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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오이] 야행(夜行) 6

네임버스 / 느와르AU. 쿠니오이 요소 있음...


너네 언제 연애할 거니.....? (mm







습관적으로 또 담배를 빼어 물고 아차, 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다시 확인한 담뱃갑 안에는 세 개비가 남아 있다. 한 시간에 한 대 정도씩이라면 나쁘지 않다. 이미 입에 문 담배를 도로 담뱃갑으로 되돌리기도 뭐하고. 오이카와는 한숨을 쉬며 담뱃불을 붙였다. 줄담배는 되도록 삼가고 있었는데 도저히 오늘은 참을 수가 없다. ‘하루 한 갑 규칙’은 이와이즈미가 요유키에 없어도 꼭 지키는 습관이지만, 지금은 또 상황이 달랐다. 습관적으로 책상 위에 검지 끝으로 원을 그리며 오이카와는 지난 새벽 이와이즈미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이와쨩?’
-너, 지금 대체 몇 시…….
‘문제가 생겼어.’
- 엉?
‘강아지가 돌아왔어.’
- 그게 무슨 소리야? 강아지?

막 자다 일어난 이와이즈미는 상황 파악이 그리 빠르지 못했다. 어울리지 않게 저혈압 기운이 있는 그는 아침에 약했다. 언제나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강아지로 비유하는 것을 알면서도 무슨 소리냐고 되묻는 점이 그랬다. 따지고 보면 아침이 아니라, 새벽 두 시 반이라는 심야였지만. 토비오 말이야, 하고 덧붙이자 핸드폰 너머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와이즈미가 급하게 몸을 일으키는 기척이다.

‘츠키시마에게 연락해뒀어. 이와쨩도 좀 와 줬으면 해.’
- 내가? 왜?
‘노유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야. 피투성이로 우리 건물 앞에 쓰러져 있었어. 나나 조직원들이 붙어있을 수 없으니, 이와쨩에게 부탁하고 싶은 거야.’
- 하……. 결국.
‘차는 보내뒀어. 오 분 정도 후에, 맛키가 뒷문으로 도착할 거야. 아마 이와쨩이 오래 있을 일은 없을 테니 최대한 필요한 것만 싸서 나와. 부탁해.’
- 지금 카게야마는?
‘일단 내 침대 위에. 달리 둘 데가 없어서.’
- 이따 보자.

간결한 대답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이와이즈미를 데려오는 중책의 운전수는 미안하지만 하나마키에게 부탁했다. 최대한 알고 있는 사람을 줄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와이즈미가 요유키에 와 있다는 것도 외부에 알려지면 곤란한 일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엄연한 외부인이다.


*


삼 년 
전, 갑작스럽게 조직 내에 피바람이 분 적이 있다. 아무런 전조 없이 조직원 중 열 명 내외가 한꺼번에 말 그대로 ‘바다로 가라앉았다’. 그중에는 오이카와와 더불어 서열 싸움의 한가운데 서 있던 사람도 있었다. 다음 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열린 주주회의에서 이와이즈미가 발언권을 신청했다. 좀처럼 없는 일이라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이 그를 주목했다. 물론 그 후에 그의 입에서 떨어진 한 마디는 회의장을 초토화하기에 충분했다.

- 어젯밤 사건, 주동자는 접니다.

이와이즈미가 일을 벌이기 전 오이카와에게 상담하지는 않았지만, 대충 짐작은 갔다. 왜 그가 피를 손에 직접 묻히고 자수 아닌 자수를 했는지. 반 이상 짧아진 담배를 재떨이에 끄면서도 오이카와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마츠카와가 피우던 담배를 떨어뜨려 앗뜨, 하고 중얼거리고 하나마키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쿠니미가 들고 있던 물병이 미세하게 떨렸다. 함께해온 이십 년 넘는 세월 동안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에게 상담하지 않고 벌인 처음이자 마지막, 즉 유일한 사건이었다.

이어 이와이즈미가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그쪽’ 일당은 경찰과 라이벌 조직에 꾸준히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앞뒤 사정은 대부분 이해했으나 윗선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조직원을 열 명씩 쳐낸 건 역시 반발이 심했다. 대주주 중 한 명이지만 실세 라인에서는 멀어진 원로 한 명이 항의를 시작했다. 그마저도 형식적이라는 것이 뻔했다. 이와이즈미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 입술을 비틀더니,

그러니까 책임지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라는 말만을 던지고는 회장을 나가버렸다. 저거, 잡아야 하는 거 아니야? 마츠카와가 오이카와에게 말했지만 오이카와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하나마키가 한숨을 쉬었다. 조직을 제 발로 나갈 수는 없다. 언제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이와이즈미도 분명 그것을 알면서 택한 일이다. 그리고 이유는 짐작이 간다.

