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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오이] 야행(夜行) 7

네임버스 / 느와르 AU. 쿠니오이 요소 있음.

이제 연애하라고 말하기에도 지친다...


두고보면 연애하겠지 뭐 너네 연애하라고 쓰는 글이니까... (터덜터덜





“여기, 정식 일 인분이 얼마랬더라?”
“오만 엔입니다.”
“우와, 대단하네. 힘 좀 썼잖아.”

오이카와의 말끝에 적잖은 빈정거림이 묻어난다. 쿠니미는 매끄럽게 주차를 마치고 오이카와가 앉은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햇빛이 강하지도 않은데 굳이 손 그늘을 만들고 건물을 올려보는 오이카와의 표정이 영 못마땅했다. 어느 자리에 임하든 여유를 잃지 않는 오이카와 치고는 꽤 거창한 워밍업이다. 요릿집 정문에 위압적인 덩치의 사내 둘이 서 있었다. 마네키네코야? 오이카와의 중얼거림을, 쿠니미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듣는다. 오이카와의 뒤를 따라온 차 안에서 세 명의 사내가 더 내렸다. 자존심 상 이 정도 쪽수는 맞춰줘야 했다.

괜히 넥타이 매듭을 한 번 고쳐 매고, 쿠니미는 요릿집 문으로 들어섰다. 후리소데를 곱게 차려입은 여주인이 더없이 상냥한 미소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고급 인테리어도 이 정도면 악취미지. 쿠니미는 속으로 쓴웃음을 짓는다. 고개를 들어 까마득한 천장을 보았을 때에는 하마터면 혀를 찰 뻔했다. 주위를 둘러보는 쿠니미의 미묘한 표정을 분명 보았을 텐데, 그 미소에는 한 치의 동요도 찾아볼 수 없다. 보랏빛 후리소데 자락을 기품 있게 누르며 여주인은 앞서 걷기 시작한다. 한 치의 빈틈없이 쪽쪄 올린 머리카락 위에 흰 동백꽃이 내려앉아 있었다. 오이카와와 쿠니미도 말없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건물 구조가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복도 오른쪽의 통창 너머로 카레산스이(枯山水)가 보였다.

날짜와 장소를 일방적으로 정한, 통보와도 같은 회동 요청이 날아온 게 어제였다. 와, 정말 보스 같은 짓 하네. 라고 기가 차다는 듯 중얼거린 오이카와에게 ‘정말 보스니까요.’ 라고 쿠니미가 대답했다. 오이카와의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이었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팩스 용지를 한 손에 쥔 채, 오이카와는 다른 쪽 손끝으로 테이블 위를 두드린다. 오랜만에 보이는 습관이었다. 요지는 비서 한 명씩만을 대동하고 만나서 향후에 대해 상의하자는 내용이었지만, 결코 그것뿐일 리가 없다. 요컨대 이것은 일종의 의식이었다. 윗대가리가 갈려나가고 새로운 세력이 주도를 잡았다는 선포. 노유키의 선양에는 요유키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쿠니미는 일단 확인부터 끝내기로 했다.

‘어떻게 할까요?’
‘어떡하긴.’

오이카와의 왼손에 들려있던 팩스용지가 팔랑, 테이블 위로 내려앉았다. 이 회동을 거절하는 건 곧 선전포고다. 성급하게 거절해서 전쟁을 벌이는 건 요유키 쪽에도 막심한 손해를 가져다줄 것이 분명했다. 앞일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노유키의 ‘덩치’는 한 번 봐 둘 필요가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오이카와는 익숙한 격언을 속으로 곱씹었다. 백 보를 위해 일 보 후퇴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스케줄 잡아두겠습니다.’

표정만으로 대충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감이 온다. 쿠니미의 침착한 한 마디에 오이카와가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부딪힐 것이라면 망설이지 않는다는 게 오이카와의 스탠스다. 다만, 쿠니미는 약속 시각을 제시된 것보다 한 시간 정도 뒤로 미뤘다. 모든 조건에 순순히 맞춰줄 수는 없었다. 요유키(夜行)와 노유키(野行)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이미 분리한 지 십 년이 다 되어 간다고는 하지만, 노유키가 요유키에서 떨어져 나온 조직이라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여주인의 등이 갑자기 멈춰 섰다.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당도하셨습니다, 하고 말하자 안쪽에서 소리없이 문이 열린다. 오이카와는 망설임 없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오이카와를 초대한 사람들은 이미 자리에 앉은 채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



“뭐 하냐, 추운데.”
“마츠카와 씨.”
“이렇게 싸돌아다니다 오이카와한테 혼난다.”
“옥상은 괜찮지 않을까요. 누가 보는 것도 아니고.”
“모르지, 스나이퍼가 탄 헬리콥터가 날고 있을지.”

