소보다 얼굴의 각도가 비스듬히 처져 있었다. 그 옆얼굴을 잠깐 바라보다 이와이즈미는 무심하게 물었다.

“그럼 왜?”
“으음.”

신통치 않은 한마디. 대답이라 하기에도, 대답이 아니라 하기에도 모호한 음절에 이와이즈미는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얘기를 안 해 줄 거면 운이라도 띄우지 말든가.

“자꾸 이상한 꿈을 꿔.”
“꿈?”
“응. ‘이상한’.”

아침에 공을 들여 세팅했을 앞머리를 제 손으로 꼬면서 오이카와는 표정을 구긴다. 이와이즈미의 표정을 슬쩍 보더니 아무래도 혼날 것 같았는지 황급히 덧붙였다.

“아, 그래도 연습에 무리를 줄 만큼 심각한 건 아니니까.”
“……연습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앗, 그러면 오이카와 씨의 몸 상태가 더 걱정인 거야? 감동이야! 따위의 말을, 부끄럽지도 않은지 줄줄 늘어놓는 오이카와의 얼굴을 잠깐 노려보고, 이와이즈미는 재촉의 의미를 담아 오이카와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오이카와가 약속 시각보다 오 분 늦게 나오는 바람에 평소보다는 등교 시간이 조금 촉박하다. 물론 지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무슨 꿈을 꾸는데?”
“꿈에 어떤 남자가 나와서.”
“남자?”
“응. 남자가 나와서 우는 것 같아.”
“우는 것 같다니……. 우는 게 아니고?”
“얼굴이 제대로 안 보여서 우는지 잘 모르겠어. 그런데……. 어쨌든 눈물을 흘리고 있어.”

그 남자의 뺨을 감싼 내 손이 젖어있었어, 라는 말은 왠지 이와이즈미의 앞에서 꺼낼 수 없었다. 황급히 자신의 말허리를 자르고 대강 적당한 말을 갖다 붙이는 바람에 앞뒤가 안 맞는 문장이 되고 말았지만, 이와이즈미는 그리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다.

“아는 사람이야?”
“글쎄……. 얼굴이 다 보이질 않아서.”
“말은 안 하고?”
“이제까지는 말을 안 했는데.”
“이제까지는?”
“…….”

머릿속이 간밤의 꿈으로 잔뜩 헝클어져 있다. 어릴 적 반짇고리를 뒤져 실패를 여러 개 꺼내 놀고 난 후와도 비슷한 감정. 얽히고설킨 색색의 실을 앞에 두고 망연한 자신을 보고, 엄마는 풋 웃으며 ‘저녁 먹기 전까지 전부 정리하렴.’이라고만 말한 뒤 방을 나갔다. 결국 그 실을 다 정리하는 데에 얼마나 걸렸더라. 어린아이의 시간 감각으로는 도저히 짐작도 가지 않는다. 오이카와는 머리를 쥐어뜯으려다 가까스로 두 손을 멈추었다. 아무리 그래도 머리카락을 망칠 수는 없다. 간밤에 처음 들은 그 남자의 목소리는 어딘가 낯익으면서도 도저히 누군지 알 수는 없었다. 노이즈가 낀 것처럼 불분명하게 흩어지던 목소리의 파편. 그런 것치고 그의 뺨을 감싼 자신의 손바닥에 스미는 떨림은 간절하기도 했다. 이유 없이 갈라지는 제 목소리를 몰래 가다듬고 오이카와는 말했다.  

“어제 처음 말했어. ……‘-죽지 마세요.’ 라고.”


*


“죽음이야말로 지복(至福)이야.”
“또 시작이군.”
“마왕님께 그렇게 차가워도 되는 거야, 쿠로쨩?”
“마왕님이 죽음을 바라도 되는 건가요, 오이카와 씨?”

시미즈의 흰 손끝이 탁, 하는 소리를 내며 책을 덮었다. 두 사람 다 그만하라는 의미라는 걸 이 두 사람이 모를 리 없다. 악의없는 토닥거림은 익숙한 것이지만 그만큼 지겨운 것이기도 했다. 벽에 부딪혀 미끄럽게 빛나는 등불마저 온기를 품지 않는 이곳은 마계다. 바닥에 두텁게 깔려 소용돌이치는 시간은 그 피조물들에게 노화도, 죽음도 허락하지 않았다. 인간계의 한 황제는 불로장생을 애타게 바랐다던가. 그가 죽기 전에 그 사실을 알았다면 이 자리로 초청이라도 할 것을 그랬다. 그라면 냉큼 받아들였을 텐데. 이 의자가 그를 받아들였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쓸데없이 호화롭게도 만들어진 의자에 비딱하게 걸터앉은 채 턱을 괸 오이카와는 한숨 비슷한 것을 씹어뱉는다. 수정구슬 안에는 보랏빛 안개가 고여 천천히, 끈적하게 흐르고 있었다.  