보스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한 상황이라는 것을, 간부들은 대충 알고 있었다. 여든이 넘은 보스는 지병으로 드러누운 채 삼 년 가까이 병원에서 보냈다. 병원에서 산소 호흡기를 떼는 것이 어떠냐는 조심스러운 통지가 온 것이 그저께다. 그것은 본격적인 서열 다툼이 성큼 다가왔다는 뜻이었다. 이와이즈미가 미리 청소한 덕분에 오이카와 앞은 탄탄대로였다. 아마 하루라도 늦었다면 그쪽에서 먼저 치고 들어왔을 것이다. 회의가 있던 날 밤에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에게만 내민 자료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가만히 뒀다면 조직 전체가, 특히 오이카와와 그 라인이 피바람에 휩쓸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와이즈미는 정말 조직을 나가버렸다. 대가는 이제껏 쌓아 온 모든 것이었다.

그 후로 삼 년이 흘렀다.


*


카게야마와 이와이즈미는 묘한 연으로 얽혀있다. 한때 이곳 소속이었지만 외부로 밀려난 사람을 위해, 또 한때 이곳 소속이었지만 외부로 나간 사람이 불려 왔다. 그리고 두 사람이 외부로 밀려나고 나간 이유에는 공통적으로 오이카와가 서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쌓아온 모든 업보는 죽기 직전에 심판당할지도 모르지. 오이카와는 쓰게 웃었다. 담배는 야속하게도 평소의 두 배 정도의 속도로 짧아진다. 틈틈이 담뱃재를 떨어내며 오이카와는 과거로 달리던 생각을 억지로 멈추었다. 너무 오래 되돌아보는 것은 그리 좋지 않다.

씻고 싶었지만 차마 카게야마가 잠든 방을 가로질러 샤워실로 갈 수 없었다. 신경 써야 할 것이 산더미다. 카게야마의 일, 이와이즈미의 거처, 노유키의 동향, 이 혼란을 틈탄 다른 조직의 움직임, 그리고 먼저 보내버린 친구 히라츠카. 이 일을 하면서 가는 데 순서 없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었지만, 사람 좋은 히라츠카가 먼저 가 버린 것은 내심 충격이었다. 아직 그로부터 선물 받은 레미 마르뗑을 장식장 안에 넣어두지도 못했는데.

오이카와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조금 더 빨리 알아야 했다. 지나치게 특출한 카게야마가 그쪽에서 어떤 입지에 처했는지, 조금 더 상세하게 조사해야 했다. 제 분을 못 이겨 책상을 내리치자 둔탁한 소리가 났다. 결과적으로 친구를 잃었다. 제가 보낸 카게야마는 친구의 사인(死因)이 되었고, 상처투성이가 된 채 이쪽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그런 카게야마를 이쪽에서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노유키 쪽에서 가만있을 리 없다. 오히려 스파이였다는 오해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노유키와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카게야마라는 변수에 의해 자동으로 둘 중 하나가 선택되는 시스템. 그 시스템을 만든 게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에 미쳤을 때, 오이카와는 결국 머리를 싸매고 말았다.

당면한 문제는 카게야마다. 건방질 정도로 날카로운 눈빛이 자신을 향했을 때, 오이카와는 밑도끝도없이 언젠가 자신이 죽을 때 이 눈빛이 자신을 마주하고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느꼈다. 발톱을 감추고 있다는 자각도 없이 자신을 따르는 맹수. 강아지라는 표현에는 그 이상 크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물론 카게야마의 그릇이 강아지에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오이카와가 잘 알고 있었다. 강아지는커녕, 호랑이 정도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을 했던가.

길들일 자신은 없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렇다고 죽일 마음도 들지 않았다. 분명 후회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히라츠카도 이와이즈미도 그렇게 말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오이카와의 결정을 존중하기는 했지만, 눈빛은 비슷했다. 언젠가는 후회할 사람을 향한 일종의 연민. 그 눈빛을 마주하고 화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도 너무 선명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결정을 언젠가는 후회할 날이 올 것이라고. 그리고 그 예감은 불행하게도 꼭 들어맞아 버렸다.