마츠카와의 무심한 한 마디에 흠칫 놀라 카게야마는 하늘을 바라본다. 물론, 헬리콥터 같은 게 날고 있을 리 없다. 푸른 하늘에 활강하던 까마귀 한 마리가 카게야마를 비웃듯 까악, 하고 한 번 울고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때야 뭔가 속은 느낌에 마츠카와를 바라보니 정작 범인은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다. 카게야마의 시선을 알아차린 마츠카와가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춰왔다.

“한 대 줄까?”
“네.”
“담배는 언제 배웠어?”
“어……. 배우기는 노유키로 간 다음인데, 잘 안 피워요.”
“왜?”

마츠카와가 제 재킷 안주머니를 뒤져 담뱃갑을 꺼냈다. 받아 들어보니 라이터까지 들어있는 모양인지 꽤 묵직하다. 카게야마는 라이터를 먼저 꺼내고 한 개비를 툭 띄워냈다. 별로 안 피운다는 말과는 달리, 담배를 입에 문 채 불을 붙이는 몸짓이 꽤 능숙했다. 도로 라이터를 넣은 담뱃갑을 건네며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7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짧지만은 않았다고, 뜬금없는 생각을 하다가 뒤늦게 제가 옥상으로 올라온 이유를 떠올리고서는 마츠카와도 담배를 피워 문다.

“피울 일이 별로 없으니까요. 머리가 복잡할 때만 가끔.”
“호오, 그러니까 지금은 머리가 복잡하다는 뜻?”
“마츠카와 씨, 예리하시네요.”
“음…….”

예리하다기보다, 네가 방금 그렇게 말했잖냐. 혀끝에 매달린 대답을 애써 밀어 넣고 마츠카와는 그저 담배 연기를 내뱉는다. 못 본 세월 동안 꽤 자란 카게야마를 예전의 소년과 겹쳐 보는 데에는 어느 정도 노력이 필요했다. 키야 그 나이에 크지 않는 게 이상한 것이다. 키보다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랬다. 얼굴이 확 바뀐 건 아닌데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조금 더 날카로워진 얼굴선과 서늘해진 눈빛, 그러면서도 여유가 더해진 표정. 종종 카게야마를 ‘강아지’에 비유하던 오이카와를 떠올리고, 말도 안 된다며 마츠카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눈빛이 어떻게 강아지의 눈빛이냐고. 호랑이라면 모를까.

“오이카와랑 비슷하네.”
“네?”
“오이카와도 머리가 복잡할 때만 피우거든.”
“오이카와 씨는……. 그냥 항상 피우시지 않나요.”
“그러니까 그만큼 머리가 복잡하다는 거야.”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카게야마가 마츠카와를 빤히 바라본다. 이런 얼굴은 또 옛날 그대로다.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으며, 마츠카와는 허공으로 시선을 던진다.

“오이카와라 해서 항상 여유롭게 모든 걸 척척 해치우는 건 아니야.”
“네에…….”

카게야마는 분명 무슨 말인지 실감하지 못한 채로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다. 석연치 않은 얼굴이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대체 카게야마 안의 오이카와는 어떤 사람인 걸까. 마츠카와는 아주 조금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카게야마를 주워온 게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였다. 당시 마츠카와는 출장 비슷한 것으로 외국에 나가 있던 터라 하나마키의 국제전화로 전해 듣기만 했다.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가 나갔다가 웬 애들을 두 명 주워왔는데, 아무래도 둘 다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그 어조가 꽤 들떠있었던 기억뿐이다.

“뭐, 녀석도 나름대로 힘든 게 있지. 이런 큰 조직을 끌고 가려면 특히 더 그럴 거고. 두통거리가 한두 개가 아닐걸.”
“그렇겠죠.”

