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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오이] 생존전략

SS / 키타이치 과거 날조

가루다님의 '착각', 네사님의 '복수'키워드로 쓴 앵스트.


였는데... 앵스트라기 보다는 그냥 내 뇌 한구석에 항상 자리잡고 있던 -내가 오이카와였다면- 의 한 버전일듯.

항상 마음 먹고 쓰는 건 어렵고.

캐붕을 각오하고 키타이치로 더 앵스트하게 써보고 싶은데 아직 다듬어지지가 않아서 mm) (사실 이것도 캐붕대잔치임)

n년 전 글 쓰던 걸 떠올리면서 최대한 그때처럼 써보려 노력했는데 성공한 부분도, 실패한 부분도 있다... 라기보단 1인칭으로 쓸 땐 대체로 이랬던가?(가물가물)

문체 점검용으로 쓴 글이라 짧다(4천 자 정도).




정확히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새끼들은 자신의 연약함과 귀여움을 최대한으로 어필하는 것이 생존본능의 일환이라고 한다. 그래야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던가. 떠올려 보면 나 역시 그런 전략을 사용했다. 딱히 연습할 필요도 없이 처음부터 자연스러웠던 윙크, 천성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애교스러운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얼굴. 무엇하나 억지로 꾸며낸 것이 아니었기에 내게서 부자연스러움을 느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거라 확신한다. 인정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나는 그것들을 꽤 유용하게 써먹었다.


차라리 억지로 꾸며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녀석이 있었다. 처음 볼 때부터 그 얼굴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마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조금씩 튀어나온 그 입술을 볼 때마다 잡아 흔들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살짝 삐친 앞머리도, 제가 흥미를 느끼는 그 모든 것-그러니까, 배구에 관한 모든 것 말이다-을 빨아들이려 안달이 난 동그란 눈동자도 전부,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내 앞에서 너는 그 ‘생존본능’을 발휘하지 않는 걸까.


천재는 맘에 안 들어. 내가 입버릇처럼 되뇌는 그 말에도 너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재’가 뭔지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그 ‘천재’의 범주에 자신이 들어간다는 생각을 애초에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두 쪽 모두 내게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차라리 우시와카처럼, 오만하다시피 자신의 재능을 알고 피로하는 편이 덜 역겨웠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하고는 앞으로 모든 것을 알아갈 가능성을 내비치는 어린 위선. 공을 만지기만 해도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을 하지만, 분명 그 행복에는 상한선이 없으리라고 암시하는 눈빛. 만나는 모든 것을 제 디딤돌로 삼아버릴 것이 뻔한 욕심. 누가 기꺼이 그 희생양이 되려 하겠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는 웃었다. 비틀린 웃음 따위는 모른다. 물론 내가 비뚤게 웃는다 해서 눈앞의 이 꼬마가 알아차릴 것 같지도 않았으나. 유독 나를 진득하게 좇는 네 눈빛을 내가 몰랐을까. 서브연습을 할 때마다 네 눈빛은 내 궤적을 따라 뛰어올랐다. 허공의 정점에서 차라리 산산조각이 나 떨어져 내리는 상상을 여러 번 했다. 그때 네 표정을 상상하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 견딜 수가 없었다. 아마 너는 내가 깨지는 것보다, 내 서브가 허공에서 증발해버린 것을 더 아쉬워하겠지. 네게 나는 딱 그 정도 의미라는 것을 안다. 따라잡아야 할 상대, 뛰어넘어야 할 상대. 나는 네게 기준을 마련해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 기준이 되어주는 건 더 싫었다. 내가 무엇이 아쉬워서 네 배구에 흔적을 남겨.


서브 토스 요령, 가르쳐주세요.


우와. 뻔뻔하게도 말간 얼굴로 저런 소리를. 나는 진심으로 기가 찼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의무적으로라도 띠었던 미소조차 내 입가에 자리 잡지 못했다. 너는 나를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아니 몇 번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너의 디딤돌로 삼으려 했다. 나는 거부할 권리가 있었다. 흔적으로 모자라 원형을 제공해달라는 이 뻔뻔한 요청에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면, 나는 배구부 주장이 아니라 배구부 코치를 하고 있어야 옳다.


싫어.

왜요?

내가 그걸 네게 설명해야 해? 아무튼 싫어.