*


무심결에 그 이름을 입에 담았을 때, 완벽히 닫혔다고 생각한 눈꺼풀이 올라가고 눈동자가 드러났다. 평소보다 흐릿했지만 빛을 잃지는 않았다. 빗물이 쉼없이 흘러들어 가는데도 깜박이지 않고 자신만을 바라보던 그 눈동자. 왠지 모르겠지만 어깻죽지가 뜨끈했다. 고통과는 다르지만 확실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는 온도였다. 그 느낌도 불그죽죽한 빗물을 보자마자 지워지고 말았다. 배에서, 허벅지에서, 목덜미에서 엄청난 출혈이 계속되고 있었다. 항상 켜두는 입구의 백열등을 받아 파리하게 떠오르는 옆얼굴에 문득 현기증을 느낀다.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이 이내 조용히 감겼다. 카게야마의 안색은 시체 일보 직전으로 창백했다. 이거 어떡해?! 마츠카와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오이카와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일단, 안으로 옮기죠. 누가 보면 곤란하니까요.

쿠니미가 침착하게 대답하고 카게야마의 머리 쪽을 든다. 하나마키가 발을 들고, 마츠카와가 허리를 지탱했다. 오이카와는 현관문을 열었다. 대리석을 강타하던 빗소리가 사라지고 고요한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이명이 시작된다. 오이카와 씨, 츠키시마에게 연락해주세요. 아마 지금 안 잘 겁니다. 쿠니미가 다급하게 속삭인다. 오이카와는 바지 주머니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츠키시마의 번호를 불러냈다. 신호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츠키시마는 앞뒤 따지지 않고 바로 오겠다고 대답했다. 배 위에 올려두었던 카게야마의 손이 덜렁, 떨어져 내릴 때 오이카와는 제 심장도 같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어디로 데려가?

최대한 낮춘 목소리로 하나마키가 물었고, 쿠니미와 마츠카와는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오이카와는, 내 침실, 이라고 대답했다. 두 사람의 표정을 살필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 외에 마땅한 장소도 떠오르지 않았다. 모두가 토를 달지 않고 카게야마를 그대로 오이카와의 사무실에 딸린 침실로 옮겼다.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츠키시마가 도착했다. 용태를 자세하게 전하지도 못했는데 양손에 짐을 잔뜩 들고 있었다. 의사는 침대에 누운 카게야마를 눈으로 확인하더니,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어때? 살 수 있어?

아무 말 없이 입술을 매만지는 오이카와를 대신해 마츠카와가 물었다. 츠키시마는 일회용 마스크를 끼며 눈을 찌푸렸다.

죽지는 않아요, 이런 상처로. 이 사람 더한 상처도 입었으니까.
더한 부상이라고?
네. 이 년 전인가. 아무튼 걱정하지 말아요. 꽤 끈질긴 놈입니다. 아마 죽여도 안 죽을 걸요.

마지막 말은 좀 살벌하네……. 농담 아닌 농담에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하나마키가 웃음기를 되찾은 목소리로 말했다. 침대 다 버리고 싶은 게 아니면 이 위에 냉큼 깔라며 츠키시마가 던져준 비닐 시트가 카게야마 밑에 빈틈없이 깔렸다. 역시 장정 세 명이 모이면 못할 일이 없다. 오이카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거기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역시 아무도 없었다. 아닌 밤중에 중노동을 끝낸 쿠니미가 제 옷소매로 땀을 닦는 것을 지켜보며, 오이카와는 입술을 매만지던 손가락을 뗐다.

이제 좀 나가주시죠. 아무리 그래도 다 큰 어른한테 보호자 네 명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비닐장갑을 낀 손에 메스를 들면서 츠키시마가 말했다. 의사의 말은 거슬러서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은, 다름 아닌 야쿠자들이 가장 잘 아는 사실이다. 네 사람은 썰물처럼 바로 옆의 사무실로 후퇴했다.

노유키 쪽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지?

마츠카와가 물었다. 말투에는 평소의 여유가 돌아와 있다. 오이카와나 이와이즈미 정도는 아니지만 마츠카와도 카게야마를 봐온 세월이 있는 터라 어느 정도 정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노유키에 간 카게야마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낸 게 마츠카와였다. 오이카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치 담배를 다 피웠다는 게 뼈아팠다. 마츠카와가 담배를 안 꺼냈기에 망정이지, 만약 누군가가 지금 눈 앞에서 담배를 피운다면 한 갑 제한을 처음으로 어겼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오이카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빨대가 연락이 안 됩니다.