너무 오이카와라는 사람을 잘 아는 것처럼 말했나. 아차 싶었지만 카게야마는 별로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오이카와의 몸은 잘 알지만, 굳이 카게야마에게 이런 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겠지. 마츠카와는 옥상 벤치 아래 재떨이 대용으로 두는 캔을 꺼내 두 사람 사이에 놓았다.

“넌 왜 복잡한데?”

사실 이유를 대충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물어보는 건 별다른 이유 때문은 아니다. 무언가의 이유로 머리가 복잡할 때는 두서없이 풀어서 말해보는 게 의외로 생각 정리에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려고 생각하다 보면 억지로나마 사고에 체계가 생기기도 한다. 카게야마는 어린 미간에 주름을 잔뜩 잡은 채 몸을 조금 뒤로 젖혔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궁금한 건 있어요.”
“응.”
“오이카와 씨는 절 왜 거둔 걸까요.”

그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마츠카와가 예상하던 대답이 아니었다. 앞으로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유키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따위의 대답을 생각했는데. 이런 걸 생각하느라 머리가 복잡하다는 거였어? 마츠카와는 잠깐 눈을 굴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반문했다.

“처음? 아니면, 이번?”
“……이번이요. 저는 히라츠카 씨에 대한 미안함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본인한테 물어보니 또 그건 아니라 하시고.”
“그걸 직접 물어봤어?”
“네.”
“그런데 아니라고 해? 다른 말은?”
“대답을 듣고 싶으면 침대로 돌아가서, 회복하라고.”
“그게 다야?”
“네.”

허……. 마츠카와는 새 담배를 꺼내려던 손길을 멈춘 채, 카게야마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둔한 건지, 순진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서 사람 마음 읽는 데에는 영 젬병인 모양이다. 어쩌면 오이카와에게만 약한 것일 수도 있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에는 한숨이 날 뻔했다.  

“오이카와한테 너는 정말 ‘강아지’가 맞나 보네.”
“네?”
“나는 오이카와가 아니지만, 널 다시 거둔 이유는 하나겠지.”
“?”
“네가 죽지 않았으면 하는 거잖아. 그거 말고 뭐가 있겠어.”
“…….”

현실은 결론만큼 간결하지 못하다. 카게야마가 죽지 않도록 하는 건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감당해야 할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쿠니미의 보고에 의하면 카게야마는 요유키의 스파이로 간주되고 있다고 했다. 요유키에서 난리 통에 그 ‘스파이’를 회수하여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노유키 쪽에서 가만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오늘, 오이카와는 노유키의 새 보스를 만나러 갔다. 카게야마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츠카와는 제가 피우는 담배 연기보다도 쓰게 웃었다.

‘이럴 거면 애초에 카게야마를 노유키로 보내지 말았어야지.’

오이카와를 향한 질책은 갈 곳 없이 허공에 부서진다. 오 년 전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노유키로 보내겠다는 결정을 했을 때, 마츠카와는 의사 결정자인 오이카와보다도 그 옆에 있던 이와이즈미의 표정을 먼저 살폈다. 마츠카와가 봐 온 두 사람 중 표정이 그나마 솔직한 것은 오히려 이와이즈미였다. 표정이 다양한 건 단연 오이카와 쪽이지만, 표정으로 진짜 감정이 드러나는 건 이와이즈미 쪽이다. 조직원 모두가 그 차이를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래도 마츠카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 때 이와이즈미의 표정은 미묘했다. 불만이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만족스러운 얼굴도 아니다. 이와이즈미가 저렇게 모호한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하는 게 그 순간 마츠카와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제가 죽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퉁명스러운 목소리는 분명 천성이기도 하지만, 답지 않은 말을 내뱉는 카게야마에 대한 질책이기도 했다. 오이카와가 이 말을 들으면 길길이 날뛰지 않을까. 오이카와의 표정을 상상하고 작게 몸서리를 친 마츠카와를 아는지 모르는지, 카게야마는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아예 칠 년 전 그날, 절 안 주워오셨으면 이럴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뭐, 오이카와가 널 노유키로 안 보냈어도 이런 일은 없었겠지.”
“…….”
“어쨌든 오이카와는 네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거잖아.”
“그렇게 말씀하시진 않았는데요.”
“말 안 하면 몰라?”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알아요.”
“……정론이긴 하지만, 제가 살린 목숨이 죽길 바라는 녀석은 없어. 오이카와라면 더더욱 안 그럴 거야.”
“그럼 왜 좀 더 상냥하게 대해주시지 않을까요?”
“상냥? 오이카와가 너한테 쌀쌀맞다는 거야?”
“네에.”

