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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오이] 늦은 생일 축하와 거짓말 하나

2016년 12월 22일, 카게야마 토비오 생일 축하용으로 썼던 글인...것...같은데...

왜이렇게 짧지? ㅋㅋㅋㅋ

 

 

 

때때로 눈을 감으면 눈꺼풀 안에서 당신의 옷자락이 펄럭이곤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그 옷자락을 잡으려 했지만, 결코 잡힐 리 없다는 것은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결국 손을 내밀고 마는  것은 일말의 아쉬움인지, 미련인지 아무튼 그런 종류의 감정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신과의 소식이 끊긴 지 십 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나는 눈을 감으면 고등학생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중학생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당신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깨달았던 그때, 나는 더는  숨을 쉴 수 없었다. 항상 위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마음과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당시의 나는 향상심과 호승지심이라는 말을 알지 못했으므로-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당신의 앞에서는 어설프게 날이 선 적의로 드러났을까. 지금 떠올려보면 그런 날 바라보는 당신의 눈은 의외로 따뜻했다. 그  어설픔에 대한 동정-혹은 연민?- 때문인지 몰라도.

 

당신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것은 대부분 코트 위였으므로,  나는 그때마다 왼쪽 가슴에 번지는 미열을 경기 중의 긴장감으로 생각했다. 아마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겠지만, 그 미열에는 약간 다른 의미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먼 훗날에서야 할 수 있었다. 당신은 언제나 가장 무서운 선배였고, 뛰어넘어야 할 벽이었으며, 마음속으로 경외해 마지않는  사람이었다. 나의 기준, 나의 잣대, 그리고 나의 교과서. 당신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목표는 거꾸로 내가 그러지 못할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설정된 것이었다. 

 

눈이 왔던가? 어쩌면 진눈깨비였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당신이  걸치고 있던 짙은 갈색 코트의 어깨 부분이 천천히 짙게 물들고 있었다는 것은 기억난다. 나는 카라스노 배구부에서 준비한 생일 케이크 상자와  우스꽝스러운 고깔모자를 든 채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짙은 감색 하늘 아래 힘없는 계절은 흰색 부스러기를 잔뜩 뿌려댔다. 케이크 상자 위로  녹아내린 물방울을 가끔 털어내며 나는 집을 향해 걸었다. 손에 들린 이 상자만 없었다면 우산이라도 쓰고 갈 수 있었을 텐데. 소소한 투덜거림을  속으로만 중얼거리던 순간 누군가와 부딪혔다. 어두운데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걷던 탓이다. 그리 세게 부딪힌 건 아니었지만, 반사적으로 케이크  상자를 살피고는 고개를 드니 낯익은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오이카와 씨?”
“토비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얼마 전에 종강했어.”
“아.”

 

당신은 졸업 후 당연하게도, 누구나 그럴 거라고 생각했듯  도쿄로 진학했다. 대학생의 생활 패턴 같은 건 내가 알 리 없었다. 미야기에 없는 당신이 불현듯 눈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그저 멍청히 당신의  이름만 주워섬겼다. 당신의 입에서는 여전히 나의 석 자 이름이 흘러나오고.

 

“그 상자는 뭐야?”
“아,  케이크요.”
“케이크?”
“그, 오늘이 제 생일이어서.”
“제왕님 탄신일인가~”

 

비웃듯, 빈정대듯 가벼이 내뱉는 말투에도 어째서 상냥함이  묻어있는지 나는 알 도리가 없었다. 당신의 코트 깃에서 까닭없는 도쿄 냄새를 맡고, 나는 그만 황망해진다.

 

“어디 가시는 길이에요?”
“토비오쨩, 취조라도 해?  알리바이 조사야? 조금 늦은 기차를 타고 왔더니 이 시간에 도착한 거야. 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중.”
“아무도 마중 안  나왔어요?”
“필요 없다고 했어. 어쩌면 더럽게 귀여운 후배를 만날 조화였는지도 모르겠네.”
“택시라도 안 타시고.”
“언제부터  내 걱정을 그렇게 했어? 눈 오는 거 좋아하니까 걷고 싶었을 뿐이야.”

 

당신이 걷고 싶다 했으니, 아마 진눈깨비가 아니라 눈이  내리던 날인가 보다. 짐짓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당신은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뭐 해, 집 방향 여기잖아?”

 

내 생일은 모르면서 집 방향은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야  하는지. 그때야 당신이 한쪽 어깨에 둘러메고 있던 보스턴백을 눈치챈다. 뒤늦게 당신을 따라 걸음을 떼며 새삼스럽게 하늘을 올려보았다. 눈꽃은  무심히 부는 바람결에 흩날리면서도 땅 위에 착실히 쌓여간다.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나보다 먼저 획득한 당신은 꼭 그만큼 커져서, 더는 따라잡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배구화나 러닝화가 아니라 구두-정확한 명칭이 워커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를 신은 당신의  발은 꽤 낯선 것이었다. 어쩌면 고작 이 년 전 내가 아등바등 따라잡으려 안간힘을 쓰던 그 사람은 지금의 당신과 다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곧 녹아내렸다. 그럴 리 없지. 

