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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니오이] 부질없는 시작점


근 5개월 만에 첫 연성이 쿠니오이라니...ㅋ ㅋ ㅋ ㅋㅋㅋㅋㅋㅋㅋ

휴키님이 준 '짝사랑', 담님이 준 '등번호 1번'의 키워드로 써제낀 쿠니오이다...

미인공미인수조아요... 예쁜애들끼리 연애해라...

네이버 블로그가 편하긴 한데 앱으로 볼 때 가독성이 너무 안좋아서 포스타입 시범 운영을 결단했다.


쿠니오이라고 달아놨는데, 쿠니>>오이.. 내 취향이 너무 듬뿍 담긴데다가 

뒤로 갈수록 졸려서 텐션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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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싫다. 한여름의 연습도 싫다. 한여름의 오후 연습은 더더욱 싫다. 


나는 자타공인 게으름뱅이다. 조금 좋게 말하면 ‘효율’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한여름의 연습이라니,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는 짓이다. 체력에도 기분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데, 거기에 기운까지 빠진다니 대체 이점을 찾을 수가 없다. 아무리 체육관 안에서 한다 해도 내내 에어컨을 틀어놓을 수도 없을뿐더러, 햇빛으로부터 숨기만 해서는 전혀 시원해지지 않는다.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젖혀 놓아도 바람은 제대로 드나들지 못하니까. 


성대한 자기 합리화의 끝에 결국 내가 자리 잡은 곳은 체육관 뒤편의 작은 언덕이었다. 새로운 포메이션으로 오이카와 선배와 야하바 선배가 대토론을 시작하는 모습을 곁눈질하며-남 이야기는 아니지만 역시 끼어들고 싶지는 않다- 대놓고 체육관을 빠져나와도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부원들에게는 그게 암묵적인 휴식 시간이었다. 나만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마츠카와 선배도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유유히 체육관 밖으로 나가는 걸 봤으니 아마 그렇진 않을 것이다.


수풀을 스치는 바람에도 희미한 한여름의 열기가 묻어 있었다. 유니폼을 흥건히 적시고 있던 땀은 미적지근한 바람에도 쉽게 말랐다. 등으로 느껴지는 나무껍질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이보다 안락한 장소를 찾기에도 귀찮아져 그저 나무줄기에 등을 기댄다. 언덕에 큰 나무가 많지는 않은데, 그중에서 제일 크고 잎이 무성한 나무다. 바로 아래에도 적당히 부드러운 풀이 깔려 있어 쉬기에는 최적의 장소. 십 분 정도만 앉아 있다가 가면 되지 않을까. 어디 갔다 왔느냐고 추궁당하면, 적당히 변비라고 둘러대야지. 아무도 뭐라고 못 할 테니까. 순식간에 보송보송해진 유니폼 자락을 손끝으로 만지작대다가 가만히 눈을 감는다. 눈을 감자마자 시큼달달한 풀냄새가 콧속으로 확 밀려들었다. 곧 나는 자연의 한쪽에 자리를 잡은 걸 후회하게 되었다. 


역시 여름은 싫다. 풀냄새라니 최악이야. 온몸에서 진동하는 땀 냄새도 짜증 난다. 한시라도 빨리 라커룸에서 땀에 전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 샤워를 한 후에, 새 옷으로 갈아입고 집에 가고 싶다. 집에서는 한 번 더 샤워하고 침대에 파묻혀야지. 에어컨을 켜고 이불을 덮는 건 여름의 작은 사치다. 그러고는 엄마가 저녁을 먹으라고 방문을 두드릴 때까지 자는 것까지가 완벽한 계획이다. 책가방 안에 남은 소금 캐러멜의 개수를 헤아리다가, 아무래도 다 먹은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르고는 하교 후의 시나리오에 슈퍼마켓도 추가했다. 오늘은 집에 들어가면 다시 나올 것 같지 않으니까.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다. 아침부터 느끼고 있었다. 날이 너무 더워서 퍼진 걸까. 상쾌하게 웃는 오이카와 선배의 얼굴에도 괜히 짜증이 났다. 저렇게 생글생글 웃고 있으면 에너지 소비가 엄청날 것 같다. 그 웃음은 아무리 봐도 백 퍼센트 자연산이 아닌 것 같아서 문제다. 사실은 나보다도 무표정을 ‘잘’ 짓는 사람인데, 그 본질을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어 내내 웃기를 선택한 사람의 느낌이다. 사람을 잘 파악한다든가, 오이카와 선배와 가깝게 지낸 것도 아닌데 나는 밑도 끝도 없이 그런 단정을 내리고 있었다. 일종의 오만일지도 모르지. 굳이 사서 신경 쓸 필요도 없는 문제인데 말이다. 