담배를 캔에 지져 끄는 카게야마의 옆모습이 조금 소년 같아서, 마츠카와는 두 눈을 깜빡였다. 심술이 난 제 자신이 부끄럽기라도 한지, 입매가 꼭 다물려 있었다. 그저께까지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던 녀석이 ‘오이카와가 왜 저를 상냥하게 대하지 않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도 그리 실감은 나지 않는 상황이다. 마츠카와가 볼 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 딱히 쌀쌀맞게 굴지는 않았다. 애초에 카게야마가 요유키 앞에 쓰러져있을 때 오이카와가 보인 반응은, 쌀쌀맞음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는데.

‘뭐, 카게야마는 그 꼴을 못 봤을 테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유사시에 그리도 냉철한 녀석이, 제대로 된 지시 하나 내리지 못하고 멍하니 굳어있었다. 의사에게 연락하는 것마저 쿠니미의 지시사항이었다. 보통 때라면 정반대일 일이다. 피나 상흔을 보고 놀란 건 아니다. 이 생활 일이 년 해 먹은 것도 아니고, 제 몸에서 나는 피도 보는 녀석이 남의 몸에서 흘린 피를 보고 그렇게 창백하게 질릴 리는 없다. 끊임없이 테이블을 두드리던 오이카와의 손끝이 평소보다 하얬다. 박자는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져있다. 새벽 탓에 평소보다 몽롱한 마츠카와의 머리로도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카게야마가 쓰러져 있었기 때문에, 오이카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쓰러져 있던 사람이 카게야마였기 때문에’.

“네가 보기에 오이카와가 상냥하게 구는 사람은 누군데?”
“어……. 이와이즈미 씨나, 하나마키 씨나, 마츠카와 씨도 그렇고요. 그리고…….”
“그리고?”
“쿠니미, 라든가.”

마츠카와는 속으로 휘파람을 불 뻔했다. ‘너, 쿠니미 이름 말할 때 표정이 어땠는지 알아?’ 하고 물어보면 카게야마는 뭐라고 대답할까. 문득 카게야마가 입고 있는 니트 카디건에 눈길이 미쳤다. 오이카와의 옷이다. 이번 가을 신상인데 아이보리 컬러가 정말 마음에 든다며, 신 나게 옷장에 걸어놓고는 결국 올가을 두 번은 꺼내 입었을까. 직업상 니트 카디건을 입을 일이 원체 없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오이카와가 아끼는 옷이다. 그 안에 받쳐 입은 검은색 티셔츠도 오이카와 것이고.

“오이카와가 너보다 쿠니미를 더 상냥하게 대해서 삐친 거야?”
“그런 게 아니고요!”

얼굴이 빨갛게 불타오르는 건지, 새하얗게 식은 건지 오히려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카게야마는 정말 펄쩍 뛰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건 굳이 마츠카와가 지적하지 않아도 당연한 말이다.

“그……. 둘은 뭔가 특별해 보여서.”
“특별해 보인다고?”
“그냥 제 느낌이에요.”

뭔가 덧붙일 말이 분명 있을 텐데, 카게야마는 입을 다물어버린다. 마츠카와는 제 턱을 쓰다듬었다. 오이카와가 제게 쌀쌀맞다는 ‘오해’를 하고 있는 녀석이, 오이카와와 쿠니미 사이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는 건 분명 두 사실 간에 뭔가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사실 남의 관계사에 이렇게 고개를 디미는 것도 그리 즐기는 일은 아니지만, 카게야마의 이런 표정 버라이어티 쇼를 보는 건 꽤 재밌다. 어쩌면 오이카와는 기가 막힌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마츠카와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 밑에서 울 때가 세월 좋았지, 오이카와.’