쌀쌀맞게 저지 자락을 휘날리며 돌아서는 내 옆얼굴에 끝까지 와 닿는 너의 시선이 나를 못 견디게 한다. 내가 이유까지 설명해야 하나? 너의 계단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 마음을 네게 직접 설명해야 너는 직성이 풀릴까? 오이카와 씨요? 제 스승이에요. 서브와 토스는 이분에게 배웠죠. 정말 대단한 선배이자, 스승입니다. 평생 감사해야 할 분이에요.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인터뷰 기사 자락이 나를 꽁꽁 옭아맸다. 견딜 수 없게 우스꽝스러운 상상. 속에서 쓴 물이 울컥 치솟았다. 급하게 화장실로 들어가 맨 첫 번째 변기를 붙잡고 속을 게워낸다. 입안에 고여 있던 멀건 액체가 주르륵 흘렀다. 배구공을 꼭 붙들고 있던 네 손가락을 게워내고, 희망에 부푼 네 목소리와 눈빛을 게워내고, 마지막으로 내 거절을 듣고 뾰로통해진 네 얼굴을 게워낸다. 변기 위에 토막토막 떠오른 너를 보며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몇 번이고 헛구역질을 되풀이했으나 끝까지 눈물은 맺히지 않았다.


배구는 여섯 명이 강한 쪽이 강한 거야, 라는 이와쨩의 단순명쾌한 가르침은 앞으로의 지침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너에게 조금 더 유연한 태도를 보일 수 있게 된 것도 그 이후였다. 분명 내 어깨너머로 복사한 것이 분명한 서브에도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네 서브를 본 이와쨩이 할 말 많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으나,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나는 조금 자라 있었다. 기본적인 주장과 부원 사이의 소통은 했다. 자세를 고쳐주기도 하고, 공을 주워주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자진해서 필요 이상으로 네게 다가가지 않았다. 최소한의 자기방어였을까, 너도 필요 이상으로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린 동물은 제게 호의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기막히게 구분한다. 눈치라기보다는 본능이라 부르는 편이 정확하겠지만.


그래서 나는 그날 너를 맞닥뜨릴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중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정확히는, 졸업식이 모두 끝난 날 저녁이었다. 체육관에서 미처 가지고 나오지 못한 짐이 있어 늦게나마 키타이치의 체육관에 들러야만 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의 뒷모습에 인사를 건네고 나온 기억이 있다. 하늘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때까지 너는 체육관 밖에서 혼자 벽에 공을 부딪쳐가며 리시브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네가 돌아보았다.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으나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너를 지나쳐 체육관 안으로 들어섰다. 이제는 이름표까지 뗀 사물함에서 남은 짐을 챙겨 다시 체육관을 나온다. 문단속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일이면 반납해야 할 체육관 열쇠를 짤랑거리며 온 길을 되짚는다. 너는 연습을 멈춘 채로 서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처음에는 애써 무시했다. 억눌러온 모든 것을 끝에서 망치고 싶지는 않았기에. 너라는 작은 걸림돌을 제하면 삼 년간의 중학교 생활은 꽤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 이 년이 지나면 좋든 싫든 너를 또 봐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 너도, 나도 배구를 관둘 위인들은 아니었다. 그전까지만 나를 놓아줘.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공 튕기는 소리가 그치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추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타닥, 하는 발소리와 함께 굳이 내 앞으로 돌아오던 너.


…….


내 표정은 어땠을까. 네 표정은 어땠더라. 너는 억지로 내 시선을 잡아챈다. 더 이상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래, 이 순간만 참아 넘기면 우리는 이 년 동안 서로를 보지 않아도 된다. 내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처럼 응시하는 후배의 시선을 느낄 필요도 없고, 쓸데없이 차갑게 구는 선배를 야속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이대로 안녕히 가세요 오이카와 씨, 잘 있어 토비오쨩, 이 정도의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은 후 갈 길을 가면 된다. 아주 모범적인 선후배의 작별이다. 그러나 그렇게 끝날 리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깊이를 알고 싶지도 않은 새까만 시선이 나를 있는 힘껏 올려다보고 있다.


뭐, 할 말 있어?

아뇨, 아, 네.

뭔데?


나는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스포츠 백 끈을 추어올리며 네 다음 말을 재촉한다. 작은 입이 할 말을 찾는 것처럼 오물거렸다.


…….


왜 말할 듯 말 듯 아무 말도 튀어나오지 않는 거야. 나는 옅은 짜증을 느꼈다. 사람을 불러 세웠으면, 그것도 이미 졸업식을 마친 3학년을 불러 세웠으면 그에 걸맞은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더 이상 짜증을 느끼는 것도 지친다. 부정적인 감정을 오래 담아두는 건 내게도 손해다. 나는 말없이 발을 내딛는다. 한시라도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 너에게서 멀어져야 한다. 집에 가서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밥을 먹자. 따뜻한 물로 목욕도 할 거야. 그런 내 다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는 다시 뛰어 내 앞을 가로막았다.