사실 그 미소는 꽤 보기 좋았다. 상냥하고, 다정하고, 내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날카롭다가도 어느 순간은 그 모서리를 둥글게 마모시켜 다가왔다. 중학교 일 학년 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그는 조금 더 날이 선 느낌이었는데. 어쩌면 기억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다시 만난 그 미소에 나는 약간 안도했던 것 같다. 변함없는 ‘쿠니미 쨩’이라는 호칭과, 내가 배구를 관두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이라도 한 마냥 당연하다는 환영 인사를 마주했을 때 내 표정은 어땠더라.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는 조금 더 능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고, 나는 아주 잠깐 중학생 시절의 쿠니미가 되어 있었다. 


“쨘, 땡땡이범 검거 완료.”


시원스러운 목소리가 목덜미에 와 닿았다. 아니, 와 닿은 건 서늘한 손가락이라는 걸 깨닫고 목소리의 주인까지 눈치채고서야 나는 서서히 눈을 떴다. 호랑이도, 아니 오이카와 선배도 제 말 하면 오는 건가. 


“어떻게 아셨어요?”
“쿠니미 쨩만 이런 비밀장소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이래 봬도 나는 삼 학년인걸.”


오이카와 선배는 대충 발로 땅을 쓱쓱 고르더니 내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나무줄기가 두 남고생의 등을 모두 받칠 만큼 넓지는 않았지만, 각자 반 정도씩 공유할 정도는 되었다. 나는 별다른 말 없이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와이즈미 선배에게 혼나지 않을까요?”
“괜찮아, 괜찮아.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려주고 왔으니까.”
“어, 저는요?”
“쿠니미 쨩은 땡땡이범이니까, 아쉽지만 더 착한 어린이가 되어서 오세요~”
“마츠카와 선배도 나가던데.”
“아, 맛층은 내 심부름으로 아이스크림 사러 나간 거였어.”
“그럼 저한테도 심부름시켜주세요.”
“이번 달 용돈은 다 털렸어. 다음 달을 노려봐.”


사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던 건 아니다. 이렇게 말해도 분명 내 몫의 아이스크림까지 있었을 것이다. 체육관에 냉장고가 있는 게 아니니, 남은 하이에나들이 해치웠겠지만 말이다. 


“저 찾으러 나오신 거예요?”
“길 잃은 어린양을 인도하는 건 주장의 몫이지.”
“같이 길을 잃으신 것 같은데요.”
“절대 그렇지 않아.”


오이카와 선배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뒤로 조금 더 젖힌다. 눈을 천천히 감는 동작이 마치 슬로우 모션 같았다. 나뭇잎 사이를 통과한 햇빛이, 그 흰 얼굴 위에 반투명한 초록빛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드문드문 불어오는 바람이 풍성한 갈색 머리카락을 스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이해가 가는 얼굴이다. 적당히 단정한 콧날이 비스듬한 각도를 그린다. 턱선에 채 마르지 않은 땀이 한 방울, 위태롭게 묻어 있었다. 그는 눈도 뜨지 않았지만, 괜히 뭔가를 잘못한 느낌에 나는 저 먼 하늘로 시선을 던진다. 


“이번 여름은 덥네.”
“……네.”
“하긴, 안 더우면 여름의 정취가 없지. 엇, 나 방금 로맨티스트 같지 않았어?”
“…….”


이럴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매뉴얼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딱히 뭔가 대답을 바라고 던진 말도 아닌 듯, 그는 다시 입을 다문다. 십 분 있다 들어가려고 했던 휴식 시간이 예상외의 인물 때문에 예상외로 길어지고 있다. 작열하는 태양도 이 나무 그늘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여름의 태양에 발각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그저 그의 옆자리를 메우고 있다. 바람의 온도가 미묘하게 달라진 건 기분 탓일까?


나는 왜 오늘따라, 그의 미소에 옅은 짜증을 느꼈을까.


“……오이카와 선배.”
“응?”
“많이 능숙해졌네요.”


툭, 내뱉은 말이 햇빛 자락을 쬐고 순식간에 말라붙는다. 그가 천천히 눈을 뜬다. 눈이 마주쳤다. 옅은 갈색의 동공이 나를 비스듬히, 그러나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쿠니미 쨩이 영리한 건 알고 있지만, 방금 그건 도발이라고 받아들여도 되는 거야?”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삼 년 전에 비해서 말이에요.”
“삼 년 전의 나를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지금의 나와의 차이를 느낄 거라고는 더더욱.”
“……그냥, 없던 말로 할게요. 잊으세요.”


말투에서 여유와, 약간의 물기가 사라졌다.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버렸다.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의 차이는 아무래도 의식적으로 쌓아온 것들로 만들어진 모양이다. 성장이 아니라, 성과다. 어디까지 자신을 설계하고 있는 걸까,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사람은. 


맑던 하늘에 구름 몇 조각이 나타났다. 맹렬하게 내리쬐던 햇볕이 구름 속으로 잠깐 얼굴을 숨긴 순간, 어깨에 무언가 무게감이 느껴졌다. 제아무리 나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턱과 목덜미에 스치는 누군가의 머리카락. 멈칫 굳은 어깨에, 그의 미소가 번지는 게 느껴졌다. 비현실적으로 긴 속눈썹이 가장 잘 보이는 각도로 그는 내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이게 아까의 맹랑한 발언에 대한 복수라면, 그는 무엇보다도 효과적인 방법을 골랐다. 그가 코트 위의 ‘쿠니미 아키라’를 얼마나 잘 분석하고 있는지 빤히 아는 주제에 나는 내 무덤을 팠다. 