 

“저, 오이카와 씨-”
“배구 얘기는  사양이야.”
“네?”
“요즘 내 배구는 어떠냐는 둥, 네 배구는 어떻다는 둥 그런 얘기할 거잖아?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 얘기는 듣고  싶지 않거든. 특히 너한테서는.”
“…….”

 

나는 할 말을 잃고 그저 입을 다물었다. 내 모든 말을 원천  차단해버린 당신은 의기양양하게 웃고, 그러고 계속 앞을 보며 걸었다. 이대로 줄곧 걷다가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별다른 말도 없이, 별다른 행동도 없이. 나는 말재간이 없는 사람이고 당신도 그걸 익히 알고 있다. 당신은 나를 그리 좋아하지  않고 나도 그걸 익히 알고 있다. 그래서 나란히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그것은 아마 그때로부터 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당신과 나는 항상 마주 보기만 했지, 같은 곳을 보지는 않았으므로. 내가 입을 다물자 꽤 마음에 든 것처럼  당신은 여린 콧노래까지 입에 담았다. 그 여유로운 표정에 대한 복수심이었는지. 나는 기어코 입을 열고 말았다.

 

“오이카와 씨.”
“뭔데? 배구 얘기면 없어.”

 

아마 내가 이때 다시 한 번 돌이켜 생각했다면, 다음 말을  내뱉지 않았다면 우리 둘은 그저 조용히 갈림길까지 걸었을까. 지금도 확신할 수는 없다. 

 

“연애해보셨어요?”
“……에엥?”
“그러니까,  대학생이고, 인기도 많고……. 왠지, 해보셨겠지 싶어서.”
“지금 놀리는 거야? 연애는 고등학생 때도 많이 했어.”
“역시  그랬구나.”
“근데 갑자기 왜?”
“얼마 전에, 그 비슷한 편지를 받았거든요. 신발장에.”
“헤에, 고전적인  방법이네.”
“누군지도 모르고, 알 방법도 없어서 그냥 가방 안에 넣어두긴 했는데요.”
“가까운 사람 아닐까?  찾아보지그래?”
“그러기엔 너무 막연하잖아요.”
“원래 사람 감정만큼 막연한 것도 없지.”
“하아.”

 

목 근처 코트 깃을 세우며 당신은 웃었던가.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되묻기에도 뭐해서 그저 짧은 감탄사 비슷한 것을 중얼거렸다. 당신은 어깨를 움츠리며 웃었다. 도발하는 웃음도, 자신만만한 미소도  아닌 무언가 투명하면서도 쑥스러운 웃음. 처음 보는 것이라 나는 어쩔 줄 몰랐다. 당신 앞의 나는 언제나 중학생이었으므로.

 

“만일 네가 세터가 아니었다면.”
“……?”

 

허공에서 하얗게 찢어지던 당신의 숨결.

 

“그랬다면, 우린 좀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
“만일이라니, 오이카와 씨 답지 않은 말이었네. 이게 다 토비오쨩이 연애 같은 소리를 해서 그래.”

 

연애와 우리 둘의 관계가 어떤 상관이 있느냐 묻고 싶었으나  나는 이마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무슨 대답이 나올지 몰랐고,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혼잣말처럼 당신이  내비친 아주 엷은 진심은 겨울 밤하늘처럼 내 눈앞에 광활했다. 

 

“뭐 어쨌든, 생일 축하해. 늦은 축하지만 해줄 수 있어서  잘됐네.”
“아, 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선문답 같은 대화가 끝나고 갈림길에 접어든 우리는, 각자의  길을 골라 걷기 시작했다. 둘 중 누구도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럴 이유도 느끼지 못했겠지. 그저 등 뒤에서 누군가  걸어나가고 있다는 기척만을 느끼며- 나는 반은 젖어 버린 케이크 상자를 든 채 걸음을 조금 더 빨리했다. 눈송이 몇 개가, 콧잔등이며 뺨 위에  내려앉았다가 곧 차갑게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그때 당신에게 딱 하나, 거짓말을 했다. 그  연애편지에는 제대로 발신인이 적혀 있었다. 무심코 분홍색 편지봉투를 뒤집던 나는 그만 이름을 본 후 숨을 삼키고 말았다. 徹子, B반의 스기하라  테츠코. 유난히 한 글자가 선명해 보이는 건 분명 기분 탓이었겠지만, 나도 모르게 떠올린 그 얼굴은 아마 徹가 아니더라도 여전히 눈앞에 있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연애니 편지니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결국, 그 말만은 당신에게 전하지 못했다. 우리 둘의 포지션이 겹치지 않았다면 정말  우리 둘의 관계는 조금 더 나은 모습이었을까.

 

이 역시, 그때의 나는커녕 지금의 나조차 확신할 수 없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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