이미 서로 미련 없이 끝낸 관계고, 지금은 다른 애인도 있지만. 카게야마에게 제가 오이카와랑 붙어먹은 세월이 꽤 된다는 걸 밝히면 또 어떤 표정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하지만 굳이 후배를 자극할 필요는 없다. 이미 쿠니미와 카게야마는 서로 자극하고 자극받는 사이인 것 같으니, 현역이 아닌 마츠카와까지 나서서 일을 더 복잡하게 꼬아댈 이유는 없는 것이다. 마츠카와는 대신 현실을 보여주기로 했다.

“그야 당연하지. 이제까지 오이카와 최측근으로 가장 오래 붙어있는 사람이 쿠니민데.”
“…….”
“너는 중간에 오 년이 비잖아. 쿠니미는 비는 기간 없이 계속 오이카와 옆에 있었으니.”
“그건……. 그렇죠.”

이렇게 쉽게 수긍하고 끝나는 일이었다면, 그런 고민은 왜 한 거야? 마츠카와는 할 말을 잃었다. 둘 중 누구에게도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오이카와와 ‘붙어먹은’ 전력이 있는 마츠카와는 본능적으로 안다. 그때 제 역할은 지금 쿠니미가 완수하고 있다는 것을. 하루 이틀 된 관계는 아니니, 오이카와도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카게야마가 노유키로 내쫓기지 않았다면 지금 쿠니미의 위치는 카게야마의 것이 아니었을까. 요컨대 카게야마가 노유키로 가게 된 것은 쿠니미에게는 천운이라는 뜻이다. 오이카와와의 관계 면으로도, 조직 내의 위치 면으로도. 지금 카게야마가 요유키로 돌아오고 오이카와가 그에 동요하고 있는 이상, 가장 입지에 위협을 받는 건 당연히 쿠니미 쪽이다.

‘걱정할 건 네가 아니라 쿠니미 쪽일 텐데.’

역시 이 말은 할 수 없었다. 카게야마가 이렇게 동요하고 있는데,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계속 오이카와 옆에 붙어있는 쿠니미도 참 난 놈이다. 그리고 이렇게나 오이카와를 동요시키는 카게야마도. 쿠니미 하나로도 벅찼을 텐데 카게야마까지 돌아오다니. 앞으로 펼쳐질 오이카와의 수난시대가 눈에 훤했다. 마츠카와는 저도 모르게 씩 웃으며 세 번째 담배를 입에 물었다.


*



“오이카와 씨도 이제 나이가 나인가 봐. 쿠니미쨩, 방금 야마키치가 뭐라고 한 거지?”
“카게야마를 돌려놓으라고 하는데요.”

아무렇지 않게 일본차가 든 찻잔을 입으로 옮기고 있지만, 오이카와의 입꼬리가 눈에 띄게 굳었다. 차 한 모금도 입에 담지 않은 채 도로 찻잔을 내려놓는다.

“초면에 이렇게 무례한 요구를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저희는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배신자는 이쪽에서 처단하는 게 맞는 거죠.”
“배신자?”

쿠니미는 무심코 등줄기를 쭉 폈다. 오이카와의 말끝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말뿐 아니라 표정까지. 지금 임계점 턱밑에 미쳐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마다는 느물거리는 웃음을 숨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제껏 느끼지 못한 초조함에 쿠니미는 몰래 어금니를 악문다. 이제껏 오이카와의 협상 패턴에서 전혀 보지 못한 오이카와가 눈앞에 있었다.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오이카와의 이런 표정을 보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대체 어쩌시려고.’

이야기가 순탄하게 진행될 리 없다는 것 정도는 각오하고 왔다. 그러나 적어도, 요유키에서도 카게야마의 행방을 모르겠다는 시치미 정도는 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현재 요유키에서 카게야마를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셈이다. 쿠니미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식탁 밑으로 오이카와의 옷소매를 부여잡았다. 오이카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반응을 기대하고 한 짓은 아니다. 그저, 완급조절을 바랄 뿐이었다. 소매를 두어 번 잡아당긴 후에 놓았다. 그러나 쿠니미의 바람과 달리 보스의 입은 멈추지 않는다.

“십 년 동안 모신 보스를 쳐내고 권력을 쥔 네가 할 말인가?”
“…….”