쿠니미가 변함없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 손에는 업무용 핸드폰이 들려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피투성이로 쓰러져있던 카게야마, 갑자기 연락이 끊긴 노유키 쪽의 빨대. 대강 윤곽이 떠오른다. 오이카와는 핸드폰을 들어 히라츠카의 번호를 불러냈다가 말없이 백스페이스를 연타했다. 다시 대기화면으로 돌아온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무거운 한숨을 내뱉는다.

이와쨩을 불러야겠어.
뭐? 왜?
토비오를 돌볼 사람이 필요할 것 아니야. 우리만 알고 있는 일인데, 우리가 갑자기 밖으로 안 나타나면 분명 노유키 쪽에서 의심할 테니까. 하루 정도면 괜찮겠지.
……얄궂네.

마츠카와의 마지막 말이 무슨 의미인지, 오이카와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둘 다 모종의 이유로 조직을 떠난 사람이고, 그 이유에 오이카와가 차지하는 지분이 절대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의식하건 하지 않건 이렇게 쌓아올리는 업보는 얼마나 될까. 오이카와의 지시를 받은 하나마키가 차 열쇠를 들고 출발했다. 정확히 십오 분 후, 이와이즈미가 후드를 벗으며 사무실로 들어온다.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에는 또 침묵이었다. 고요히 자리를 지키면서도 오이카와는 지금 제 얼굴이 궁금했다. 눈을 감아도 떠도 시야는 핏빛이었다. 이 생활 하면서 피를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토비오가 히라츠카와 함께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면.

이 가정의 뒷부분을 생각하기도 전에 츠키시마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사고를 멈춰 준 츠키시마의 등장에 오이카와는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뒷부분이 어떤 결론이었건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것이 틀림없었을 테니까. 츠키시마는 피투성이 장갑을 재주 좋게 뒤집어 벗으면서 주머니에 넣고 마스크를 벗는다. 희고 반듯한 이마, 샛노랗게 빛나는 머리카락 끝에 피가 파편처럼 튀어있었다. 오늘 첫 대면인 이와이즈미와 츠키시마가 눈짓으로 인사 교환을 끝마쳤다. 오이카와는 문득 관자놀이에 싸하게 어리는 두통을 느낀다. 니코틴 부족이다. 분명 츠키시마에게 물어야 할 말들이 산더미 같은데, 제대로 떠오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상태는?

그런 오이카와를 대신하듯 쿠니미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츠키시마와 쿠니미는 묘하게 닮은 점이 있다. 나이도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친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서로 불편하게 여기지는 않는 듯했다. 언제 말을 놓았는지 두 사람은 반말로 대화하고 있었다. 쿠니미의 질문을 듣자마자 츠키시마의 미간에 잡혀있던 주름이 더 깊어졌지만, 그리 심각한 표정은 아니었다.

나쁘지 않아. 의식은 금방 돌아올 거야. 무리만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저 녀석이 그럴 리 없지. 알아서 잘 단속해.
비용은-
필요 없습니다. 저 녀석한텐 빚진 게 있어서요. 그걸로 계산하죠. 언제나처럼 오늘 일은 비밀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역시 믿음직스러워.

검은색 캡을 깊게 눌러쓰며 고개를 한 번 끄덕해 보인 후 츠키시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나선다. 다섯 사람 모두 츠키시마가 카게야마에게 졌다는 빚이 궁금했지만 본인이 휭하니 떠나버렸으니 물어볼 도리가 없었다. 어영부영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가 넘었다. 아무리 간부진은 출근 시간이 정해지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슬슬 자 둬야 할 시간이기는 했다. 마츠카와와 하나마키는 눈을 붙이겠다며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부탁을 받아 카게야마의 옆에 자리 잡았다. 사무실에는 오이카와와 쿠니미 두 사람만이 남았다.

쿠니미쨩도 들어가 봐.
괜찮으시겠어요?
오이카와 씨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픽 웃어 보이며 오이카와가 두어 번 손을 흔들었다. 오이카와가 이렇게 말할 땐 자리를 피해 주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굳이 같이 있겠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쿠니미는 여느 때와 같은 눈으로 그를 잠시 바라보고 등을 돌렸다.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힘주어 문을 열기 전. 갑자기 멈추어 선 채 말을 건다.