“너희는 죽고 싶다는 생각 한 번도 안 해봤어?”
“…….”

쿠로오와 시미즈가 조용히 눈을 마주쳤다. 먼저 어깨를 움츠린 것은 역시 쿠로오 쪽이다. 시미즈는 별 표정변화 없이, 투명한 안경 렌즈 너머의 까만 눈을 두어 번 깜박였을 뿐이다. 마계에서의 삶을 삶이라 부를 수 있다면 쿠로오와 시미즈의 삶을 합쳐도 오이카와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쿠로오가 짐작건대 오이카와는 마계와 함께 태어났다. 어쩌면 오이카와의 존재 때문에 마계가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다. 마계가 존속되는 한 오이카와가 죽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이곳에는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오이카와가 인간계에서 ‘죽음’을 목격하기 이전까지는.

“미안, 마왕님. 나는 되도록 오래 살고 싶거든.”

당신이 만들어준 이 영생에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는데, 라는 말은 삼켜낸다.

“왜? 이게 뭐가 재미있어?”
“재미가 삶의 이유는 아니잖아.”
“그렇지만 재미없어도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지.”
“우리 마왕님은 너무 염세적이어서 탈이야.”

모든 말을 가볍게 받아쳐 버리는 쿠로오가 꽤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오이카와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순식간에 곤두박질치는 마왕성의 온도에 쿠로오는 속으로 혀를 찬다. 마왕성, 아니 마계 자체가 오이카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는 사실은 이것만으로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오이카와가 진심으로 화가 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살갗에 와 닿는 온도가 급변한다. 그래서 쿠로오는 오이카와 없는 마계를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고.

“마왕님.”
“응? 키요코쨩, 무슨 일?”
“침입자네요.”

침착한 목소리로 무서운 말하기 대회가 있다면 아마 우승은 시미즈가 떼 놓은 당상일 것이다. 오이카와는 느긋하게 수정구슬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눈동자에 희미하게나마 생기가 돌고 있다. 다행히 이 흥미 없는 주제보다는 조금 더 흥미로운 주제가 나타난 모양이다. 수정구슬 안의 보랏빛 안개가 양 옆으로 갈라지는 틈새를, 무언가 새카만 것이 파고들었다. 수정구슬을 빤히 바라보던 오이카와가 문득 중얼거렸다.

“침입자……. 라고 할 수 있는 거야?”

새카만 것은 곧 형체를 띤다. 쿠로오가 눈을 찌푸렸다. 아무리 쳐줘도 열 살은 안 되었을 것 같은 소년이 마계 입구로 들어선 모양이다. 두리번거리면서도 점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게 문제였다. 이파리가 다 떨어져 바늘처럼 뾰족하게 땅에 꽂힌 자작나무 사이를 망설이는 듯 걸어간다. 그의 등 뒤에서 마계의 입구가 천천히 닫히는 것이 보였다. 보랏빛 원이 너울거리며 그 면적을 좁혀간다. 소년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보랏빛 원은 조약돌 정도의 크기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소년은 다시 걷는다. 길을 잃은 것 같은데 보통 이런 경우 온 길을 되돌아가지 않나. 해는 지고 어둠만 잔뜩 깔린 겨울밤 숲속을 헤매는 것은 열 살도 안 된 소년에게는 확실히 버거운 과제다. 그나마 마계로 들어섰다는 것이 소년의 신상에는 이익일 수도 있겠다. 요즘 인간계의 흉흉함은 마계 못지 않다고 하니까. 하여간 상황파악이 느린 녀석이군, 하고 쿠로오는 속으로 혀를 찬다. 사실 그것보다도 큰 문제가 있었지만.

“인간이잖아?”

오이카와의 목소리에 시미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까닭은 알 수 없지만 종종 마계의 문이 열릴 때가 있었다. 불규칙적이고 전조도 없기 때문에 마계의 그 누구도 그 시점을 예상할 수는 없다. 쿠로오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분명 결계는 제대로 쳐 놨을 텐데. 그 주변에 이상이 생긴 낌새도 없었다. 마계의 문이 열려도 쿠로오의 결계 덕분에 무언가가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다. 켄마 내지는 비슷한 실력을 가진 마법사가 마법을 쓰는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 소년은 어떻게 결계를 넘어 마계의 문 안쪽으로 들어섰을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마음 한쪽에서 너울거리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쿠로오는 오이카와를 본다.