“조금만 쉴게. 높이가 딱 편하네.”


내 어깨에 한쪽 뺨이 잔뜩 눌린 상태에서도 발음은 꽤 정확하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젖혀 위를 올려본다. 한쪽 무릎은 펴고, 다른 쪽 무릎은 굽혀 세운 채 가지런히 깍지를 낀 손으로 감싼 자세는 더없이 편해 보인다. 그의 오른팔과 내 왼팔, 그의 오른뺨과 내 왼쪽 어깨 사이에는 아주 약간의 틈도 없었다. 이제껏 이렇게 가까이 있었던 적이 없었기에, 나는 꽤 당황하고 있었다. 


“제가 싫다고 하면, 일어나실 거예요?”
“오이카와 씨는 언제나 부원의 선택을 존중해. 알잖아.”
“…….”


그냥 그대로 조금만 더 계세요, 하는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가 고개를 들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어깨의 높이를 조금 조정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가 살짝 웃는 것이 느껴졌다.


“새로운 포메이션 때문에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것 같아. 너무 무거워.”
“쉬엄쉬엄 하세요.”
“쿠니미 쨩이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설득력 있네.”
“효율 높고, 연비 좋게 뛰라고 한 건 오이카와 선배잖아요.”
“응용력까지 좋을 줄은 몰랐어.”
“절 과소평가하고 계셨던 모양이네요.”
“아무래도 새끼 호랑이를 키우고 있었던 모양이야.”


내 말끝을 똑같이 따라 하며 그는 뭐가 재밌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키득댄다. 가끔 이 사람의 개그 코드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진지했는데.


“어깨를 빌려준 대가로 쿠니미 쨩에게 뭔가를 주고 싶은데, 갖고 싶은 거 있어?”
“얘기하면 주시는 거예요?”
“내 능력 안에서는. 이번 달 용돈은 이미 끝났다는 걸 유념해두고.”
“그러면…….”


그는 말없이 대답을 재촉한다. 나는 잠깐 생각했다. 


“받고 싶은 게 있어요.”
“응, 뭔데?”
“……1번이요.”
“응?”
“등번호, 1번이요.”


아까보다 더한 폭소가 터질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마치 자는 것처럼 미동도 없이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더없이 진지했다.


“그게 왜 갖고 싶은데?”
“그냥, 가지고 싶어요. 안 어울리나?” 


어깨를 으쓱하고 싶었지만, 그 위에 얹힌 무게감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애석하게도 그건 오이카와 씨가 줄 수 있는 게 아니네.”
“역시 그렇죠?”
“알면서도 물어본 거야?”
“왜냐면, 제가 그 번호를 받을 땐 이미 오이카와 선배는 이 학교 사람이 아닌걸요.”
“앗, 매정해.”
“그게 그렇잖아요.”
“그렇긴 하지. 대신, 등번호 1번을 달기 위해서 뭘 해야 하는지는 전수해줄 수 있는데.”
“……그건 됐어요.”
“엥?”
“그건 제가 앞으로 알아내 가면 되는 거니까요. 직접 주시는 게 아니면 의미가 없어요.”
“쿠니미 쨩, 앞뒤 자르면 되게 프러포즈 대사 같은 거 알아?”
“착각하시면 안 돼요.”
“정말, 못 이기겠다니까.”


그가 작게 좌우로 고개를 흔들자 머리카락 끝에 맺혀있던 풀 냄새와 햇빛 냄새가 났다. 짐짓 유쾌한 말투인 걸 보아하니, 그는 이 대화가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즐겁게 해 주려고 한 말은 아니고 완전한 농담도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됐다. 


“슬슬 갈까? 다들 주장과 차차기 주장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오이카와 선배는 몰라도, 저는 기다리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요.”
“섭섭한 소리 말고.”
“왜 오이카와 선배가 서운해해요.”
“팀 내 왕따는 싫어~”


태양의 기세는 적이 죽어 있었고 바람은 조금 더 미지근해졌다. 연습 중의 땀과 열이 식은 몸은 의도치 않게 약간 떨렸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 체육관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휴식 시간은 십 분은커녕, 삼십 분을 훌쩍 넘겼다. 어느새 그는 일어선 채 내게 손을 내밀고 있다. 내내 내 옆에 앉아 있어서 그의 키를 실감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보니 정말 크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도 그보다 이 센티 정도 작을 뿐이지만. 못 이기는 척,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선다. 뜻밖에 따뜻한 손의 감촉은 싫지 않았다. 생각보다 고분고분하게 일어섰다는 듯 그는 씩 웃었다. 그 미소를 눈에 담는 순간, 나 자신에게도 신랄한 나는 눈치채버렸다. 이것은 짝사랑의 고요하면서도 부질없는 시작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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