오이카와 씨.
응?
죄송합니다, 더 빨리 눈치챘어야 하는데.
…….

오이카와는 쿠니미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본다. 분명 쿠니미도 오이카와의 시선을 알고 있다. 하지만 뒤돌려 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자신의 표정을 보여주기 싫은 것일 수도 있지만. 오이카와는 쿠니미의 이런 점을 좋아했다. 표정은 어찌 되었건 말투만은 관리해야 했다. 그래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어조로 대답한다.

피곤할 텐데 어서 들어가서 쉬어. 아침 아홉 시에 사무실로 오고.
네. 오이카와 씨도 눈은 붙이세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은 닫혔다. 쿠니미는 이런 부분에서 지체가 없다. 오이카와는 사무실 의자에 앉은 채 눈을 감는다. 아까부터 뜨끈한 어깻죽지가 자꾸 신경 쓰였다. 누군가 눈꺼풀 사이에 모래라도 뿌린 것처럼 눈이 따가웠지만,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았다. 등받이에 조금 더 몸을 기대자 끼익, 하는 불안한 소리가 들렸다.

히라츠카는 지금쯤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으리라. 까딱하면 카게야마도 같은 신세가 될 뻔했다. 평소 지나치게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부하의 손으로 등에 칼이 꽂혔다는 사실은 지나치게 씁쓸했다. 카게야마를 떠맡길 때 ‘보스 등에 칼 꽂을 놈을 데려가라고?’라고 묻던 그 얼굴이 떠올랐다. 카게야마가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인 이유는 되어버렸다. 앞뒤가 어찌 되었든 히라츠카는 제 손으로 죽인 것과 마찬가지다.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할 거라며 사람 좋게 웃던 그 얼굴까지 떠올렸을 때는, 견디지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새 담뱃갑을 뜯었다. 사무실이 아침 햇빛으로 가득할 때까지 침실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돌아갔다. 가게를 오래 비울수록, 즉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좋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오이카와도 그에 동감했다. 카게야마가 전혀 운신을 못하는 상태가 아닌 이상 굳이 간병인이 붙어있을 필요는 없다. 오이카와의 사무실은 건물 가장 구석에 있었고 다른 조직원들이 오고 갈 일도 없어, 카게야마가 이 층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누군가에게 들킬 위험도 적었다. 아직 이곳에 카게야마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건 오이카와와 마츠카와, 하나마키, 이와이즈미 그리고 쿠니미가 전부다. 굳이 따지자면 츠키시마도 포함해서.

모두가 퇴근하면 건물은 익숙한 고요에 잠긴다. 이 건물에 침실까지 마련해서 상주하는 건 오이카와 한 명뿐이었다. 출퇴근이 귀찮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무실 옆 창고를 개조해서 침실로 만든 게 오 년 전 일이다. 다른 조직원이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을 허락받은 건, 그야말로 오이카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스의 절대적인 신뢰가 바탕이었다. 어릴 적부터 동고동락한 이와이즈미와 마츠카와, 하나마키는 더없이 든든한 지원군이다. 삼 년 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이와이즈미는 조직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연이 끊이지는 않았다. 실제로 이와이즈미의 가게는 요유키의 관리 구역 안에 있다.

오이카와는 테이블 위에 동그라미를 그리던 손가락을 멈춘다. 제 침대 위에서 태평하게도 잠들어 있을 ‘강아지’를 떠올리고는 쓰게 웃었다. 어쩌자고 저놈을 내 침대 위에 눕혔을까. 몸을 추스르면 나가 달라니, 그건 추스를 때까지는 여기 있어도 된다는 뜻이지 않은가. 구체적으로 기간을 정한 것도 아니고 그런 막연한 타임리밋은 사실 있으나 마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도저히 내쫓을 수는 없었다. 히라츠카에 대한 사죄도, 카게야마에 대한 미안함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딱 잘라 정의할 수 없는 이유. 또다시 자신을 내쫓으려 하는데도 무덤덤하던 카게야마의 눈빛.