“오이카와, 나 나갔다 올게.”
“응? 어쩌려고?”
“여기가 어딘지 눈치채기 전에 얼른 내쫓아야지. 이와이즈미 같은 꼴을 또 보고 싶어?”

이와이즈미의 이름을 듣고 오이카와는 쓰게 웃었으나, 고개를 젓는다.

“내가 나갈게.”
“……뭐?”
“내가 나갔다가 오겠다고. 안 그래도 무료하던 차에 잘 됐네.”
“오이카와.”
“마왕이 무료한 나머지 죽어버렸다는 건 너희도 원하지 않는 일이잖아? 그러면, 이 심심풀이 정도에는 협력해줘야지.”

짐짓 유쾌하게 말했지만 그 입 꼬리는 날카로운 각도로 말려 올라가 있었다. 쿠로오는 입술을 짓씹는다. 마왕만큼은 아니지만 쿠로오도 육감이라는 게 꽤 날카로운 종류였고, 기척도 없이 마계의 경계를 넘은 소년이 결코 달가울 리 없다. 무언가 말을 보태달라고 시미즈를 보았지만, 시미즈는 쿠로오의 시선을 알아챘는지 모르는 건지 말없이 수정구슬만 노려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이미 오이카와는 쿠로오와 시미즈를 지나쳐 문을 열고 있었다. 새까만 벨벳 망토가 등불을 받아 번들거린다.

“……어쩌려고 그래?”
“어쩌면 저 아이가 내 '지복'을 이루어줄지도 모르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쿠로오의 “야!”는 마왕성 문 닫히는 소리에 묻혔다. 문을 나서기 전 오이카와는 분명히 웃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뒷모습은 단호해서, 마치 지금 나를 막으면 앞일은 각오하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신은 오이카와의 아래에서 일하는 마법사에 불과하고, 그의 앞을 막아설 권한 같은 것은 없었다. 문이 닫히는 바람에 마왕성 문 안으로 들어서버린 눈송이 몇 개가 바닥에 떨어져 곧 녹아내린다. 왜 저 소년은 이렇게 눈이 내리는 와중에 길을 헤매다 마계의 문을 들어서고 만 걸까. 이제와서 이런 의문은 역시 아무런 소용도 없겠지만. 바닥에 어린 물기를 보며 쿠로오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손가락을 뻗어 물기를 없애는 데에 굳이 주문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


“오이카와 씨.”
“마왕님이라고 부르라니까.”
“그치만, 쿠로오 씨도 오이카와라고만 부르는데요.”
“쿠로오의 십 분의 일이라도 산 다음에 그런 말을 하는 게 어떨까, 토비오쨩.”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입술을 비죽이면서도 카게야마는 잠시 내려놓았던 활을 다시 든다. 카게야마가 마계의 문을 들어서고, 인간계의 세월로 십 년 정도가 흘렀을까. 이제는 키도 엇비슷하게 컸다. 물론 굳이 따지면 오이카와가 더 크긴 하지만. 카게야마가 처음 들고 왔던 활은 이제 작아서 더 쓸 수 없다. 대신 마왕성의 문양이 새겨진 활이 들려있었다. 카게야마가 인간 나이로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오이카와가 선물해준 것이다. 과녁에는 다섯 발의 화살이 꽂혀있다. 과녁을 바라보던 오이카와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토비오.”
“네?”
“저거, 일부러 저렇게 쏜 거야?”

무슨 말을 하느냐는 표정으로 멀뚱히 오이카와를 바라보던 카게야마의 얼굴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살짝 화색이 돌았다.

“네. 가운데로만 쏘면 자리가 부족하잖아요.”
“…….”

다섯 발의 화살은 질서정연하게도 과녁 위에 한일자를 수놓고 있다. 다섯 개의 점을 이으면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직선이 완성될 것이다. 화살의 간격마저 일정하다. 오이카와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 인간 꼬마가 자신의 재능을 뽐내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결국, 어디서든 티는 나고 마는 얄궂은 상황들. 카게야마의 궁술은 올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과거나 마계로 넘어온 경위 등을 묻는 대신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거둔다고 했다. 쿠로오는 할 말이 많은 것 같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시미즈는 안경을 추어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사심 없이 새까만 눈동자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시선을 느끼며 오이카와는 작게 웃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카게야마는 활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손에 물집이 잡히고 부르터 시미즈에게 치료를 받은 후에는 붕대를 감은 손에 또 활을 들었다. 쿠로오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더 부연 설명은 필요 없을 터다. 천부적인 재능에 노력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다. 솔직하게도 칭찬을 바라는 순수한 얼굴에 오이카와는 속으로 쓴웃음을 삼킨다. 조금 놀려주고 싶은 마음에, 칭찬 대신 ‘그럴 땐 가서 화살을 회수해야지’ 하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원하는 말을 듣지 못한 카게야마의 입술이 조금 더 비죽인다. 하여튼 솔직한 꼬맹이다. 입보다는 표정이.