토비오쨩, 귀찮게 좀 하지 말아줄래.

드릴 말씀 있어요.

그러면 해. 자꾸 가로막지 말고.

보고 싶을 거예요.

……뭐?

보고 싶을 거예요, 오이카와 씨.


이건 혹시 복수일까. 일 년 동안 자신을 철저히 묵살해온 선배에 대한 복수? 나는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뻔뻔스러울 정도로 말간 얼굴은, 그 언젠가 내게 서브를 가르쳐 달라고 말하던 그 얼굴과 똑같아서 문득 현기증이 났다. 그때야 이것이 네 나름의 생존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서투를지언정 효과는 확실한 생존전략.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아주 효과적으로 사람 속을 휘저어놓지만, 끝까지 네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겠지. 차라리 서브를 가르쳐 달라고 했으면 헛웃음을 지으며 머리라도 쓰다듬어줄 수 있었으리라. 또 쓴 물이 치솟는다. 순식간에 입안에 침이 가득 뱄다. 내가 조금 더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다면 정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의 반례를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은 아직도 아쉽다.


일 년 동안 감사했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


하, 하하. 헛웃음이 치고 올라온다. 왜 웃음이 나오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조금 웃겼다. 그러나 그 웃음이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이 웃음이 네게 여지를 줄까봐 나는 억지로 삼켜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웃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 같은데.


뭐가 감사한데?


요 일 년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나는 네게 감사받을 일을 전혀 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물었다. 비꼼이나 질책이 아니라, 정말로 궁금했다. 사실 비꼼이나 질책의 의미를 담았다 한들 네가 알아차릴 것 같지도 않았다. 네 얼굴이 생각에 잠겼다. 잠깐 땅을 향했던 시선이 곧 다시 내게 쏟아졌다. 너와 내 발밑에 땅거미가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그 때문인지 발밑이 근질거렸다.


그냥……. 이것저것요. 신경 써 주신 것들. 주장에게는 이런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신경 써줬다고? 내가, 토비오쨩을?

네에.

토비오쨩, 미안한데 그거.


네 착각일걸.


나는 이 일 년 중 가장 크고, 예쁘게 웃었다. 얼핏 구겨지는 네 동그란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싶은 충동은 억누른 채. 진심으로 그런 웃음이 나왔다는 게 나 자신도 놀라울 정도였다. 그리고 준비했던 마지막 한 마디는 생각보다도 쉽게 나왔다.


아, 미안해. 이건 내 생존전략이야.


언젠가 네가 이것을 복수할 날이 올까. 그것은 나도, 심지어는 당사자인 너도 알 수 없는 문제다. 그날이 기다려지는 건 네 앞에서만 뒤틀리는 심사 탓이다. 어쩌면 나는 그 복수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네가 조금 더 효과적인 생존전략을 들고 내 앞에 서기를 원해. 미숙한 날카로움을 조금 더 별러오길 바라. 그리고 순간 조금 서늘해진 네 얼굴을 보며 아마 그것이 가까운 시일 내에 예정되어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더 할 말은 없는 것 같았다. 그대로 뒤돌았다. 너는 다시 내 앞에 서는 대신 선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렇게 웃으세요.


너는 그게 불만이구나. 나는 최대한 예쁘게 웃어줬는데. 이제까지 네게만 안 웃어주는 게 불만인 줄 알았더니 또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무덤덤한 척 까다로운 구석이 있는 너여서, 이 정도로는 만족을 모른다. 이것도 일종의 오만이 아닐까. 나는 너 별로 안 보고 싶을 거야. 안녕, 토비오쨩. 앞으로 이 년은 보지 말자.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겠지. 나는 이 모든 말을 축약하여 말없이 오른손을 두어 번 흔들어보인다. 이 정도면 충분히 인사가 되었겠지. 조금 더 선명한 목소리가 등 뒤를 바짝 좇았다.


다음엔 그렇게 못 웃으실 거예요.


아, 그러면 지금 실컷 웃어놔야겠네. 나는 일부러 뒤돌아서 더 크게 한 번 웃어 보이고는, 이번에야말로 후회 없이 걸어나간다. 너 역시 미래의 내게 다른 생존전략을 요구했다. 하여간, 귀염성 없는 꼬맹이라니까. 징그러울 정도로. 등 뒤에서 다시 벽에 공을 튕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내 입가에 걸린 미소는 거짓말처럼 사라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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