오이카와는 눈을 찌푸렸다. 또 어깨가 뜨끔했다. 손을 뻗어 만져 봐도 뭐가 났다거나, 불편하다거나 한 건 아닌데 잊을 만하면 위화감이 든다. 어쩌면 요즘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서 신경 계통의 문제가 도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심각해지면 병원에라도 가 봐야지. 분명 담배를 끊든지 줄이든지 둘 중 하나는 하라는 소견서를 받겠지만 말이다. 어느새 두 개가 비어버린 담뱃갑을 안주머니에 집어넣고 오이카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쓸데없이 카게야마를 의식하게 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문 너머의 저곳은 원래 오이카와의 방이다. 자신이 망설일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사무실을 가로질러 방으로 향하는 문을 연다. 카게야마가 일어난 기척은 없었으니, 아마 자고 있으리라는 예상대로 방은 짙푸른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예상 그대로 들어맞지는 않았다. 침대 위에 걸터앉은 그림자를 보고 오이카와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비명을 애써 삼켰다. 흐릿한 달빛이 창문 너머로 들어오고는 있었지만, 인영의 표정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밝지는 못했다. 간신히 어둠이 눈에 익어 윤곽 정도는 구분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 카게야마가 고개를 들었다. 서로에게 보이지 않지만 분명 시선이 맞닿았다.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만 같은 침묵을 먼저 깰 생각은 없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오이카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불도 안 켜고 앉아있어.”
“…….”

시선이 이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느껴진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울컥 짜증이 치밀어 오이카와가 한 마디 쏘아붙이려 할 때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제 옷 어디 있어요?”
“뭐?”
“제가 입고 온 옷이요.”
“…….”

반사적으로 ‘그걸 왜 물어?’ 라고 반문하려 했지만, 무언가 목을 콱 틀어쥔 느낌에 오이카와는 숨을 삼킨다. 왜 묻느냐니,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다 있나. 당연히 지금 떠날 생각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뜬금없이 제 옷을 찾을 리가 없다. 카게야마가 입고 온 옷이라면 빗물에 젖어 벗겨지질 않아 어쩔 수 없이 찢어냈다. 이미 그전부터 칼자국으로 난도질 되어 있었으니, 찢어내지 않았다고 해도 입고 다닐 수는 없지만. 이유 없이 잠기려는 목을 몰래 풀고 오이카와는 입을 열었다.

“진작 버렸어. 칼날이 옷을 피해서 네 살만 찢었을 것 같아?”
“그러면 다른 옷이라도 빌려주세요.”
“왜?”
“언제까지 신세 질 수는 없잖아요.”

목소리는 끝까지 담담했다. 지금이라도 떠나주면 고마운 일이다. 마음 같아서는 서랍을 뒤져 제 옷이라도 던져주고 갈 길을 가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왠지,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몸을 추스르자마자 나가라고 한 주제에. 빌어먹을 어깻죽지는 계속해서 욱신거린다. 누군가 계속 바늘로 찌르고 있는 듯한 통증에 오이카와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 몸을 하고 어딜 가겠다고.”
“빌려주실 만한 옷이 없으면 그냥 갈게요. 신세 졌습니다.”

카게야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오이카와를 스쳐 지나가려 했다.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내어 그 손목을 잡았다. 카게야마는 그 자리에서 멈췄으나 돌아보지 않는다. 부연 달빛을 받아 희게 떠오른 옆얼굴의 윤곽에, 비를 맞으며 쓰러져 있던 때의 파리한 얼굴이 겹친다. 여린 맥박이 손바닥 가득 스미고 있었다.

고집스럽게 다물린 입매는 몇 년 전 소년의 그것과 완벽하게 똑같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았다. 인간 불신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잔뜩 흔들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응시하던 소년이 떠오른다. 그 눈동자에서 일렁임이 사라지는 데 몇 년이 걸렸던가. 오히려 그 고요하고 서늘한 눈빛을 마주할 때 턱 바로 아래 서슬 퍼런 칼날이 닿아있는 위기감에 사로잡힌다. 그 위기감으로부터 달아나기를 선택한 결과가 이 꼴이었다.

“놔 주세요.”
“건물 근처에서 송장 치울 일 없어.”
“죽어도 이 근처에서는 안 죽으니까, 놔 주세요.”
“너 정말 미쳤어? 대체 무슨 생각이야?”
“오이카와 씨에게 제가 필요한가요?”
“……뭐?”

그때야 시선이 제대로 마주쳤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까만 눈빛이 일직선을 그린다. 시큰거리는 제 어깻죽지에 손을 대고 싶은 충동을 눌러 참고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시선을 받아낸다.