“토비오. 왜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는 거야?”
“네? 그야, 스무 살이 되면 오이카와 씨의 직속 군대에 넣어주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
“이왕이면 더 도움이 되어 드리고 싶어서요.”

시위를 매기는 손끝이 야무지다. 한쪽 눈을 감고 카게야마는 활을 천천히 치켜든다. 무언가의 의식처럼 경건하기까지 한 옆얼굴에 오이카와는 짧은 웃음을 뱉어내고 말았다. 그 웃음의 의미는 자신도 알 수 없다. 카게야마가 숨을 고르고는 시위를 놓았다.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열음. 화살은 오이카와의 시선을 아득히 앞질러 과녁에 도착해있었다. 여섯 번째 화살은 일렬로 늘어선 화살 중 정확히 가운데 화살 조금 위에 꽂혔다. 횡렬 다음은 종렬인가.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미소 짓는다. 스무 살이 되려면 아직 조금 남았지만, 카게야마의 실력은 이미 마왕 직속 군대의 누구와 비교해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우위에 있다고 표현하면 더 설득력이 있다.

직속 군대에 넣어주겠다는 약속은 열여섯 번째 생일 선물이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느냐는 오이카와의 질문에 카게야마는 망설임 없이 ‘직속 군대에 들어가게 해주세요.’ 라는 말을 했다. 쿠로오의 눈이 조금 커졌다. 마왕의 직속 군대에 인간이 들어간다니, 언어도단이다. 전례는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터였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아하하, 웃고는, ‘스무 살이 되면.’ 이라고 말하며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죠? 약속하신 거예요!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환한 웃음에, 오이카와에게 막 따지려던 쿠로오는 또 입을 다물고 말았다.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수많은 말들을 꾹꾹 밀어 넣고는 이제는 어떻게 돼도 난 모른다, 하는 시선을 던졌지만 오이카와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왜 내 직속 군대에 들어오려는 건데?”
“?”

약속받을 때도 듣지 못한 새삼스러운 질문이었다. 다음 시위를 매기려던 손을 멈추고, 카게야마는 오이카와 쪽으로 몸을 조금 틀었다.

“이유가 필요한가요?”
“응?”
“그것 말고 제가 오이카와 씨에게 도움이 되어 드릴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도 괜찮아요. 제가 할 줄 아는 게 활밖에 없으니까, 군대를 말씀드린 거고요.”
“……지복이 눈앞에 다가왔네.”
“네? 지복?”
“아무것도 아니야. 오이카와 씨는 이만 가 볼게. 너무 무리하지 말고.”
“네.”

도움이 되어줄 수 있는 일이라. 오이카와는 몸을 돌리며 카게야마의 말을 곱씹는다. 핑, 하는 파열음이 등 뒤의 공기를 찢어발겼다.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막을 도리는 없었다. 죽음이야말로 지복이지. 언젠가 쿠로오에게 별 의미 없이 던졌던 그 말이 점차 형체를 띠고 있었다. 손을 내밀면 어루만질 수 있는 거리에, 죽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카게야마의 두 손에 얌전히도 들렸다. 시미즈를 따르는 두 소악마들에게 은촉의 화살을 부탁하는 시점은 언제가 좋을까. 오이카와는 제자리에 멈춰선 채 후후, 하고 웃는다. 왜 웃음이 나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카게야마가 생각하는 ‘도움’과 오이카와가 생각하는 ‘도움’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 때문일까. 오이카와가 생각하는 '도움'이 카게야마에게도 '도움'으로 받아들여질지는 역시 알 수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도움을 요청하려는 자신의 잔혹함 역시 사무치도록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토비오.  

너는, 내 심장에 화살을 꽂아 넣어줄 수 있을까. 이 무료하게 고여 있는 일생에 네 손으로 마침표를 찍어줄 수 있을까. 그것이 나를 돕는 일이라면, 너는 기꺼이 나를 멸할 수 있을까. 너를 거둬준 대가로 내 일생을 거둬달라는 거래에 부당함은 없을 터다.

어쩌면 그날 밤, 결계를 열어젖혀 너를 들어오도록 한 건 나일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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