찻잔을 쥔 오이카와의 손끝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카게야마보다는 히라츠카에게 포인트를 둔 말이지만, 요는 카게야마를 내어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 협상도 결렬이다. 속으로 한숨이라도 쉬고 싶었지만, 꼭 막혀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다짜고짜 카게야마를 내어놓으라는 야마다의 무례한 말에 오이카와의 끈이 끊겨버린 것까지는 알겠는데, 이렇게 되면 속이 타는 건 수행원 자격으로 옆에 앉은 터라 끼어들 수 없는 쿠니미다. 이제 모든 건 오이카와의 혀끝에 달렸다.

“우리 강아지는 길거리에 피투성이로 쓰러져있는 걸 옛정을 생각해 내가 주워온 거야. 회복시킨 후에 구워먹든 삶아 먹든 그건 내가 정해.”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나면 좋겠군요.”
“더 솔직히 말하자면, 너희는 멍청한 짓을 했어.”
“오이카와 씨……!”

앞뒤 없이 오이카와의 이름을 외쳤을 때 오이카와의 서늘한 시선이 쿠니미에 와 닿았다. 아주 짧은 시선이었지만, 허락 없이 끼어든 것을 사정없이 문책하고 있다. 쿠니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주 조금 띄웠던 몸도 다시 방석 위로 가라앉았다. 시선의 파편이 쓰라렸다.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던 눈빛에 뒤통수가 뜨거웠다.

“좋은 마음으로 일급 망아지를 넘겨줬으면 준마 정도로는 키워서 써먹었어야지.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게 무서워서 도살하려 해? 그러다 옛 주인 손으로 넘겼다니, 멍청한 짓도 정도가 있어. 내 부하들이 너희 같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야.”
“…….”

쿠니미는 제 옷깃을 말아쥐었다. 손바닥에 끈끈한 식은땀이 배어난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 오이카와의 옆얼굴이 산뜻했다. 야마다와 동석자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으나 별다른 말을 더하지는 않았다. 물론 아무리 오이카와가 천방지축으로 협상을 휘젓는다 해도 노유키 쪽에서 함부로 액션을 취할 수는 없다. 그게 현재 요유키와 노유키의 위치 차이였다. 오이카와도 충분한 계산을 거쳐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필요 이상의 도발을 한 건 확실했다. 미리 말을 맞춰놓지 않아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쿠니미는 생각했다. 맞춰놨는데도 이렇게 말하는 걸 옆에서 들을 때의 상실감과 비교할 필요가 없으니.

“자, 볼일은 끝? 오이카와 씨는 바빠서 이만 일어나봐야 하는데.”
“다음에 또 뵙죠.”
“맛있는 것들이 많이 남았네. 다음에 마저 먹자고.”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야. 오이카와는 뒷말을 삼킨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깥쪽에서 문이 스르르 열린다. 쿠니미도 천천히 일어나 그 뒤를 따랐다.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지만, 배가 고픈 걸 느낄 새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오이카와는 담배도 한 대 피우지 않았다. 여전히 변함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든 여주인이 출구로 안내한다. 오이카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 발자국 뒤를 따르는 쿠니미도 마찬가지였다. 만난 이래로 가장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에 흘렀다.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 명의 수행원을 거두어 다시 두 대의 차에 나누어 탄 후에야 오이카와가 제 넥타이를 끄르며 한숨을 내뱉는다.

“후우.”
“…….”

쿠니미는 말없이 핸들을 쥔 손에 힘을 넣었다. 오이카와가 먼저 입을 열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심산이다. 항의의 의미 같은 것은 아니었다.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뿐이다.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은 탓도 있었다.

“쿠니미쨩.”
“네.”
“아깐 미안해.”
“…….”

따지고 보면 쿠니미의 잘못이 맞았다. 아무리 보스가 수습할 수 없는 말을 내뱉는다 해도 한낱 수행원인 쿠니미가 거기서 ‘오이카와 씨’라고 부르며 제지하는 건 이상했다. 물론, 오이카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폭탄 급인 상황에서 쿠니미가 침묵을 지킨다는 게 더 이상하기는 했지만. 쿠니미도 보스의 사과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정도의 위인은 아니었다. 신호등의 붉은빛이 선명해, 쿠니미는 차를 멈췄다. 오이카와가 담배를 피워 무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잘못한 건데요, 뭐. 죄송합니다.”
“하하. 역시 자기반성이 빠르네.”
“오이카와 씨.”
“응.”
“……왜 그러셨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흐음.”