“제가 필요 없으니 보내신 거고, 이것도 억지로 받아주신 거잖아요. 히라츠카 씨에게 미안해서.”
“…….”
“이럴 거면 그날 그냥 놓고 가지 그러셨어요.”
“너.”
“왜 두 번씩이나!”
 
천천히 손목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눈을 피하고 싶은데 시선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카게야마의 시선이, 제 시선을 꽉 붙들어 매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

“……두 번씩이나 버리실 건 없잖아요.”
“토비오.”
“적어도 절 보내는 이유는 설명해주실 수 있었어요.”
“…….”
“오이카와 씨는, 비겁해요.”

마지막으로 토해낸 목소리는 원망도, 비난도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카게야마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미동도 없이 오이카와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침묵보다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할 말은 그걸로 끝이야?”
“오이카와 씨.”
“내 대답이 듣고 싶으면 일단 침대로 돌아가.”
“저는……!”
“객기 부리지 마. 네가 이럴수록 모든 게 허사가 된다는 걸 몰라?”
“…….”
“이 건물에서 나가고 몇 분, 아니 몇 초 만에 네 몸에 바람구멍 하나가 더 뚫리는지 내기해볼까.”
“……전 제가 필요하지 않은 곳에 있고 싶지 않아요.”
“내게 네가 필요하지 않아도, 네게는 내가 필요해.”

문장은 생각한 것보다도 단호하게 떨어진다. 처음으로 그 눈빛이 흔들렸다. 오이카와의 말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은 카게야마도 잘 안다. 고개가 비스듬히 아래를 향했다. 까만 머리카락이 귀밑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오이카와는 어깨를 떨어뜨린다. 이때까지 카게야마를 안쓰럽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던가. 며칠을 굶었는지 모를 정도로 앙상한 소년의 팔에 꽂힌 링거 바늘을 보면서도 안쓰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깨어난 소년이 처음으로 제 이름을 말할 때까지도 위로는 건네지 않았다.

“그리고, 멋대로 넘겨짚지 마. 널 다시 거둔 이유는 히랏치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게 아니야.”
“네?”
“물론 그게 아예 없지는 않지만.”
“……?”
“내 대답이 듣고 싶으면 침대로 돌아가라고 했어. 다시 거두기로 한 이상 네 선택 같은 건 중요하지 않고, 내 명령도 절대적이라는 걸 알 거야. 언제까지고 잡아 둘 생각은 없지만, 너도 어른이라면 참고 견딜 줄은 알겠지.”
“…….”
“대답.”
“……네.”
“좋아.”

카게야마는 무심코 오이카와의 얼굴을 올려본다. 자신이 마주하는 오이카와는 대체로 이런 표정이었다. 농도의 차이일 뿐, 자신만만한 미소는 그 얼굴에서 떠나는 일이 없다. 피곤에 묻혀 조금 희미했지만, 지금도 그랬다. 문득 쿠니미의 어깨를 잡고 무너지던 오이카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쿠니미는 오이카와의 어떤 표정을 보고 있었을까. 오이카와는 쿠니미에게 어떤 표정을 보이고 있었을까. 애써 기억 저편으로 넘기려던 장면을 떠올리자마자 입안이 바싹 마른다. 카게야마는 그 순간 지금이 밤이라는 사실에 무진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낮이었다면 분명 시뻘게진 얼굴을 들키고 말았을 테니까.

“나는 씻고 쉴 수 있을 때 쉬어야겠어. 토비오도 쉬어 둬. 나한테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안달인 것 같으니.”
“…….”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침묵을 지켜내느라 입이 달싹거렸다. 카게야마는 끝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오이카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에 딸린 화장실로 향한다. 스위치를 누르자 빛에 스미듯 그 뒷모습이 사라졌다. 문이 닫힌 후 카게야마도 다시 침대에 누웠으나, 곧이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물줄기 소리에 쉽게 눈이 감기지 않는다. 억지로 눈을 감아도 정신은 더욱 선명해지기만 했다. 몸은 이렇게나 무거운데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쿠니미와 오이카와의 관계 외에도 신경쓰이는 것 하나. 히라츠카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라면, 오이카와가 자신을 다시 거둔 이유는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섞여 엉망진창이다. 제멋대로 터져 나오는 한숨을 속으로 삼키며, 카게야마는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카게오이 + 쿠니오이 + 기타 오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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