오이카와는 제 무릎을 두드린다.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후우, 하는 소리는 담배 연기를 내뱉는 소리였지만, 아까의 한숨과도 닮아있었다. 쿠니미는 속으로만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대답 안 해주셔도 돼요.”
“쿠니미쨩.”
“네.”
“쿠니미쨩은 토비오를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라니.”

쿠니미는 어깨를 으쓱한다. 오이카와의 질문의 요지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봐왔잖아.”
“확실히 그렇기는 했지만요. 뭐랄까……. 무모한 면이 있죠.”
“그건 모두에게 있지 않나?”
“새벽에 보육원 창문으로 빠져나가려는 무식하고도 무모한 면이 있다는 뜻이에요.”
“토비오쨩이?”
“네. 그러다 저한테 들켰고요. 천만다행이죠. 원장한테 들켰다면 아마 한 달은 독방 감이었을 거예요.”

이제껏 오이카와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던 과거 얘기다. 쿠니미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창문에 매달린 녀석을 제가 끌어내렸을 때, 아마 당황한 표정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전 카게야마가 어떤지 생각해본 적도 없고, 생각해도 알 수는 없을 거예요.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흐음.”
“오이카와 씨.”
“응?”
“카게야마가 신경 쓰이는 거죠.”

뒷좌석에서는 말이 없다. 핸들을 쥔 제 손끝이 희게 질리고 있는 것을 보며, 쿠니미는 속으로 혀를 찬다. 동요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등 뒤로 느껴지는 동요에 동요해서는 안 된다. 오이카와의 흰 어깨에 새겨져 있던 까만 글씨는, 눈을 감고서도 그려낼 수 있다. 오이카와가 그 ‘네임’을 알아차렸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러나 유독 카게야마와 관련된 주제에 이렇게 반응하는 건 그 이름의 탓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름의 발현 순간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 사실을 이야기해줄 의무가 있다고 한다면…….

“으악! 쿠니미쨩!”
“아, 죄송합니다.”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는 걸 뒤늦게야 보고, 쿠니미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안전띠를 맨 상체가 앞으로 확 쏠렸다가 반동으로 등받이에 세게 부딪힌다. 얼얼해 오는 등은 둘째치고, 뒤에서 들려온 새된 비명에 쿠니미는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본다. 오이카와가 뒤통수를 감싸 쥔 채 쿠니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 끝에 담배가 위태롭게 물려있다.

“쿠니미쨩 답지 않은 운전이잖아.”
“죄송합니다. 신호를 늦게 봐서.”
“보행자라도 있으면 어쩔 뻔했어.”

아직 제 뒤통수를 누르면서도 오이카와는 평소의 말투를 되찾았다. 쿠니미는 다시 전방을 주시한다.

“그건 그렇고, 토비오를 신경 쓰고 있느냐는 질문엔 그렇다고밖에 얘기할 수가 없네.”
“역시 그렇죠.”
“역시? 쿠니미쨩, 뭔가 알고 있어?”
“…….”

쿠니미는 제 입술을 축였다. 이야기해주려면 지금뿐이다. 아니면 영영 모른 척, 몰랐던 척해야 한다. 오이카와가 상체를 쑥 내밀었다. 비스듬히 제 옆얼굴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종류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치솟는다. 어떤 종류의 심술인지도 모른다. 쿠니미는 떨어지지 않으려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아뇨, 그런 건.”
“헤에.”
“오이카와 씨 태도가 평소와 다르니까요. 모를 수가 없죠.”

알고 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평이한 어조로 덧붙이며 쿠니미는 다시 차를 발진시켰다. 오이카와는 이미 흥미를 잃은 듯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원하던 대답이 나오지 않아 퍽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쿠니미는 왼손을 뻗어 낮게 클래식 음악을 틀었다. 부드러운 피아노 소리가 차 안을 메우기 시작했으나, 둘 중 누구도 주의 깊게 듣지는 않았다.

항상 오이카와의 옆에 있고, 오이카와를 만지고, 오이카와를 대하는 건 자신인데도 오이카와의 몸에는 카게야마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물론, 그 이름이 뜻하는 것이 항상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래도……. 어쩌면 자신은 카게야마를 부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이카와를 이만큼 동요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쿠니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제가 느낀 감정은 심술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패배감이었다.


카게오이 + 쿠니오이 + 기타 오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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